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일상

지난 3년은...

by 짱2 2021. 1. 24.

어느 날 문득, 암환자가 된 이후의 2년의 내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가까운 미래, 좀 더 구체적으로는 2021년을 생각하니, 3년의 삶이 한 번에 요약되었다. 굳이 일부러 어떤 목적이 있어서 생각을 하고, 구분을 한 것이 아니라, 문득 어떤 생각 끝에 떠올랐는데,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처럼 똬~악~ 나눠지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우선, 3년의 삶은 이렇게 나뉜다.

19년은 암 수술을 하고, 항암을 하며 암과 싸우고, 극복하고, 이겨낸 시간,

20년은 현실에, 사회에 적응하는 시간,

21년은 현재의 나를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의 진정한 나를 알아가는 시간.

 

2018년 12월, 건강검진으로 우연히 알게 된 위암과 대장암. 어이없는 마음에 믿어지지 않았지만, 현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2019년 1월 암 수술을 하면서 내 삶은 제 2의 인생으로 접어들었다.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되기 위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이토록 커다란 대가를 치르지 않고, 젊은 날에 깨달음을 얻었더라면 좋았으련만... '어리석은 나'는 내 몸이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못난 나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암이 무엇인지,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지 전혀 몰랐기에, 그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게 다가오는 대로 그냥 겪어냈다. 언젠가 내가 겪었던 그 고통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내 안에 인식되었었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슬픔이, 고통이 밀려와 숨이 멎을 정도였다.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시간이 흐른 뒤에 느껴질 만큼 하루하루 그 고통을 이겨내는 것에 몰입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하고, 자신은 그렇게 못했을거라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지금도 돌이켜보면,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겪을 수밖에 없었고, 잘 견뎌내고, 극복해 낸 내가 그저 대견할 뿐이다. 그렇게 말한 누군가도 본인에게 그런 일이 닥치면, 죽을 생각이 아닌 다음에는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살아야 하니까.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또 그런 일로 죽음을 선택하기엔 너무 어리석으니까. 

 

그렇게 나의 2019년의 삶은 암 수술과 항암을 겪어내고, 버텨내고, 치유의 과정을 시작할 준비를 한 시간이었다. 이런 지경에 이르도록 돌보아주지 내 몸에게 미안하면서 또 나 자신이 대견하고, 고마웠던 한 해였다.

 

몸이 서서히 회복되었지만, 아직은 50%밖에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정말 고맙게도 19년 여름부터 다시 출근하고 싶다는 욕심을 원장쌤에게 보였고, 그렇게 하도록 배려를 해준 덕분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출근을 했다. 하지만 아무 일은 있었다. 출퇴근하면서도, 수업을 하면서도 수시로 배가 아팠다. 살떨림 현상, 덤핑증후군과 싸워가며, 그리고 학원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혼자 끙끙거리며 버텼다. 모두들 나에게 출근은 무리라고 했으나 난 돈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힘들 거라고 했던 사람들을 처참하게 눌러주고 싶었다. 

 

내 예상은, 나의 의지는 옳았다. 나의 억척스러움으로 매일 출근을 하며, 화장을 하고, 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출퇴근길에 오르내려야 했던 전철역 계단들, 수많은 걸음, 배아픔을 참아내며 배변을 절제하는 연습,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 내가 다시 쌤으로 불리는 행복감 등등이 나의 몸 구석구석의 세포를 다 일으켜 세웠다. 때론 너무 힘들 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나를 눌렀다. 참 다행이다. 내가 넉넉하게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ㅎㅎ

 

직장은, 사실 원장쌤과 다른 쌤들에게 나의 마른 모습을 자주 보여줄 기회가 있었기에 좀 더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숙한 쌤들의 반응에 오히려 힘을 얻었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참 고마운 분들이다.

 

그런데 내가 한참 활동을 하던 동아리에 모습을 드러내는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거봐라. 그렇게 술 먹어대더니... 쯧쯧...' 그들이 속으로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예쁨에 최고 목표인 나에게 앙상하게 마른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두렵고 싫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부딪혀야 할 일이라면, 내가 그곳에 다시는 나가지 않을 마음이 아니라면 겪어야만 했고, 나는 용기를 내어 그들 앞에 당당히 나섰다. 아무렇지 않은 듯, 최대한 예쁘게 꾸미고... 역시... 처음만 어렵지, 그 한 번을 이겨내면 그다음부터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다. 나에 대한 그들의 호기심, 궁금증은 한 번으로 족하다. 내가 먼저 나서서 나의 힘듦을 얘기하니, 나의 이야기는 마치 성공스토리처럼 되어버렸고, 그들의 관심밖의 일이 되어버렸다.

 

모든 지인들과의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다시 건강해지고 있는 모습, 더 열심히 살아가는 내 모습에 그들은 오히려 매료된 듯 보인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테다. 왜냐하면 달라진 내 모습, 내 삶의 태도, 희망에 찬 에너지 뿜뿜에 나 스스로도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우니 말이다.

 

그렇게 2020년을 마무리 짓고, 2021년의 스물 네번째 날이 되었다. 아픔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는 연습을 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도 잡았다. 그런데 문득, 진정한, 궁극적인 나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표가 내 앞에 우뚝 서버렸다. 이렇다면 난 그 물음표를 억지로 밀어가며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그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억지로 밀고 나갈 미래가 아닌 힘껏 당겨줄 미래로 내 앞에 놓일 것이다. 나는 지금 그 물음표에 대한 해답을 찾는 중이고, 어느 정도 찾았다. 마무리짓는 중이고, 내 언어로 풀어낼 수 있어야 완전한 내 목표로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앞으로의 긴 삶의 여정에서 바뀔 수 있는 목표가 될 수 있을지라도. 어쩌면 그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