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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혼자인건가

by 짱2 2024. 10. 19.

남편과 이른 조조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점심으로 떡만둣국을 끓여 먹었다. 만둣국을 끓이기 위해 다시멸치를 다듬어 덖은 후에 육수를 넉넉히 만들었다. 남은 멸치육수를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면 일주일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 찌개나 국을 끓일 때 미리 끓여 둔 육수가 있으면 참 편리해 늘 이렇게 한다.

 

 

 

 

만둣국을 다 먹고 육수가 식으면 그릇에 옮겨 담은 후, 육수를 낸 큰 그릇까지 씻어야지 하며 잠시 쉬고 있는데, 식곤증이 몰려와 아예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본격적으로 낮잠이나 자려했다. 지난 밤에 늦게 잠자리에 들었고, 오늘 새벽에 일찍 일어났으니 졸음이 몰려올 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남편의 전화벨이 울렸고, 나의 불길한 예감은 맞았다. 남편 친구의 술 먹자는 호출... 남편은 무조건 OK. 이번주엔 도대체 며칠을 술을 마시는 건가.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화를 낸다고 남편이 나가겠노라 약속한 그것을 취소할리도 만무하고, 어차피 나갈 사람을 화가 나게 만들어서 내보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남편이 무심히 나간 후, 나의 잠도 어디론가 달아나버렸다. 그냥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사이 식은 육수를 김치 냉장고에 넣어두고 설거지를 했다. '멸치청양고추다대기'를 만들어 식힌 후 그것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라디오처럼 틀어놓은 유튜브에선 쉴 새 없이 뭔가를 떠들어댔지만 내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그것들이 들리지조차 않았다. 

 

나도 화가 나는데 누군가를 만날까? 아이 귀찮아. 월요일에 보려고 했던 영화를 오늘 보러 갔다 올까? 뭣하러. 집에서 다운 받아놓은 영화를 볼까? 다운 받아둔게 뭐 있기나 해. 그래. 책이나 읽자. 책 리뷰도 하고. 일기도 쓰지 뭐. 그렇게 지금 일기를 쓰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왜 남편이 나가는것에 이토록 민감한 걸까? '술'때문이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반이 맞다는 것은 만약 남편이 술을 마시지 않고 친구들과 놀다가 저녁식사로 밥만 먹고 들어온다면 약간의 섭섭함만 있었거나 차라리 잘 되었다 생각하며 내 시간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반이 아닌 이유는, 술을 마시던지 마시지 않던지는 어찌 보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해도 될 일이다. 물론 술을 자주 마시면 남편의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겠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것조차 나의 영역밖의 일이라는 것을 맘공부를 통해 깨달아가는 중이다. 아마 이 맘공부가 부족한 탓일 거다. 설거지하는 내내 기분 나쁨의 내 마음을 알아채고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나는 그것을 어떻게 내려놓아야 하는지 계속 들여다보았다. 

 

나는 저녁식사 메뉴로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했고, 오이무침을 반찬으로 만들려고 했다. 양배추도 쪄서 고추다대기를 얹어서 먹으려고 했다. 나의 저녁식사에는 당연히 남편이 있어야 했다. 나 혼자 먹자고 이것들을 만들 이유는 없다. 나 혼자서 저녁을 먹어야 한다면 나는 과일이나 고구마, 옥수수, 떡 등의 다른 메뉴를 간단히 먹으면 되니까. 오늘 저녁의 내 계획엔 남편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불쑥 나가버렸다. 계획이 무너졌다. 그게 내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대체할 방안이 있으면 된다. 그래서 지인과의 만남을 떠올렸고, 영화를 떠올렸고, 독서와 일기 쓰기를 떠올렸다. 그리곤 독서와 일기 쓰기가 당첨되었고, 된장찌개 등등의 반찬은 내일로 미뤘고, 한가해진 토요일의 낮시간과 밤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자 나의 언짢은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나의 계획이 흐트러졌던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거. 그것이 나를 마음 상하게 했구나. 그런데 그것을 대체할 뭔가 기분 좋은 것을 떠올리면 되는 거구나. 예전엔 그 대체제가 '술'이었고, 뭔가 밖으로 돌아치는 것이었는데(그래서 냉장고의 맥주도 마실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이젠 술을 마시지 못한다. ㅠ) 이젠 집에서 조용히 할 무언가로 바뀌었구나. 잘 되었네. 원인도 알았고, 그것을 대체할 건전한 것도 찾을 줄 알게 되었으니...  아직도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긴하지만 아마도 이런 마음조차 차차 없어질 거 같다. 단련되어 갈테니...

 

문득 어제 대모님과 얘기 나누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제밤, 남편과 산책을 하며 어떤 이야기 끝에 남편의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였다. 남편과 나와의 사이에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어떤 벽 같은 것이. 단단하고 두꺼운 것이 아니라 아주 얇아서 모른 척할 수도 있지만 분명 있기는 있는 그런 투명하고 얇은 벽. 거기 너 있고, 여기 나 있는데, 손 뻗어 닿을 수 없는 느낌. 그냥 너는 거기 있고, 나는 여기 따로 있는 느낌. 그것이 이틀이 지나고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제 그 느낌이 왔었기에 대모님과 공연을 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내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면 혼자 남은 남편의 힘듦? 아니면 견딞? 아니면 오히려 기쁨?일지 모를 그 모든 감정들은 그의 몫이니 내가 어쩔수 없는 것이고, 반대로 남편이 먼저 떠나면 혼자 남겨진 나의 견딞? 슬픔? 외로움? 등등의 감정을 잘 추스를 수 있도록 지금의 내가 단단해져야겠다고. 오로지 내 편이고, 나만의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음을, 그리고 그렇다한들 그가 떠난 후의 나는 잘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뭘까? 그 얇은 벽. 남편이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건가? 아니면 자상하지 않음에서 느껴지는 나만의 예민함일까? 이런 모든 감정도 모두 그저 나만의 감정일 뿐일진대... 그저 단순하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일지도... 

 

오늘 읽은 쇼펜하우어의 책에 이런 글이 있었다.

"확고한 자의식을 갖춘 사람들은 타인의 칭찬이나, 재촉, 경멸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내게 무슨 말을 하든 상처받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를 줄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확고한 자의식으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묵묵히 걸어가면 될 뿐... 가족도, 남편도 하물며 지인들은 말할것도 없이 내 길을 가면 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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