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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살아지는것이 아니라 산다

by 짱2 2020. 1. 10.

내 삶을 크게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눈다면...

결혼하기 전, 결혼 후, 그리고 암 진단을 받은 후의 삶으로 나눌 수 있겠다.

 

결혼 전, 나는 정말 철없는 아이였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이 철이 없겠지만, 신체적인 장애와 괘팍한 아버지로 인해 바른 인성을 키우지 못한 채, 성격이상자와 같은 행동을 일삼고 있었다.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이고, 모든 화를 엄마에게 돌리며 소리지르고 말대답하고, 어떻게 하면 지긋지긋한 집에서 나올까를 궁리했다. 

이쁘장했기에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제법 있어서 그걸 즐겼고, 내 감정과는 상관없이 남자들이 나를 좋아하면 내 마음을 열었고, 그들로부터 내 일상의 돌파구를 찾았지만 그들은 나에게 그런 존재가 결국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늘 방황하고, 제갈길을 찾지 못하는 길 잃은 어린양 이었다.

나를 이끌어줄 언니나 오빠도 없었고, 부모님은 경멸의 대상이었으며,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을 가진 친구들은 그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학교도, 직장도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내는 것이 없었다.

돈 한번 제대로 벌어본 적도 없이, 내가 쫒는 무지개가 뭔지도 모른 채 무지개를 쫒는 어리석은 아이.

아무도 내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해주지 않았고, 누구도 나에게 이런 길로 이렇게 가라고 말해주지 않았고, 나조차도 내가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한 번도 생각지 못했고, 내가 어느 곳에 서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20대 초반이 되었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결혼을 서둘렀다.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다만 지긋지긋한 집으로부터의 도망이었고, 돈을 벌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으리라는 계략(?)이었다.

아~ 나는 복을 받았다.

하느님은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하셨다.

남편은 정말 착하고 고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늘 고운 사람이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을 지지해주고, 여자로서 받을 수 있는 사랑을 다 받았다.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감성적인 사람도 아니고, 술과 친구를 좋아해 나를 혼자 있게 하는 날이 많아 나를 알코올 중독으로 만드는데 일조를 한 사람이지만,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고, 온화한 사람이다.

괴팍함으로, 짜증으로 가득한 나는 독기를 가득 품고 쌈닭으로 돌변하기 일쑤였지만, 늘 한 템포 뒤로 물러나 기다려주는 남편 덕분에 나 스스로 내려놓는 과정을 통해 한 걸음씩 성숙해졌고,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할 수 있게 도와준 덕분에 가방끈도 길어졌다. ㅎㅎ

남들은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둘 나이에 영어학원쌤이 되었고, 월급도 제법 된다.

어린 나이, 철없던 내가 못된 남자를 만났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물론 내가 성장한 과정엔 오로지 남편의 몫만 있지는 않다.

당연히 그런 남편을 알아보는 나의 고운 마음과 자신을 늘 돌아보는 성찰과 미래를 꿈꾸고 노력하는 매일의 노력이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년을 살아오면서 난 늘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진다는 표현을 줄곧 쓰곤 했다.

사랑하는 남편과 느무느무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의 아들과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 모두 하고, 사고 싶은 것 모두 사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난 늘 살아진다는 표현을 했다.

신앙도 있고, 신앙의 삶 속에서 성경을 공부하며 나를 알아가고 있었음에도 난 늘 살아진다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주체적인 삶을 살지 않고 있던 걸까?

삶이 뭔지 아직 깨닫지 못했던 걸까?

 

내 삶의 세 번째 단계, 암 진단을 받고, 암 수술을 한 후의 나는 이제 내 삶을 살고 있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고' 있다.

남편의 나온 배, 아들의 웃음, 흘러가는 구름, 스치는 바람, 따스한 한줄기 햇살, 흔들리는 나뭇잎...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지나가는 아이의 엄마를 향해 짹짹거리는 참새 같은 말, 23평의 따스한 내 공간, 편안한 침대 위 따뜻한 침구...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삶을 어찌 살아진다고 표현하는가!

난 살아내고 있다. 살아가고 있다. 살고 있다. 

난 이 삶을 사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고 사랑한다. 

내가 얼마나 살지, 얼마나 건강할지, 얼마나 아플지 모르지만 난 정말 잘 살고 있고, 잘 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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