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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수련, 정적, 승화

정적 5 - 스타일(style)

by 짱2 2025. 6. 28.

스타일(style) - 나를 정의하는 문법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삶의 문법이 있다. 오늘 하루는 그 문법을 준수하고 확장하는 기회다. 하루라는 시간은 내가 순수하게 만들어낸 사적인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이며, 그것이 나를 떠나 타인을 통해 재창조되는 공간이다. 

 

롤랑 바르트의 용어를 빌리자면, 볼 수는 있으나 손으로 잡을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저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밤하늘의 별과 같아서 내가 멀리서 관조하고 흠모할 수 있지만 접근이 불가능하고 불허하는 금기다. 

그러나 이 금기가 없다면 나의 일상은 무의미로 전락할 것이다. 그 금기인 문법을 추구할 때, 나도 모르는 것이 등장해 나를 감싸고, 결국 나의 피와 살이 될 것이다. 그것이 '스타일(style)'이다. 

스타일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내가 기꺼이 순교할 수 있는 가치다. 인류 문화와 문명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만든 작품이다. 

 

저자가 말하는 스타일이 바로 흡수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부끄럽게도 내가 아는 스타일은 패션과 어울리는 단어로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문학자인 저자가 스타일에 대해 쓸 것이 뭐가 있을까' 의문을 가지고 읽으면서도 왜 문법이란 단어가 나오는지 의아했다. 몇 번을 반복해 읽고 되뇌며 서서히 이해되기 시작한 저자의 스타일의 의미가 어렴풋이 다가왔다. 만약 저자가 단순히 '말', '언어'라는 표현을 썼다면 나의 이해는 좀 더 쉬웠을 거다. 그러나 저자는 '문법'이라는 단어를 썼다. 

 

 

 

스타일은 자신을 정의하는 아우라이며 문법이다. 이 문법이 없다면 내가 하루 동안 떠올리는 생각들은 잡념이 되고, 그 생각에서 나오는 말들은 잡담이 된다. 그리고 나의 행동들은 굳이 안 해도 되는 헛수고가 된다.

 

 

아! 이거구나!! 몇 번을 반복한 후에야 이 글이 눈에 들어와 가슴으로 후벼들었다. 문법이 없는 말들은 그저 잡념이고, 잡담이고, 헛수고다. 

 

이 글을 쓰는 순간, 내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나는 지금까지 수억, 수백억, 수천억, 수조, 아니 무한대로 이어지는 말들을 내뱉고 살았지만 그저 잡념이고 잡담이었구나. 내가 했던 행동들은 헛수고였구나. 사람들을 만나 목이 아프도록 떠들어댔던 나의 모든 언어가 그토록 허전했던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나는 내 언어가 누군가의 가슴으로 흘러들어 공감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 그와 내가 하나 되는 느낌을 받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지금껏 그런 이를 만나지 못했다. 그것이 내가 만나는 이들의 한계이고, 나의 한계이고, 내 언어의 한계였던 거다. 그렇다면 내가 그토록 바라는 그 무엇은 나만의 문법을 찾는 것이 되는 걸까? 

 

 

 

스타일은 자신의 생각을 손을 통해 글로 표현하는 것이지만, 폭넓은 의미로는 삶의 태도이자 삶의 방식이다. 

 

저자는 말한다. 나에게 강요한다. 말과 글 뿐만이 아닌 내 삶의 태도와 방식까지 변해야 함을... 50세 되던 그 해, 나는 암환자가 되었고, 그 시기를 기점으로 나의 삶은 많이 바뀌었다.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흘러 50세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때의 말습관, 그때의 행동, 그때의 사고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 50년의 삶, 어릴 적부터, 아니 태어날 때부터 가진 나의 숙명적 기질은 내 깊은 곳에 남아 여전히 나라는 사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변화는 쉽지 않다.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스며들어야 한다.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거나 무언가를 광고하기 위해 기반이 되는 설치물이 스타일이다. 연필이나 펜의 끝이 뾰족하듯이, 설치를 위한 나무의 끝은 날카로워야 한다.

스타일은 자신이 헌신할 수 있는 삶의 원칙이자 문법이다. 내 삶을 지탱해줄 나만의 스타일은 무엇인가?

 

날카로움. 무딘 것으로는 변화하기 어렵다. 날카롭고 뾰족한 것이 변화를 만든다. 나에게 날카롭고 뾰족한 펜촉은 무얼까? 내 삶의 문법은 무얼까? 

 

 

 

'스타일'의 원래 의미는 '나를 세워주는 어떤 것'이라는 뜻이다.

 

환갑을 향해 가는 지금의 나는, 아니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의 삶을 추구해 왔다. 삶은 사는 것이고, 또 사랑하며 사는 것이며, 늘 배우면서 사는 것이다. '사는 것'은 아무렇게나 또는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열심히 그러나 지칠 만큼은 아닌 적당한 '열심'을 다 하는 삶이며, 남들이 보기에도 그러나 무엇보다 스스로 보기에도 참 보기 좋고 고운 모습인 삶이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가족만을 지인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인류 아니 모든 생명, 지구까지 사랑하며 사는 삶이다. '배움'은 탐구이며 도전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까지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다. 만약 나에게 "당신의 스타일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지금처럼 풀어내며 이게 나의 스타일이라고 말하리라. 좀 더 간단히 설명해 달라고 요구한다면 "즐겁게 열심히 살며, 지구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호기심 가득한 배움을 위한 도전이다"라고 당당히 말하겠다. 

 

다시 궁금해진다. 내가 추구하는 삶을 언어로 풀어냈지만 나의 문법은? 나의 스타일은? 저자가 말하듯 자신이 헌신할 수 있는 삶의 원칙이라면 나는 무엇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솔직함? 이건 내가 가진 내 성향인데... 이것이 나의 스타일? 문법? 맞는걸까? 잘 모르겠다. 어떤 날카로움이 나를 찌르고 깎아내야 알아낼까? 

 

 

 

필사자는 밀랍으로 만든 태블릿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전에 쓴 기호를 말끔히 지우고, 그 위에 새롭게 글씨를 기록했다. 

 

저자는 우리에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이전의 것들을 모두 지우고 뾰족하고 날카로운 펜으로 새롭게 글을 쓰라한다. 나에게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나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고 압력을 넣는듯하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허전함이 나의 욕심이라 생각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한계가 싫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나의 한계였으리라. 나만의 스타일을, 나만의 문법을 가지지 못한 나의 한계였음을 깨닫는다. 좀 더 날카로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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