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祈禱) - 날카로운 도끼를 자기 앞에 겨누는 훈련
4만 년 전 유럽지역에 신체적으로 월등한 조건을 가진 네안데르탈인이 자리 잡고 있었으나 이를 제치고 3만 년 전에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는데 네안데르탈인은 하지 않고 호모 사피엔스만이 했던 중요한 행위가 있다고 한다. 그들은 처음으로 생존을 위해 다른 동물이나 다른 유인원들과 경쟁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정복하기 위해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가장 깊숙한 공간에서 눈을 감고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그 순간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다시 태어났다.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을 위해 동물과 경쟁하고 동료 인간들과 싸웠다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깊은 동굴로 내려가 위대한 자신을 발견하고 만들기 위해 자기라는 과거의 괴물과 싸웠다.
월등한 조건을 가진 네안데르탈인을 제치고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의 경쟁력은 싸움의 대상이 동물이나 인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거다. 깊은 동굴 속, 즉 심연으로 들어가 눈을 감고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내 안의 괴물과 마주하고 이겨내는 것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도 다르지 않다. 먹고사니즘으로 바쁜 현대인들은 '바쁘다 바빠'를 외치면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행복을 추구한다면서 정작 행복이 뭔지도 모른다. 내 곁에 있는 행복의 열쇠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아마도 저자는 지금의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서 심연으로 들어가 수련의 과정을 거치며 더 성숙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으리라.
오늘날 대부분의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로 남아 있다. 자신의 삶의 의미와 쾌락을 경쟁을 통해 성취할 수 있다고 신봉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찰스 다윈이 요약한 대로 '손톱과 발톱이 피로 물든' 본성을 지녔고, 약육강식과 적자생존만이 삶의 존재 이유라고 찬양한다. 자신이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삶의 최우선으로 삼는다.
그러나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정신적 유전자를 지닌 자들은 자신을 심오하게 관찰한다. 이들은 자신을 혁신하는 데 관심이 깊으며, 항상 자신만의 임무를 찾고, 그것을 거침없이 노래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우주를 구성하는 두 가지 규격인 시간과 공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단한다. 그들은 남들이 만들어놓은 시공간으로 들어가 아옹다옹 경쟁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과 공간으로 출근하는 삶을 산다 해도 그들에게 하루는 자신이 향하는 삶의 여정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자신만의 '일과'가 존재한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변신하기 위한 심연과 수련의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많이 모자란 내가 성숙한 인간이 되는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나도 모른다. 다만 이제라도 깨우쳤다는것에 감사한다. 작년 말쯤에 뭔가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토록 오래 책 읽고(물론 많이 읽었다고 떠벌일 정도는 아니다), 글 쓰는 시간을 가졌음에도 손톱과 발톱이 피로 물든 본성이었던 내가 어느 순간 움찔하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문턱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아직 그 간격을 뛰어넘지 못해 아른아른, 답답한 심정이지만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급한 마음으로 서두른들, 욕심껏 많은 것을 섭렵하려 한들, 그것이 한꺼번에 채워질 것들도 아니거니와 흡수되지도 못할 것이다. 때가 되면 깨달음이 올 것이고, 늦으면 늦는 대로 천천히 가면 될 것이다.
기도는 습관적으로 해오던 생각과 말,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한다.
기도는 흔히 절대자에게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요구하는 행위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의미의 기도는 자신의 욕망을 강화하기 위해 신의 이름을 이용하는 자기만족일 뿐이다.
기도는 이른 아침 자신만의 영적인 동굴로 들어가 자신에게 쌓여 있는 적폐(積弊)를 제거하는 행위다. 기도의 '기(祈)'는 그런 적폐를 제거하고자 날카로운 도끼(刀)를 자기 앞에 겨누는(示) 수련을 뜻한다.
기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굳은 결심이다. 기도는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려내는 결단이다.
저자의 이 말에는 반은 동의하고 또 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동의하는 이유는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을 들어달라는 기도는 진정한 기도가 아니기에 매번 기도할 때마다 내 욕망의 기도가 되지 않도록 단어를 조심히 쓰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우리가 흔히 secret류의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듯, 부정형 기도는 옳지 않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부정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해 계속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모든 기운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저자가 말하는 기도는 그 '기도'의 시간 동안 날카로운 도끼로 적폐를 잘라내는 수련을 거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소망하라는 의미라고. 단순히 육체적 욕망을 채워주는 물질적 원함의 기도가 아니라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이고, 나의 임무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에 필요한 욕망을 채우는 기도를 하라는 의미라고.
어느 책에서 기도의 방법을 알려주었다. '무엇을 주세요, 무엇을 이루게 해 주세요'가 아닌, '저에게 이런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를 올리라고 했었다. 결국 '감사의 기도'다. 무엇을 달라는 것은 결국 내게 그것이 없다는 것의 인정이므로 내가 가진 것의 충만함을 복됨을 노래하면 더 많은 복을 주실 것이니 말이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 긴 여정을 무사히 완주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몸과 마음을 최대한 가볍게 하는 것이다. 오늘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섬세하게 가려내는 행위가 곧 기도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하지 않겠는가?
사실 나는 'not to do list'보다는 'to do list'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저자의 말을 합쳐, 하지 않아야 할 것을 가려내고, 나만의 기도를 올린다. '오늘도 복되고 소중한 하루를 저에게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물로 주신 이 하루를 재미있고, 신나게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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