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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수련, 정적, 승화

심연 12

by 짱2 2025. 1. 19.

2023년 12월 17일에 심연이라는 책 한 권을 아침마다 한 chapter씩 읽으며 나의 심연으로 깊이 들어가 진정한 '나'를 찾으리라 마음먹었는데, 벌써 1년도 지나 또 1개월이 넘어가니.. 참 오래도록 이 책을 마무리 짓지 못했구나. 그 과정에 다른 책들이 내 손에 들어왔고, 돌아보니 작년은 쇼펜하우어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책이 유행했고, 나도 그 유행을 저지하지 못하고 각각 두어 권씩 밑줄을 그으며 읽고 리뷰까지 하느라 정작 이 책을 덮기까지 이토록 시간이 걸려버리고 말았다. 오늘에서야 에필로그를 읽으며 다시 프롤로그를 돌아보았고, 줄곧 저자가 말하고 싶은 이 책의 요점이랄까... 그런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위대한 개인'은 위대한 국가를 만드는 초석이다. 위대한 개인이란 웅장한 건물을 지탱하는 한 장의 벽돌과 같다. 그 개인은 배움을 통해 매일매일 위대하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배움이란 자신이 안주하고 있는 시공간에서 탈출해 자신에게 유일하고 진실한 자아를 발견하고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기꺼이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진실한 자아를 발견하는 장소가 바로 심연이다. 심연은 원래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연못'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위대한 나를 만나기 위해 들어가야 할 심오한 '마음의 연못'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위대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진실한 자신을 바라보기 위한 심연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나를 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내게 필요한 배움이 무엇인지 알 수있고 매일 그 배움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이 책의 표지에 하루 십분, 나를 성찰하는 시간이라고 쓰여있다. 물론 한 챕터를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이면 족하다. 그러나 10분의 독서 후, 나의 심연으로 들어가 나를 깨닫고, 나를 성찰하고, 내가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 알아내고, 사색하고, 사유하는 시간은 그 몇 배의 시간이 걸린다. 아마 내가 이 책을 빨리 마무리짓지 못했던 이유도 이것이지 않을까. 이 책을 잡으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위대한 개인은 매순간 자신을 독수리의 눈으로 관찰하고, 자신이 미래에 이루어야 할 임무를 위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혼과 영을 다해 최선의 경주를 하는 사람이다. 심연이 가져다준 자신의 고유한 임무가 그 사람의 호흡이며 몸가짐이다. 그 임무에 지속적으로 몰입되었을 때, 그 사람만의 숭고한 인격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렇듯 저자는 요즘 말하는 갓생을 살라한다. 아마 저자 자신도 그런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계시리라. 나 또한 갓생까지는 아닐지라도 제법 그와 비슷하게 내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렇게 살아갈수록 문득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가 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는 제목의 책이 나올 정도로 요즘은 너무 애쓰지 말고 살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부지런함과 치열함이 오히려 삶의 독으로 작용해 정작 자신을 놓치고 돈만을 쫓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함 아니었을지... 

자신을 독수리의 눈으로 보니 늘 부족함이 보이고, 어쩌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하루는 죄책감마저 느낀다. 뭔가를 이루어야할것만 같고, 매일 성장하는 내가 가시적으로 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실망감도 크다. 성공한 다른 이들이 위대해 보이고, 나는 하찮은 인간으로 보인다. 

그래서 또 용기를 내고 다시 열심히 살아낸다. 실망과 좌절, 다시 삶에 대한 욕망과 욕심, 다시 힘을 내는 용기, 그리고 희망...

 

하지만 수십년을 그렇게 살아온 나는 느리게 걸을 수 없고, 인생 뭐 별거 있느냐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하루가, 한 시간이 아깝다. 

 

안다. 저자도 늘 그렇게 자신을 매몰차게 몰아치며 치열한 삶을 살아내라고 닦달하는 것은 아닐 테다. 만약 심연 깊은 곳에서 만난 나 자신이 여유로운 삶 속에서 자연을 벗하며 사는 모습이라면 그는 그렇게 살면 될 것이고, 직장인으로서 한 걸음씩 발전하는 모습이라면 그것을 위해 자기 삶을 살아가면 될 것이고, 주부로서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면 또 그렇게 살면 될 것이다. 각각의 자기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면 그뿐. 

 

저자는 말한다. 남들이 세워놓은 기준을 따르지 말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라고. 나의 최선이 내가 원하는 그것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남들이 만든 기준에 의한 것이 되지 않도록 심연의 나를 들여다 봐야한다. 

 

이 책을 마무리 짓는 나는 아직도 저작 말하는 나의 임무를 찾지 못했다. 이건 내가 오래도록 고민하는 바로 그것과 닿아있다. 내가 태어난 이유,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가 존재하는 이유. 늘 사춘기 소녀처럼 나는 내 삶의 이유를 찾고 있다. 60년째 찾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못 찾고 있다. 그렇기에 가끔씩 찾아오는 우울을 열병처럼 앓고, 희미하게 유혹하는 죽음의 손길을 느끼고, 내 열정과 내 공부의 목적을 놓쳐버린다.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하나? 내 심연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하나? 아직 수련과 정적 그리고 승화의 세 책이 남아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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