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멀리 있지 않음을...
행복은 큰 것이 아님을...
그래... 알고 있었지. 잘 알고 있었지.
그리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지.
그런데 암환자가 된 후엔 그 행복감이 더욱 커졌지.
감정에 흔들리던 행복이 이젠 붙박이가 되어 늘 나와 함께 하고 있지.
촉촉한 봄비가 내리는 이 아침.
새벽 루틴을 모두 마치고, 사과 홍차를 만들어 책상 앞에 앉으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아름다운 음악이 듣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틀고 책상 앞에 앉아 모닝 루틴인 2시간 30분의 공부를 시작하려 하는데, 넘치는 행복감에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따뜻한 공간, 아늑한 침대, 사랑하는 사람, 따끈한 국과 향기로운 나물반찬...
개수대에 가득 담긴 설거지거리마저도 사랑스럽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한 식사의 잔상들.
건강한 밥상을 준비한 나의 노력의 흔적들.
출근하기 전, 또 한 번 먹기 위해 그대로 둔 맛난 음식들.
먹을 수 있고, 소화시킬 수 있고, 건강한 변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위와 대장을 잘라낸 후에 알게 됐다.
메스꺼움, 구토, 하루 2~30번의 시도 때도 없는 설사, 복통...
하루 종일 내 몸에서 일어나는 몹쓸 반란과 싸운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고통이련만, 나는 참 바보처럼 이겨냈다.
잠시라도 통증이 없어지면 금방 행복해하는 사람... 가만히 있지 못하고 집안일이라도 하나 집어 드는 사람.. 나.
그랬기에 이겨냈을까?
출근하기엔 버거웠음에도 이를 악물고 출근하고, 다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아이들을 다시 가르칠 수 있음에 행복해했고, 자랑스러워했기에 이렇게 다시 건강해질 수 있었을까?
잠시 느껴지는 죽음의 그림자에도 나의 죽음이 슬퍼서가 아니라, 남겨질 가족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고, 얼마 되지 않는 돈도 남겨질 남편이 잘 찾을 수 있기를 바랬다.
언제 돌발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설사 대마왕과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여행을 떠났다.
먹고, 아파하고, 설사하면서도 악착같이 돌아다녔다.
울릉도에도, 베트남에도 다녀왔다.
아프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예전과 같은 줄 아는 바보 같은 천진함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는지도 모른다.
촉촉한 비가 세상을 적시고, 이젠 그쳤다.
사과향과 어루어진 따뜻한 홍차가 전해주는 향기로운 달콤함에 젖어 오늘도 나는 행복이라는 글자를 가슴에 새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 아침 식사, 해야 할 공부가 있고,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가벼운 부담감과 설레임.
난 행복하다.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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