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이제껏 발을 들인 적 없는 미지의 땅
평소의 언어로는 잘 쓰지 않는 '심연'이란 단어가 이 책으로 인해 자주 쓰는 단어가 되었다. 나의 '심연' 깊은 곳으로 들어가 내가 진정으로 뭘 원하는지, 나라는 존재가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었다.
심연의 존재를 알고 운명적인 여정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영웅'이라고 한다.
웅장하다. '영웅'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영웅이어서도 아니고, 영웅이 되고 싶어서도 아닌 그저 미물인 인간으로서 내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고, 왜 존재하는지 늘 궁금했다. 그냥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살고 싶었다.
그래! 아직 나의 심연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그러하니 운명적인 여정조차 시도하지 못하니 영웅은 아닌 걸로.
몰입이란 자신을 새로운 시점, 높은 경지로 들어 올려 그곳에서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연습이다. 몰입은 또한 군더더기를 버리는 행위다. 알게 모르게 편견과 고집으로 굳어버린 자신을 응시하면서 그것을 과감히 유기하는 행위다. 완벽이란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가장 단순한 상태이다. 이런 구태의연한 것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래된 나로 살아갈 것이다. 과거가 되어버린 나, 정체된 나, 죽은 나의 삶을 반복하게 된다.
나에게 간절한 것은 몰입이다. 공부를 하다가도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집중해야 할 때 배가 아프거나 변의가 느껴져 해야 할 일을 놓치게 된다. 물론 육체적인 증상으로 벌어지는 '몰입하지 못함'은 나의 병증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할 때는 자주 '몰입하지 못함'을 겪는다. 나의 과제이기도 한 '몰입'을 이 '심연'의 장에서 저자가 언급하다니. 몰입은 공부할때, 어떤 일을 할때 쓰여지는 단어가 아닌가? 아! 저자는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기 위해 '몰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완벽의 상태, 정체된 과거의 내가 아닌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상태. 나는 만났는가? 물론 아직이다.
영생이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기술, 즉 영생을 추구하는 삶 자체라는 것을.
몰입이란 심연의 내 존재가 원하는 그 삶을 지금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구나! 내가 추구해야 할 내 여정을 열정적으로 멋지게 살아야 하는구나! 이런 삶을 매 순간 살아내는데, 몰입이 안 될 이유가 없겠다.
얼마 전 정해인 배우가 자신의 간절한 소망이 연기였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거기까지는 평범했다. 그런데 만약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계속 '배우지망생'으로 살았을 거라고 했다. 전율이 느껴졌다. 그토록 열망하는 것이 있다니. 그는 자신의 심연의 소리를 들었나 보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매일 최선을 다하며 살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계속할 용기가 있었고, 그것이 되었어도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으리라.
그렇다면 나는? 나는, 남은 나의 삶을 뭘 하고 싶은 걸까? 환갑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뭘 하고 싶어서 편히 쉬지 않고 책상 앞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하며 살고 있을까? 배철현 교수가 말하는 몰입이 절실히 필요하다. 내 심연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고독해지고자 하는데 세상과의 접점이 너무 많다. 다시 고독해지고자 한다.
저는 신에게 올바른 질문들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 엘리 위젤
기도한다. 올바른 질문들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내 나이가 정말 환갑이 되었을 때, 육십갑자 한 바퀴를 다 돌아왔을 때, 깊은 심연의 진정한 나를 만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그 여정에 가 있기를. 그러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영원처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기를. 뜨거운 나로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