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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 읽기

강인함의 힘 - 스티브 매그니스 -

by 짱2 2024. 9. 29.

예상대로다. 예전에는 강인함은 남성성에 가깝고 불끈불끈 올라온 근육, 힘이 세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젠 진정한 강인함은 그런 것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면의 단단함과 연결되는 진정한 강인함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참으로 유약해진 이 시대의 젊은이에게 실험을 통한 근거를 내세우며 방법을 제시하는 이 책은 나에게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강인함과 스포츠의 연결성은 떼려야 뗄 수 없고, 저자 또한 그쪽 방면과 연관이 있다 보니 스포츠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아마도 이 부분이 나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겠지만 이건 나의 문제이니 뭐... 

 

예상대로... 강인함은 겉으로 드러나는 '힘'이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유연함'에 가깝다. 우리는 쉽지 않은 이 삶을 얼마나 단단하고 강인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살아내야 할지, 그 힘을 기르기 위해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강인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아갈 길을 찾는 사람이다. 강인한 사람은 자신을 기만하지 않고 거짓된 자신감으로 허세를 부리지 않고,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만만한 척 자기를 속이는 사람은 기세 좋게 출발선에서 달려 나가지만 현실에 부딪히는 순간부터 더는 빨리 달릴 수가 없다. 강인함이란 경기장이나 무대 위에서만 보이는 게 아니다. 강인한 사람은 과제를 수행하기 훨씬 전부터 정직하게 자기 실력과 과제의 난이도를 평가한다.

 

'메타인지'라고 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메타인지는 자신의 능력이 어느정도인지 알고, 그 안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고, 스스로 그 능력을 키워가는 것. 보이는 내가 아니라 본연의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성장하는 것.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강인함'이라고 생각한다. 말은 쉽지만 사람들과 어울릴 때 우리는 좀 더 많이 가진 척, 좀 더 많이 아는 척, 좀 더 많이 능력이 있는 척한다. 그게 본성이다. 나를 커 보이게 만들고 남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은 그 욕망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그 안에서 성장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강인함이다. 나 또한 남에게 보이는 모습에 무척 신경을 쓰며 살아왔기에 문득 돌이켜보면 부끄러워지곤 한다. 다만 내 모습 전체가 그러하지 않음에 위안을 삼을 뿐이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외부에서 요구하는 목표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요구하는 목표를 선택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관심사를 반영한다. 자기 이해가 높은 사람은 그만큼 명확하게 목표를 설정한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은 과제의 난이도와 자신의 역량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세밀하게 살피는 일도 포함한다. 사색도 좋고, 일기 쓰기도 좋고, 친구나 가족과 대화하는 방법도 좋다. 어느 방법을 쓰든지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 작업은 쉽지 않겠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강인한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현실을 수용했기에 강인해졌다.

 

역시 '메타인지'와 같은 결의 말이다. 외부가 아닌 자기 안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나에게도 이런 과정이 필요했다. 두고두고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는 건,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시켰던 '일기 쓰기'를 지금까지 쓰고 있다는 것이다. 암환우가 되기까지 40년(초등까지는 일기를 쓰지 않았으니...)이 넘는 시간, 나의 메타인지 방법은 글쓰기였다.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돋는다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처럼 내 안에서 무언가 올라올 때 글을 쓰지 않으면 내 안에 가시가 돋는 경험을 했다. 그 가시를 글쓰기를 통해 뽑아내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 밀려들었고, 글쓰기를 통해 내 안의 이야기를 풀어내면 그다음 삶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친구들과의 대화, 독서, 글쓰기, 대화... 이런 것들이 나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지금 가장 아쉬운 것은 친구들이 그것들을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독서와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수준'의 차이가 아니라 '결'의 차이, '방향'의 차이를 느낀다는 이야기다(잘난척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잘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막상 책 좀 읽고, 글쓰기 좀 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잘남'이 너무 '샘'나서 견딜 수가 없다. 물론 그들과 1:1의 만남을 가질 만큼 친분이 있으면 나는 분명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런 사람들과의 깊은 친분을 갖지 못했기에 한 걸음 물러서 만나게 되는 그들은 나의 '질투의 대상'이 되곤 한다. 아마 이 단계를 뛰어넘어야 할 것 같다. 사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간절한 것이 이것이다. 나와 같은 대화의 결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 나를 풀어내고, 인정받고 때로는 비판도 받는 것. 그리하여 나의 성장에 도움 받을 수 있는 것. 안다... 꼭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그러나 가끔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학습할 것은 무기력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 법을 새로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희망을 훈련하려면 멈추지 말고 뭔가를 지속해야 한다. 엄청난 일을 하라는 게 아니다. 사소하고 쉬운 일이라도 좋다. 자신이 상황을 통제한다는 느낌, 자신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면 충분하다. 이 작은 신호만으로도 전전두피질이 활성화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우리가 학습할 것은 무기력이 아닌 희망이라니.. 이토록 멋진 말이 있나! 가난했고, 자신감 없고, 자존감도 없었던 어린 시절, 부모님은 늘 싸우시고, 나를 혼내셨다. 신체적으로도 결함이 있던 나는 무기력했다. 잘하는 것도 없고, 잘하는 것이 있다한들 그것을 펼칠 수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신체적 결함이라는 것도 남들이 겉에서 보기엔 대체적으로 알 수 없던 것이었고, 다행스럽게도 나의 외모는 연예인급의 대단한 미모는 아니었으나 예쁘다는 말을 곧잘 들었기에 아마도 나는 여기에서 희망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1학년부터 남자들이 따라다녔고, 난 이것을 통해 약간의 자존감을 높여 왔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공부하면 성적이 나왔던 중학생 때, 나는 나의 머리가 나쁘지 않음에서 또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 그렇게 못남과 절망과 슬픔 속에서 살짝 싹튼 희망을 가지고 결혼했고, 하늘이 내려주신 복된 남편 덕분에 희망을 훈련할 수 있었다. 남편이 나에게 그런 자극을 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결혼 전보다 좋아진 경제적 여유와 내가 무엇을 하든지 간섭하지 않은 너그러움 덕분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영어강사가 되었다. 그러나 어릴 적, 아니 어쩌면 태생부터 회의적이었던 내면의 그 무엇이 나를 채워주지 못했고, 술과 못된 습관들로 내 몸을 망쳤다. 암으로 위와 대장을 절제한 후, 내 몸의 장기가 잘려 나간 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느님의 말씀이 들렸다. 50년은 네 마음대로 살았으니 앞으로 50년은 다시 예쁘게 살아보아라. 나는 다시 희망을 학습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역시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사색이다.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기도 하다. 

 

 

 

우리는 강인함을 끈기와 동일시할 때가 많지만 때로는 그만두는 것이 강인함이다. 의심이 밀려오고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도 그 안에서 좋은 결정을 찾아내는 사람이 강인한 사람이다. 때로는 끈기 있게 버텨내야 하고, 때로는 그만둘 줄도 알아야 한다.

 

버텨야 할 때인지, 그만두어야 할 때인지 아는 것! 지금 나에겐 이것이 '화두'이다. 영어공부!! 이게 참 나를 힘들게 한다. 이것을 내려놓은 것이 맞는지, 더 가져가는 것이 맞는지... '닥치고 공부'라 못 박고 열공 중인데, 이것이 나를 고통으로 이끌고, 어쩌면 건강마저 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편하게 쉬엄쉬엄 가자 했지만 공부란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기에... 내년 12월 31일까지 500일 정도의 공부 시간을 정했는데, 잘 한 결정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역시 또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한다. 이미 그 시기를 지난 것인가! 이젠 그저 gogo인가? 그래! 가보자! 1년 3개월! 달려보자!!

 

 

저자는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인 강인함에 주목한다. 그것이 진정한 강인함이라 말하며 조용한 내면의 대화를 통해 강인함을 키우라고 한다.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고, 외부의 충격에 자동으로 반응하지 않고 적절한 대응력을 기르라고 지적한다. 강인함을 키우는 연료는 일과 같은 창조적 행위, 자연과 예술, 사랑을 경험하는 것,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이 연료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고, 방법이고, 이유이지 않을까?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기꺼이 살아가고, 그 안에서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 아닐까? 밖이 아닌 내면에서. 깊은 사색을 통해, 진정한 자아 인식을 통해... 오늘도 나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색한다. 아직도 부족한 나를 통해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이 아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무한함에 희열을 느끼고, 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에 오히려 희망을 훈련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