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로 학원을 그만둔 이후, 부모님과의 여행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고, 7월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본격적으로 나의 문화생활도 시작되었다는 것. 오페라, 발레, 음악회, 뮤지컬, 영화, 미술관람 등 공연과 영화를 아우르며 나의 경제적 여건과 시간을 조금 무리하면서 되도록 많은 것을 접하고 싶은 욕심을 한껏 펼쳐내고 있었다. 그러다 최재림 배우에게 빠져들었고(예전에 '킹키부츠'에서 그의 역량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으나 팬으로서의 큰 진전은 없었다), 유튜브를 통해 계속 그와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 두 사건(?)의 발발(?)이 나에게 치명타가 되었다. 원래부터 집중력이 떨어지는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공부를 하니, 수시로 인터파크를 들어가 새로운 공연, 보고 싶은 공연을 찾게 되었고, 재림배우의 영상은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을 보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공부시간을 뺏기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뭔가 '멍'한 상태가 된 느낌이 지속되었다. 공부의 양도 줄어들었고, 집중력도 떨어졌고, 하다못해 책을 집중해서 읽어내지 못하는 지경이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죽도록 공부하고자 하던 나의 열망은 어디로 사라지고 이토록 못난 습관을 몸에 물들이고 있는 걸까? 스스로 자책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는 중이다.
유튜브의 좋은 점도 많다. 자기 계발에 진심인 나에게 동기부여 영상은 늘 나를 고무시킨다. 누군가는 동기부여뒤집기를 한다. 그의 의도를 인정하고 박수를 보낸다. 진심이다. 그래야 한다. 그러나 나의 동기부여는 내가 알아서 적당하게 필요한 만큼 받아들이니 이것도 인정한다. 그런 종류의 영상을 주로 보다가, 어느 날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영상은 김원곤교수와 관련된 영상이었다. 70이 넘은 나이에 6개 국어를 한단다. 50이 넘어 시작한 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프랑스어의 능력시험까지 마친 그를 보면서 '그는 의학박사인 의사이니 머리가 당연히 좋겠지'라는 말로 어물쩍 넘어가기엔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나란 사람 자체가 이미 공부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으니... 그도 스스로 말한다. '외국어를 공부하기 가장 힘든 사람은 50대의 경상도 남자'라고. 그런 그가 그 나이 50대에 새로운 언어에 도전해서 그것도 4개 국어를 완공해 냈는데, 늘 공부해 오던 영어하나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나는 이 생을 제대로 살았다고 말하지도 못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뭔가 뜨거운 것이 내 안에서 꿈틀대는 느낌이었다.
바로 그날, 나는 결심했다. 내년도 아니고, 다음 달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바로 그날, 끓어오르던 나의 열정은 나를 '자칭 대학생'으로 만들었다. 2024년 10월 14일! 나는 영문학과 대학생이 되었다! 2028년 10월 14일 졸업예정이며, 졸업 후엔 해외어학연수를 갈 거다. (졸업하는 즈음엔 나의 환갑이다. 환갑여행 겸 나에게 선물로 어학연수를 준비하는 거다.) 어학연수하러 갈 나라는 영어권이 되겠지만 아직 미정이고, 졸업 전에 결정해서 철저하게 사전조사할 예정이며, 다른 이들처럼 6개월이나 1년의 장기연수는 아니고, 1~2달 정도로 생각한다. 물론 나의 건강을 고려해서 남편과 함께 할 거다. 경비도 필요하다. 한동안 국민연금을 납부하다가 암에 걸린 것을 알고는 중단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연금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것이 28년도에 나온다고 하니 그 돈에 얼마간의 돈을 더 모아 보태면 가능하리라 예상한다.
학원을 그만두면서 영어공부를 좀 더 해야지 하고 마음 먹었을때, 25년 또는 26년까지만 영어공부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10월 14일의 나는 좀 더 진전했다. 4년의 도전이었다. 굳이 25년 3월 새 학기, 남들이 대학생이 되는 그날을 기준점으로 삼을 필요가 없었다. 나 혼자만의 독학의 시간이니 내가 정한 대로 가면 되는 거고, 마침 그 4년 후인 28년 10월이면 나의 환갑과 맞아떨어지니 일석이조였다. 멋진 환갑이 될 거란 기대치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나의 문화생활에 대한 열정이 나의 대학생활을 방해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마치 공부 열심히 하려고 했던 대학생이 미팅으로 정신 못차리는 지경이었다. 어젯밤, 노트를 펼치고 나를 돌아보았다. 공연, 영화, 음악까지 나를 방해하는 것들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했다. 공연은 재림배우님 공연만 보고, 영화는 외출할 일이 있을 때 시간이 나면 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보지 않기로 했다. 외출할 일을 되도록 만들지 않고 지인과의 만남도 줄여야 한다. 공부시간도 조종이 필요했다. 집중이 잘 될 때는 무조건 공부하고, 집중이 떨어질 때 음악공부와 취미생활을 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대신 건강을 위한 시간은 아끼지 않는다. 저녁의 남편과의 산책은 계속하고, 낮에도 졸리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면 무조건 산책을 나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여차하면 아파트 계단 오르기라도 할 생각이다. 주말엔 건강한 요리 하나씩 만들어 먹는다. (외출을 하지 않으면 외식을 하지 않아 저절로 건강식이 된다) 물론 독서는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미 습관으로 굳어진 유튜브와 인터넷이 나를 또 유혹하리라. 그러나 이것 또한 좋은 습관으로 다시 물들이면 된다. 나에게 필요한 예쁜 습관들로 다시 만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그동안 좋은 공연 보면서 힐링했으니 되었다. 3권으로 된 클래식 관련 책도 거의 다 읽어가고, 김정운 교수의 책도 벌써 반이나 읽었다. 이젠 나의 모든 세포를 영어를 향해 열리도록 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공부했던 것처럼 다시 시작이다. 나의 대학생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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