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은 스스로에게 만족할 줄 안다. 그는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한 가지를 찾았거나 찾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며,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성공에는 두 가지 방해꾼이 있다. 내가 향하는 길에서 나를 이탈시켜 거짓된 길로 인도하는 유혹들이다.
성공의 첫 번째 방해꾼은 부러움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수련을 한 적이 없고, 자신을 우주 안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대접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 남을 부러워한다.
자신을 위한 최선의 기준을 스스로 만든 적이 없기 때문에 남의 기준을 자신의 기준인 양 착각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길이 고유한 것인 줄 알고 집착하기 시작한다.
남을 부러워하는 삶, 남이 소유한 것을 나도 갖고자 하는 삶, 남이 말하는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착각하는 삶, 나는 그런 삶을 무식(無識)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식이란 자신을 위한 최선을 모른 채 어영부영 사는 삶이다.
무식(無識)이라고? 헐~~ 충격이다. 왜냐고? 내가 그러니까...
자신에게 집중하는 수련을 한 적이 없고,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대접하지 못했으니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다른 이를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얼마나 배 아파하고 시기, 질투했던가! 그래! 정말 무식했구나! 그래도 아주 조금 다행인 것은 내가 환갑 가까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조금씩 깨달아온 과정과 암환자가 되면서 조금은 더 성장한 나의 자아가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나에게로 돌려주었고, 나의 깊은 심연 속으로 들어가 나를 들여다보게 해 주었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해 주었다. 결국, 수련의 과정을 겪는 중이라는 것! 또한 내가 타고난 '자기 사랑꾼'이라 나의 소중함을 일찍부터 알았고, 내가 상처받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내가 최고라 생각하며 자신을 다독여왔다는 것!
그러나 아직도 한참 모자라 여전히 돈과 미모에 부러움을 느낀다. 그러다 내가 가진것에 감사하며 그 마음을 애써 접는다. 아무렇지 않지는 않다는 것이다. 여전히 부러우나 이성으로 나를 다독이는 것이다. 그래~ 이 정도면 다행인거지,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면 이미 수련의 과정을 끝낸 거니 하산해야지, 난 아직 수련 중인 병아리 수준이 아니던가!
자신을 위한 최선을 모른 채 어영부영 살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무식한 삶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내 삶인데, 내 인생인데. 요즘말로 갓생을 살고 있는 나에게 어영부영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런데 나의 갓생이 남의 기준을 쫓는 것이라면? 그건 안될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수련 중인 거겠지. 이 힘든 과정을 겪으며 매일의 나를 살아내는 것이겠지.
두 번째 방해꾼은 흉내다. 흉내는 부러움의 표현이다. 부러움이 정신적인 활동이라면, 흉내는 육체적인 활동이다.
흉내를 내는 사람은 진부하다. 사람은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을 표현할 때 독창적이며 매력적이다.
... 고유함에는 진정성이 깃들어 있어서 듣는 이의 마음속에 있는 진정성과 공명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아름다운 선율로 변화한다. 흉내는 자신의 고유함을 포기하려는 자살행위다.
'고유함'이라는 단어가 울림을 준다. 남들이 보기에 나만의 고유함이 있을까? 아니면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고유함은 뭘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내가 갖고 싶은 나만의 고유함은 밝고 긍정적이고 여유롭고 지적인 사람이다. 꽃으로 비유하자면 장미처럼 열정적이지고, 국화처럼 온화한 이미지를 갖고 싶다.
아무튼, 다른이를 쫓느라 정작 '나'를 잃지 않아야 한다. 최소한 저자가 말하는 대로 그런 자살행위는 안 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 남을 쫓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내가 누군가를 쫓아한다면 그건 그가 가진 외적인 부분이 아닌 내면의 멋짐을 발견하고 나도 그런 모습으로 변화하고 싶은 아주 지극히 건강한 부러움일 테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거추장스러운 것은 우리를 목표점에서 이탈하게 만들고, 우리의 시선을 희미하게 만드는 마음의 유혹이다. 우리는 그것을 욕심이라고 한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이 욕심은 마음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에게 어떤 욕심이 있는지 돌아본다. 나는 일확천금을 노리거나 큰 부자를 꿈꾸지는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테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의 욕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젠 이런 정도의 욕심도 없는 거 같다. 그저 지금처럼만 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지금처럼 공부하고, 지금처럼 남편과 재미있게 살고, 지금처럼 혼자서 책 읽고 음악 들으며 살고 싶다. 언제 죽을지 모르겠으나 수십 년 이렇게 살아가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이 정도 누리면서 살아갈 수는 있겠지. 돈에 맞추어 살아가면 되겠지. 내 안의 깊은 곳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에 대한 최선의 기준을 찾는 과정이 수련이 아닐까 한다. 그것이 있다면 자신만의 고유함이 드러날 것이고, 남을 보며 부러움을 느낄 일도 없을 것이다.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가는 이에겐 남을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볼 시간조차 나지 않을 거다. 오늘도 나는 그런 수련의 과정을 겪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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