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 운동을 잘하지도 못하고, 운동하는 걸 제일 싫어했다. 나와 운동은 함께 하지 못하는, 격리된 두 개의 각각의 그 무엇이었다. 물론 늘 운동의 필요성을 알고, 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으나, 불쑥 한 번 걷기를 하곤 다시 제자리였었다. 그러다 암으로 수술을 하고 나니, 수술한 다음날부터 일어나서 걸으라고 한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수술하기 이틀 전부터 먹은 것도 없고 굶은 지 4일째인데, 겨우 숨만 쉬고 있는데, 걸어야 산다고 한다. 어쩌랴. 살아야지. 기를 쓰고 일어나 병원 복도를 걷고,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과 같은, 입으로 바람을 불어서 공을 올리는 작은 물체를 연신 불어댔다.
그 후로도 항암을 하면서, 내 몸은 계속 말라가고, 체력은 바닥을 향해 내려갔고, 운동은 늘 절실한 그 무엇이었다. 걷기도 하고, 요가도 조금 해 보다가, 올해 3월, 코로나로 출근을 하지 않게 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3월 13일부터 이소라 체조를 시작했다. 그리곤 11월까지 약 7개월간 정말 열심히 체조를 했고, 나름대로 어깨 쪽엔 아주 가는 근육들까지 생겼다며 나 스스로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그런데, 지겨워지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내가 좋아하는 동영상 보는 것과 묶어 나의 루틴으로 만들었던 운동이 어느 날부터 꾀가 나고, 안 하는 날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러나 지난주, 문득 달리기가 하고 싶어 졌다. 체인지 그라운드에서 한동안 달리기 프로젝트를 했던 생각이 나서 예전에 보았던 동영상을 보며 나를 자극시키고 있던 중, 이 책을 소개하는 걸 보고, 서둘러 도서관을 검색하니,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에 이 책이 있었다. 그 날로 바로 달리기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달릴 준비를 하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고, 부지런히 걸어가서, 이 책을 빌려 가방에 넣고, 집으로 오는 길에 달리기 시작했다. 30분 거리를 다녀오는 동안, 나는 3분을 뛰었다. 숨이 차서 오래 뛸 수가 없었고, 이렇게 될 줄은 이미 알고 있었다. 건강할 때 뛰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얼마 뛰지 못하고 걷고 뛰기를 반복했었다.
하지만 얼마나 멋진가! 뭉기적거리며 온갖 핑계를 대며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난 과감히 집 밖으로 나왔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 보지 않고, 그냥 뛰었다. 멋진 실행력이었다.
달리기라고 하기엔 멋쩍은 3분간의 달리기를 시작한 날,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이 책은 내가 생각한 책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작가의 자서전과도 같은 내용이어서 많은 부분을 대충 읽었고, 내가 필요한 부분은 책의 마지막 부분인 '입문자를 위한 조언 몇 가지'였다.
"처음에는 달리기가 고생스러울 것이다. 일시적으로 달리기가 싫을 수도 있다. 아니, 일시적이 아니라 제법 오랫동안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달리기가 가치 없는 일이 되진 않는다. 나는 간혹 추운 날씨에 달리다가 차라리 집에 있을걸 싶어 지면 애초에 달리기를 시작한 게 후회되기도 한다. 그래도 계속 달린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달리기만큼 열심히 한 게 없다. 그것만 해도 성취라면 성취다. 우리가 비록 얼굴 한번 못 본 사이지만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된다면 일단 달리기를 3개월은 한 후에 계속할지 말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다. 그쯤 되면 당신은 분명 발전해 있을 것이다. 그것만큼은 부디 날 믿어주시길."
"몸이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건 좋지만 너무 집착하진 말자.... 숨이 가빠지고, 땀이 나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팔다리가 떨린다. 한데 이런 증상은 모두 좋은 것이다! 긍정적인 상황에서 느껴지는 그런 감각에 곧 적응될 것이다. 호흡이 리듬감을 타며 안정되는 것을 느껴보자. 금방 익숙해질 것이다. 달리고 나서 어떤 기분이 드는지 잘 기억하거나 기록해서 하루 중 언제 달리는 게 가장 좋고, 나가기 전에 무엇을 먹거나 마시면 좋은지 파악하자. 규칙적인 달리기 습관을 만들어 불안증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
달리기를 시작하는 초보자에게 가장 적절한 도움의 말일듯싶다. 왜 하필 이렇게 추운 겨울에 달리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까? 밖에 나가서 추운 건 둘째 치고, 입고, 벗는 것이 너무 많아서, 문 밖으로 나가기까지의 과정에서 질려버린다. 그래도 겨울용 운동 장비를 따로 챙겨 두었고, 달리러 나갈 때는 그것들만 빠르게 꺼내 입고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정리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이 정도면 나의 의지는 충분하리라. 이소라 체조를 시작해서 7개월을 계속 해왔던 것처럼, 달리기도 꾸준히 해낼 생각이다.
이 책에 칙센트미하이 박사의 '몰입'이라 명명한 느낌이 있다. 갑자기 명징한 깨달음이 생겨 세계와 나의 연결성을 느끼고 그 속에서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조그만 자리를 보았다고 한다. 경쾌하게 발을 디디며 마음 편히 달렸고 생각은 거의 않았으며, 슬프지도 행동하지도 않았고, 그저 '지금 여기 있음'만 느껴졌다고 한다. 이런 '몰입'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작업에 완전히 집중할 것
명확한 목표와 즉각적 피드백이 있을 것
경험에 끝이 있고 보상이 따를 것
수고할 필요가 없을 만큼 쉬울 것
도전과 실력 발휘 사이에 균형이 있을 것
행동과 의식이 통합될 것
작업에 대한 지배력을 느낄 것
왠지 노력을 많이 해야 이를 수 있는 경지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첵센트미하이도 분명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몰입 능력은 의도적으로 길러야 한다. 그렇다고 무슨 숙제를 하거나 정신을 분석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내 경우에는 규칙적으로 달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물론 나는 그런 몰입을 위해 달리기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로지 나의 건강을 위한 도구이고, 움직이는 것에서 모든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시작하는 도전이다. 하지만 몰입은 현재의 내가 가장 추구하는 부분이어서 이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고, 달리기만 했을 뿐인데, 이런 몰입을 덤으로 얻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리라.
얼마 전, 나는 느닷없이 달리기를 시작했고, 달리기와 관련한 이 책을 그날 도서관에서 대출을 했고, 오늘도 달렸고, 적어도 일주일에 3일은 달릴 생각을 하고 있다. 만일 내가 밖에 있는데, 무언가를 들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편안한 신발을 신고 있다면, 나는 어디에서건 달리기를 할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다. 나의 건강을 위해, 나의 약한 체력을 위해, 무언가 도전을 한다는 멋진 경험을 위해, 그것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외부 운동을 시작했다. 이 책의 작가가 말하는 대로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하기 싫어도 3개월은 해내리라. 아니,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평생을 달려 볼 생각이고, 다음에 읽을 달리기 관련 서적은 그의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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