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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수련, 정적, 승화

정적 4 - 의도(意圖)

by 짱2 2025. 4. 26.

의도(意圖) - 내 마음의 지도

 

배철현 교수의 글을 옮겨 적을 때마다 느끼지만, 제목을 짓는 깊은 통찰력, 그리고 그 제목의 풀이까지 참 지혜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도 없이 썼을 '의도'의 의미가 이렇듯 단호하고, 풍성하게 마음에 와닿을 줄은 몰랐다. 내 마음의 지도... 이 말이 그 시작점이고 끝이구나 싶을 정도다. 

 

저자는 자연의 몰입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다. 산과 강, 모든 자연은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하기에 매력적이고 자유롭다고 한다. 산은 자신의 자리에서 모든 것들을 기꺼이 환영하며 받아들이고, 강은 자신이 가야 할 목표점, 바다를 향해 정진할 뿐이라고. 자신으로 오롯이 있을 수 있고, 자신의 목표만을 향해 정진할 수 있을 때, 몰입할 수 있다. 자신의 자유 의지로 선택한 목표가 있어야 그곳으로 가겠다는 내 마음의 의도를 가지게 되고, 진정한 몰입이 가능하다. 나에겐 아직 목표가 없다. 그걸 알고 싶어 이렇게 글쓰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알고 있다. 매일 그곳에 가기 위한 최적의 길을 발굴해 묵묵히 걸어간다. 그는 자신이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목적지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신이 올바른 길 위에 있다고 확신한다.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길을 저 높은 경지에서 관조해 발견했기 때문에, 그의 발걸음은 가볍고 활기차다. 

 

그 여정은 깊은 묵상을 수련하는 자에게 수여되는 선물이다. 그는 그 길로부터 이탈시키려는 그 어떤 달콤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가야 할 이정표가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지도가 의도(意圖)다. 의도는 목적지를 향해 걷는 수행자의 내공이다. 평온한 사람은 마음속 깊이 은밀하게 의도한 것들을 말과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렇구나... 나는 현명하지 못하구나... 아직도 목표를 찾고 헤매고 있으니... 누군가는 말한다. 그저 사는거라고. 그리고 내게 말한다. 다. 그냥 살라고.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고. 그런데 난 그런 삶이 싫다. 정처 없이 걷는 여정이 아니라 목적지가 있어 그곳으로 향해 가는 여정이고 싶다. 물론 살다 보면 그 목표점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고, 직선의 여정이 좀 돌아가는 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왜 내가 이 길을 가는지 모른 채 그냥 걸어만 가는 여정은 거부한다. 목적지가 있어야 가는 과정이 더 즐겁고, 조금 고되어도 참아낼 수 있는 힘도 나지 않을까? 또 생각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한다면 잠시 머물다 다른 목적지를 정하고 또다시 그 여행의 과정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그냥 살아지는거라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도 이젠 지겹다. 예전에는 오히려 그들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착각했다. 힘들게 고민하나, 아무 생각 없이 가나,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삶 속에, 혼자만 유난스럽게 고민하는 척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이 세상을 달관한 것도 아니고, 자기만의 어떤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삶이 전혀 멋지지 않았고, 내가 보는 관점에서 성공적인 삶으로도 또 편안한 삶으로도, 갑진 삶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고되더라도 자기만의 길을 충실히 가는 사람이 내겐 훨씬 아름답게 다가왔다.

 

 

 

인생은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자에게는 불평과 불만의 대상이다.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들어서지 않고 남들에게 주어진 길을 따라가기 때문에 신명이 나지 않아 하루하루가 힘들다. 그러나 자신의 임무를 아는 사람은 인생 여정의 지도를 가졌기에 하루하루 가야 할 구간을 간다. 

 

예전에 류시천 저자의 '1페이지 꿈지도'를 읽고 '피시본'처럼 생긴 나의 꿈지도를 한 번 그려보았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책 중의 '퓨쳐셀프'를 읽고 미래의 나를 그려보며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적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내가 단기 목표는 있는데 장기 목표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금도 나의 단기목표는 4년 후, 정확히는 3년 반 후, 내가 환갑이 되는 때에 내가 스스로 정해서 다니고 있는 영문학과를 졸업하고(어느 정도의 영어실력을 쌓았으니), (나만의) 해외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다음의 목적지가 없다. 막연하게 나의 영어실력으로 봉사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볼 생각은 하고 있으나 모든 것이 막연하다. 그래서 나만의 영문학과 학생인 이 시기동안 장기 목표를 찾는 여정을 추가했다. 그래서 독서와 사색, 글쓰기를 꾸준히 하는 중이다. 

 

어쩌면 지금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내 나머지 인생 지도를 그려나갈수도 있다. 그렇다면 천만다행이다. 지금 내가 걷는 이 걸음이 헛된 걸음은 아님을 알고 있다. 다만 좀 더 빨리, 좀 더 명확히 알고, 깨닫고 갔으면 싶다. 모든 것이 희미한 지금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명확해지면 의도가 분명해질 테고, 더 신나게 갈 힘이 생길 테니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졌지만,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보니 사람들은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돈과 재산을 증식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은 무시한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 중 시간을 가장 값진 것으로 여긴다. 하루라는 시간을 장악학 위한 사색, 그리고 사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나침반인 의도는 하루를 가치 있게 만든다. 

 

나는 시간을 정말 귀하게 생각한다. 하루, 한 시간, 1분도 아깝다. 나에게 쓰는 시간은 아깝지 않은데, 불필요한 사람에게, 불필요한 일에 쓰여지는 내 시간은 정말 아까워서 미칠 지경이다. 그런 시간이 있다면 독서를 더 하겠다. 차라리 집에서 낮잠을 자겠다. 주변을 보면 정말 시간 아까운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와는 결이 다르구나 싶어서 멀리하게 된다. 혼자 고독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꼭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참 한심하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보거나 공연을 보러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혼자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가곤 한다. 그들과 맞는 시간을 정해 공연을 봐야 하는 것도 힘들고, 그날에 함께 밥도 먹어야 하고, 차도 마셔야 한다.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고 가끔은 필요하지만, 대체로 혼자 가고 싶은 곳에 쉬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여유를 부리다 보고 싶은 공연이나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정말 행복하다. 다행이다. 내가 시간의 중요함을 깨닫고, 시간 속에서 사색하는 삶의 방식을 알아가고 있으니.

 

 

의도는 자신을 위한 구별된 시간과 장소에서 누리는 최선의 사치인 '고독'을 통해 숙성되는 내면의 소리다. 그 음성은 내가 오늘 반드시 행해야 할 임무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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