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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수련, 정적, 승화

수련 6 - 문법(文法)

by 짱2 2025. 3. 1.

 

 

 

 

1993년 5월, 나와 동학들은 평소처럼 '룸-G'에서 야콥슨 교수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날 저녁 <<뉴욕타임스>>에서 야콥슨 교수의 부고를 읽었다. 세계적인 수메르학자 야콥슨이 책상에 앉아 수메르 문헌을 읽던 중 영면했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삶은 수메르어 문법처럼 간결하고 강력했다.

 

쿵~ 내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평생을 수메르어에 바친 노구의 학자는, 저자가 하버드에서 언어를 전공할 때, 2주에 한 번씩 인류 최초의 문자인 수메르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때부터 190센티의 키 큰 서양 노인의 구부정한 자세와 주름진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느리게 말하며 학생들과 교감하며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멋진가! 그의 지식이 얼마나 빛나며 얼마나 고유하고 값지기에 젊고 유능한 지식인들 틈에서 아직도 가르침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것은 나의 마음의 '쿵'하는 울림까지는 아니었다. 정작 감동은 그의 죽음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를 노구를 이끌고 대학을 드나들었음도 대단할 일이었지만 책상 앞에 앉아 평생 공부해 온 그 수메르 문헌을 읽다가 영면했다니... 얼마나 멋진가! 평생 한 학문에 몰두하고 죽음 직전까지도 붙들고 있었다. 그의 죽음이 너무도 거룩하고 고요하고 평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죽음이 아니라 자신이 평소 하던 것의 무게를 그대로 안고 가는 것. 어르신들이 잠자다가 가는 것을 가장 원한다지만, 내가 평소 하던 것을 하다가 잠시 졸음이 몰려와 눈이 감기고, 그것이 마지막인 것. 나도 모르게 편안하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 것! 아~ 내가 얼마나 바라고 원하는 삶이던가!

 

전혜린의 책을 읽으며 하루종일 공부하는 그녀의 삶에 충격을 받았던 때가 기억난다. 나는 그 부분에서 더 이상 책의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식사도 커피와 빵으로 간단히 먹으며 오로지 공부만 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삶도 있구나! 공부는 하기 싫은 것, 지겨운 것이었는데, 이토록 공부만 하는 삶도 있구나! 그즈음 나의 학업에 대한 열망이 이렇게 책의 어느 구절에 꽂혀 나 또한 평생 공부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공부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즐겁다. 누군가 얘기하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처럼 나에게 공부는 취미가 되어버렸다. 

 

노구의 학자처럼 나이 들어서도 교단에 설 수야 없겠지만, 평생토록, 죽을 때까지, 지금처럼 늘 공부하고 싶다. 나의 시력이 버텨주기만 바랄 뿐이고, 만약 나의 눈이 노환으로 자신의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면 어떤 도구를 써서라도 나의 공부욕은 채워갈 테다. 

 

내가 가장 욕심을 내는 것은 다른 사람이 가진 '미모'나 '부'가 아니다. 나의 첫 번째이자 가장 왕성한 욕심덩어리는 바로 '공부'. '지성'이다. 내 삶을 지성과 지혜로움으로 채워가는 것. '앎'의 삶이다. 그래서 단순히 공부만 하고 독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독한 삶을 선택하고, 사색하고, 명상하는 삶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새로운 언어 체계를 배우를 학문을 '그람마(gramma)'라고 불렀다.... 그람마는 단순한 단어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단어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기술이다. 배치에는 순서가 있어야 하고, 강조를 위한 침묵의 공간도 있어야 한다. 그람마는 곧 최적의 배열이다. 그래야 그 문장이 감동적이며 아름답다. 동양에서는 그람마를 문법(文法)이라고 한다. 문법은 어떤 언어가 소통의 수단이 되기 위해 오랜 기간 갈고닦은 원칙이다. 문법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언어만의 내공이며 무늬다. 단어들은 문법을 통해 언어로 완성되어 우리에게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을 전달한다. 법이란 보이지는 않지만 문자들을 지배하는 도덕이며 규율이다. 그 법 없이 문자들은 존재할 수 없다.

 

이 책의 '문법' 부분을 읽으며 이것이 수련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역시 저자는 언어의 체계인 그람마 즉 문법을 또 이렇게 풀어낸다. 보이지 않지만 지배하는 도덕이며 규율이라고. 무조건 단어만 아무렇게 나열한다면 그건 언어가 아니고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저마다 지껄이는 소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정해진 규칙이 있어 상호교환이 가능하다. 우리의 감정마저도 언어로 전달이 되고, 모든 지식도 언어로 전달이 된다. 그래서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한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최선의 삶의 문법을 찾은 도인이었다. 나도 그처럼 나의 삶을 숭고하게 표현할 문법을 가지고 있는지 문득 의문이 든다. 그 문법을 통해 세상에 '나'라는 아름다운 시를 낭독할 수 있을까?

 

저자가 수메르어를 통해, 언어의 문법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것일 테다. 저자는 이 책의 전체를 통해 '고유함'을 말한다. 아마도 자신만의 문법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그것일 테다. '나'를 표현할 아름다운 시, 그건 나만의 문법이 있을 때 가능하리라. 환갑이 지나고 또 좀 더 시간이 흐르면 나만의 아름다운 시 한 편 쓸 수 있을까? 또 '퓨처셀프'다. 그런 나를 위해 나는 오늘도 또 책상 앞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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