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도 더 전에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고, 한때는 무척 친했고, 또 한때는 모른척하며 살아왔던 친구로부터 딸의 결혼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2년 전 있었던 내 아들의 결혼을 카톡대문으로 알았을 테고, 그것이 작은 결혼식이었던지 뭐든지 간에 축하의 메시지라도 보낼 수 있었을 터인데, 우리가 모른척하며 살았던 시기여서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었다. 나는 하나뿐인 내 아들의 결혼식을 성당에서 정말 단출하게 치렀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깨달았고, 몇 가지 마음먹은 것들이 있었다.
성대하게 치러지는 결혼식의 수혜자는 누구일까? 과연 결혼하는 새신랑, 새신부일까? 그 가족, 친지들일까? 전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결혼문화는 상업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결혼식, 그날만 만족하는 결혼식이다. 결혼과 관련된 업체들 배 불리는 장삿속에 불과하다.
이런 결혼식에 익숙한 나와 내 남편의 가족, 지인들은 우리 아들의 아주 작은 결혼식에 절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가 여러 행사에 부조해왔던 돈을 돌려받을 수 없음을 안타깝게 또는 어이없게 생각하고, 혹시 우리 아이들에게 흠결이 있는지를 의심하기도 했다. 잘하는 거라는 칭찬은 없었고,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느냐고 의문을 품는 것이 가장 '순한 맛'이었다.
이런 지경이니 그 과정을 겪는 나와 남편도 참 힘들었다. 우리의 행사인데 남들에게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훈계를 들었고, 내 경우엔 나의 사촌 오빠는 화를 내기도 했었다. 정말 남의 집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였다.
결혼식이 끝나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흘러갔다.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가까운 가족과 남편 지인들은 거의 부조금을 보내왔다. 오히려 나의 경우는 50%만이 부조금을 보내왔다. 물론 나는 추후 그들에게 그에 해당하는 식사 대접을 했다. 예식장과 식사 비용, 요즘 당연히 한다는 '스드메'비용이 없으니 부조금은 고스란히 우리 손에 들어왔고, 우린 그 돈으로 가까운 가족들과의 며느리 상견례를 겸한 식사 비용과 며느리 반지 등의 비용을 치르고도 돈이 남았다. 예식장과 식당에 갖다 바칠 돈을 우리가 갖게 되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들과 며느리는 자신들의 결혼에 만족했고, 잘 살고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우리는 예단이니 한복대여니 부산 떨지 않아서 좋았다. 결혼식은 성당 미사였기에 조용히 치러졌고, 결혼식 후, 아이들과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며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작은 결혼식을 추천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결혼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을 거 같다.
나의 아들의 결혼식이 이러하니 나는 앞으로 누구의 결혼식에 초대받을일이 그다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그래도 초대받는다면 적당히 부조를 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 부조할 일이 생기곤 했다. 그런데 내 아들의 결혼을 알고도 연락조차 없던 그녀에게서 자신의 딸 결혼소식을 들으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녀도 미안해했지만, 그녀의 마음엔 내가 그녀 딸의 결혼식에 응한다면 앞으로 있을 부모님의 상에 서로 오가면 되리라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틀린 계산은 아니지만, 사실 나의 계산은 달랐다. 나는 서로의 부모님 상에도 다니지 않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딸 결혼식에 참여치는 않고 부조금을 조금 넉넉히 보냈다. 이혼을 한 후 혼자 키워낸 딸의 결혼식이 무척 자랑스러울 텐데, 모르면 몰랐지 이렇게 알게 되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고, 또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동안 서로 안 보고 살긴 했지만 또 어떻게든 연락이 되었다면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거라 생각하니, 꼭 네가 이랬으니 나도 이래야지 하는 마음이 아니라 근사한 저녁식사 함께 했다고 생각하자 싶었다.
이 일을 겪은 후 내 머릿속이 여러가지 잡념들로 가득 찼었다. 엄마를 닮아 예쁘기도 했지만 성형수술 등으로 연예인처럼 예쁜 그녀의 딸의 모습과 성대한 호텔 결혼식, 우리나라 굴지의 회사 연구실에 다닌다는 사위, 안 봐도 뻔한 강남 어딘가의 아파트 신혼집... 갑자기 비교되는 내 아들과 며느리... 작은 결혼식이 갑자기 초라한 결혼식으로 느껴지고, 둘이 살기에 적당한 분당 아파트가 나의 못난 경제력으로 다가오고, 얼마 전 아마존으로의 이직이 안 된 아들에게 안타까움이 더 커지고 있었다. 세상에... 우리 잘난 아들, 며느리에게 내가 못할 짓을 하고 있었다. 성숙하고 지혜로운 내 새끼들을 그 허례허식에 가득 찬(이건 내 생각) 누구와 감히 비교를 하다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꾸리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고, 외식보다는 식사도 직접 만들어 먹고, 주일마다 성당도 잘 다니는 건강하고 예쁜 내 아이들을... 미안함에 고개를 떨구었다. 물론 혼자 생각했기에 우리 아이들은 모르는 일이지만.
나의 부조로 그녀와 계속 연락이 이어졌다. 사실 나는 그녀와 인연을 이어갈 마음이 크지는 않았다. 그녀와 나는 결이 다르기에 계속 만남을 이어갈 만큼 공감대가 없을 거다. 어쩌다 만나면 예전의 추억으로 할 이야기가 있고, 잠시의 사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낼 수는 있겠지만 내가 원하는 만남의 결은 아닐 것이기에. 그러나 그녀는 이번 일로 나와 인연의 끈을 이어가려는 듯싶다. 나도 우리 둘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그녀는 중학교 때 친했던 다른 친구까지 만나고 싶어 했다. 그녀보다는 나와 더 친했던 친구까지 소환해 셋이 만나는 것을 원하는 모양이다. 내가 그 친구와 어떻게든 연락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친구의 연락처를 알아낼 길이 없고 굳이 알아내고 싶지도 않다. 지금 알고 있는 지인들과 적당히 만나며 살기도 바쁜데, 연락 안 한 지 삼십 년이 넘는 친구를 찾는다고?
아마도 그녀는 이제 살만해지고 여유가 있으니 자신의 그런 삶을 드러내고 싶은 모양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그와 비교되는 나를 또 돌아보게 되었다. 그녀보다 작은 아파트, 그녀의 벌이보다 못한 우리 남편의 벌이.. 이런 것이 드러나는 것이 싫었다. 노후로 갈수록 더 잘 사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고, 그저 굶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내 모습이 보였다.
아! 나는 또 내가 부끄러웠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그녀는 오히려 나의 처지를 부러워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나도 언젠가는 혼자될 테고, 그건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물론 남편보다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지만) 아무튼 언젠가는 혼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떼어두고, 나는 정말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고(?) 있다. 착하고 고운 내 남편과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에서 알콩달콩 살고 있다. 2,3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 다닐 만큼 부유하지는 않지만 한 달에 두 번 이상 국내 여행을 다니고, 아주 가끔 해외여행 가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고 있지 않은가! 이 이상 무엇을 바라는가! 뭘 비교하는가!
최근에 그녀의 딸의 결혼식으로 생각지도 않은 잡념에 휘둘렸다. 그 잡념은 나를 또 돌아보게 했고, 사색의 시간을 갖게 했다. 그녀에게 고맙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으니.
또 하나 더! 나는 내 주변의 것들에 쉽게 마음이 흔들린다. 단단한 나무가 아니라 갈대 같다. 이는 여러 의미를 포함한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던가,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심지 굳게 단단하게 아무렇지 않지 않다. 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휘둘린다. 잠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그러나 갈대의 뿌리가 깊다. 흔들리지만 뽑히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흔들림으로 인해 갈대의 뿌리는 더 깊어진다. 이게 나다! 그래서 다행이다. 그래서 내가 밉지 않고, 실망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믿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