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밖에 모른다.
엄마에게 나는 딸이고 가장이며 이세상에서 가장 이쁘고, 가장 잘난 사람이다.
내가 하는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 엄마다.
아빠는 평생 엄마에게 잔소리와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할 나쁜 말도 하신다.
아빠는 엄마를 괴롭히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엄마를 쫒아다니면서 잔소리를 하신다.
'다른 여자같으면 예전에 헤어졌을텐데.. 나같으면 절대 같이 못살아..' 하면서도
'아빠를 만난것이 엄마의 업보이니 이혼하실거 아니면 그냥 살아야지 어쩌랴' 한다.
아무리 아빠에게 말을 해도, 아빠는 엄마가 잔소리를 듣게 한다며 당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어린 아이도 잔소리 하면 싫어할텐데..
70이 넘도록 잔소리와 욕을 들으며 사는 엄마의 속은 아마도 시커멓게 타다못해 재투성이가 되었을것이다.
말해 무엇하리...
다만 알면서도 모르는척 넘어가는수밖에..
이런 아빠와 평생을 사셨으니,
엄마는 아빠에게 의지를 하시지 못하시고, 딸인 나에게 하소연도 하고, 뒷담화도 하시면서 마음을 푸셨다.
물론 나는 다 받아주지 못했다.
엄마의 뒷담화는 내가 결혼을 한 다음부터라고해도 30년을 반복해서 듣는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를 듣고나면 기분좋게 시작한 하루가 나마져도 우울로 얼룩이져서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아빠와 힘든 이야기를 하면, 나도 우울해져서 살고싶지가 않아.
그냥 엄마 혼자서 삭히면 안될까? 나마져도 너무 힘들어서, 일을 제대로 할수가 없어'
못된 딸이다. 저만 편하자고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후로 엄마는 나에게 아빠 얘기를 줄였고, 하더라도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미안했지만, 내가 죽을거 같았다.
엄마에겐 이세상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나와 네살 아래인 아들이 있다.
아무래도 아들이다 보니.. 딸인 나만큼 엄마를 챙기지 못하고, 올케는 어차피 며느리라 시금치도 안먹을테니..
결국 엄마에겐 믿고 의지 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엄마는 경제적인 것도, 심적인 것도 모두 나에게 의지를 했다.
그래서 이세상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면서도 조금은 어려워했던듯 하다.
내가 하는 말은 왕이 하는 말이니 다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듯이 나에게 복종(?)하며 사셨다.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런 딸이 갑자기 병원을 다니며 중증 환자가 되었고,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다니..
얼마나 청천벽력같은 일인가!
엄마의 재투성이 가슴은 아픈 딸로 꽉 채워졌다.
엄마에겐 아무것도 보이지않고, 들리지 않았다.
그저 딸이 건강을 찾는것밖에..
엄마는 매일 병원을 찾았고, 퇴원후에는 매일 나의 집으로 오셨다.
엄마는 우리집에서 자면서 나를 돌보려고 하셨다.
나는 그런 엄마를 거부했다.
내가 똥오줌을 못가리고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있는것도 아니고,
혼자서 화장실 다니고, 혼자서 다먹고, 혼자서 무슨일이던지 할수있는데,
사위 불편하게 그렇게까지 할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서운하셨을것이다.
엄마는 온통 내생각뿐인데..
나는 엄마생각을 그만큼 하지 않는다.
가끔씩은 귀찮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 아들도 그럴까? 자식들은 다 그럴까?
나는 내 아들이 나처럼 귀찮기도 할거라고 생각하며 따로 살고 있는 아들에게 자주 오라는 말도 안한다.
이렇게 하는게 옳은건지 아닌지 나도 모른다.
다만 내가 그렇듯이 아들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나름의 배려(?)를 할뿐.
나의 엄마는 나밖에 모른다.
더군다나 이제는 아픈 딸, 잘못될수도 있을 딸이다.
나밖에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나만큼밖에 못하고 있다.
엄마만큼 커지려면 나는 아직도 멀었다.
아마 죽을때까지도 모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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