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만의 책 읽기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1

by 짱2 2024. 10. 12.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이 세상에 나 이상의 존재는 없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신의 문제고, 내가 존재한다는 건 오직 나만의 문제다. 나는 이 세상에 있고 싶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쓸데없는 말로 그것이 나의 존재라고 설득당하고 싶지 않다.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어떻게 되는지를 분명히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낡은 계략에 속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 못한다면 불멸을 위해 나는 내가 가진 것 중 단 한 가지도 내놓지 않을 것이다. 나의 개성을 보증해주지 않는다면 그 무엇에도 소속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완전하고 탁월하다. 나보다 더 뛰어난 개성은 없다.

다른 누구와도 나를 바꾸고 싶지 않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떻든 지금 이대로의 나, 나의 개성, 그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의 첫 번째 내용 전문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 이유는 쇼펜하우어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고, 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러한 내가 무척이나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진 못난이로 느껴졌었다. 아주 어렸던 시절에, 아마도 사춘기 무렵부터 나는 나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도, 친구도 나에겐 두 번째 아니 그 이하의 수준에 머물렀다. 나는 나 자신의 육체가 아픈 것도 싫었고, 다른 이로부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상처 입는 것도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강해졌고,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누군가 나를 자신의 언어로 쉽게 단정 짓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이런 내가 그 당시의 세상의 잣대로 판단되었을 때 자기밖에 모르는 나쁜 아이로 보여질거란 것을 알았기에 나는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도록 연기하는 영악한 아이가 되기도 했었다. 요즘엔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져 혼밥도 하고, 자기중심적 사고와 생활을 부추기기도 하는 세상이 되어 나의 이런 생각을 조금씩 드러낼 수 있게 되었음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 지인과 대화중에 그녀가 나에게 '너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야!'라고 단정 지어 말했다. 그 순간 그녀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몹시 견딜 수 없었다. 그녀와 알고 지낸 지 1년여... 그녀가 알고 있는 나는 그저 내가 말한 것이 전부인데, 60년에 가까운 삶을 얼마나 알고 있어서 그런 말을 쉽게 내뱉을까? 본인도 내가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야'라고 말한다면 순순히 받아들일까? 전혀 그렇지 않을 사람이면서 어찌 그리 쉽게 남을 판단할까? 그건 그만큼 그녀가 가볍다는 증거였고, 그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누군가의 가벼운 단어 몇 개로 내가 판단되어졌다는 사실이었다. 그 말을 듣는 즉시 나는 그녀에게 나의 감정을 전달했다. 나를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판단하냐. 나는 누군가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싫다. 나는 상처도 있지만 사랑이 많은 사람이고, 사랑도 많이 받으며 살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데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상처로 아픈 사람이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건 그녀의 생각이고, 너는 그걸 무시하면 된다고. 안다. 그러나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으면 그녀는 계속 나를 판단할 것이기에 그것이 싫었다. 그 순간만 넘어가면 될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류의 사람을 싫어하고, 아마도 그래서 내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기도 했던 거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쓸데없는 말로 그것이 나의 존재라고 설득당하고 싶지 않다'라고. 그녀는 자신의 잣대로 쓸데없이 그야말로 입을 나불거렸다. 평소에도 말이 많았던 그녀였던지라 그녀를 만날때면 골치가 아프고, 그녀의 괴변에, 그녀의 잘나지 않은 잘난 척에 한 번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는데, 마침 그녀가 자신에게 솔직하게 다 말하라고 했던 터라, 나는 평소에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지 않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물론 요즘은 많은 공부를 통해 나를 드러내는 중이다) 그녀가 그 말을 내뱉기 무섭게 나의 생각을 전달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당황했고, 집으로 돌아간 그녀는 다음날 나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정말 고마웠다. 나야말로 그녀와 이별하고 싶었지만 아픈 그녀를 차마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인식하지 못한다. 나 또한 그러할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이의 가벼움을 견딜 수 없듯이 나도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산다. 그리고 내 주변의 가볍지 않은 사람들을 정말 존중하고 사랑한다. 그들에게서 그런 면을 닮으려 하고, 직접적으로 칭찬도 해준다. 그들은 나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혹여 나름대로 판단하여 내게 그 판단한 것을 전달할 때조차 좋은 점을 아주 예쁜 말로 포장해서 해준다. 고운 사람들이다. 

 

쇼펜하우어는 이 세상에 나 이상의 존재는 없다며, 신이 존재한다면 그건 신의 문제라고 한다. 얼마나 멋진가! 내가 존재한다는 건 오직 나만의 문제! 이럴진대 그 가벼운 입이 60년 가까운 내 삶을 판단해서 말하다니! 내가 생각하는 내가 언제나 옳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준다는 것은 내가 이 세상의 잣대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며, 내가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사랑스러운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존귀하고 옳다. 다른 이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며 그 말의 가벼움에 상처받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 입의 가벼움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