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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외로움 대신 고독

by 짱2 2021. 2. 6.

오늘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카테고리를 '나만의 책 일기'로 넣을까, 아니면 '나의 일상'으로 넣을까 고민을 했다. 책을 읽고 생각할 거리를 찾은 것인데, 아직 이 책의 리뷰로 쓸 만큼 다 읽은 상태도 아니고, 이 작가의 연작 시리즈 4권을 모두 끝낸 후 한꺼번에 정리를 하고 싶기 때문에, 나의 일상으로 결정을 했다. 다 읽지도 않은 책에서 지난번에 쓴 글도 그렇고 이번 일기도 그렇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구절을 자주 만난다. 사실, 이 책을 구입하기로 결심한 이유도 나를 보는 시간을 갖는 책 읽기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네 권의 책 값을 겁 없이 질러버렸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후회가 없는 책이고,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삶이 힘들 때마다 꺼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작가는 의학의 발전으로 19세기의 두 배인 100세 인생을 살며, 첫 50년은 가족을 위해, 그리고 생물학적인 의무를 위해 전념했다면, 두 번째 50년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의무를 위해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삶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습관은 '고독'이라고 한다. 고독은 혼자 있기를 심심해하는 외로움과는 다르다고 한다. 외로움은 불안이며 두려움이지만 고독은 고요이며 온전함이라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깊은 성찰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엄청난 외로움쟁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서성대기 시작했다. 무엇이 날 그토록 허전하고 외롭다고 느끼게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편의 잘못도 있었을 것이고, 타고난 천성이란 것도 한몫 했었을 것이고, 나에 대한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나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의 무지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 무엇을 할지 몰라 서성이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담배를 피워댔고, 사람들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 결과는 뻔한 것. 짧은 쾌락 후에 돌아오는 건 깊은 슬픔과 후회, 더 큰 외로움이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숙취가 남은 피로한 몸을 일으키며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우울증이 깊어지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내겐 일이 있었고,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있었고, 남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에 예민한 비겁함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걸 내 안으로 구겨 넣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일을 하러 나가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다시 밤이 되면 나의 외로움을 채워 줄 그 무엇을 찾아 헤매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2년 전, 내게 암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난 지금도 그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더 큰 자괴감, 죄책감, 우울감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고, 지금보다 더 큰 병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난 이미 나에게 병이 올 것을 예감하고 있었고, 나를 크게 내리 칠 것이 오기 전까지 내 삶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베란다에서 몰래 나쁜 것을 하며 하느님께 빌고 빌었다. 너무 크게 치지 말아 주시길, 용서해주시길, 나를 사랑해주시길, 그래서 적당히 아프고, 정신 차리고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이끌어주시길... 

 

내 기도발은 잘 안 듣는데,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만큼 날라리 신자인데, 이 기도만큼은 거두어주셨다. 그런데 나의 예상보다 크게 나를 치셨다. 그냥 가볍게 위암 초기 하나 정도만 들어주셨으면 좋았으련만, 4기에 가까운 3기 말의 대장암까지 덤으로 얹어 주셨다. 내 삶에 죽음이라는 막장 드라마를 쓰게 하셨다. 

 

죽음. 그건 살아있는 생물체에게 마지막이지 않은가! 영혼이라는 더 중요한 것이 있겠지만,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더 이상 생각하지 못하고 굳어있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끝이지 않은가! 죽음을 생각하며 지나온 내 삶을 바라봤고, 죽음을 받아들였고, 혹시라도 살아있다면, 앞으로 살아갈 삶도 바라봤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고,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받아들이고, 겪어냈다. 그 길고 힘들었던 수술과 항암의 시간을. 

 

위암 초기였다면, 그래서 위를 잘라내는 수술로 끝났다면, 내가 술을 끊었을까? 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난 대장까지 잘라냈다.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었다. 소화기관을 이렇게 다 잘라내고서도 먹고, 싸는 그 기본적인 생활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암은 처음이라... 그런데 살아지더라. 참 신기하게도. 그리고 더욱 신기하게도 술을 마실수 없다. 알코올이나 탄산수가 들어가면 내 소화기가 견디지 못했고, 첫 모금은 구수하기까지 했던 그 시원한 맥주가 맛있지도 않았다. 

 

아! 주님은 나에게서 이걸 원하셨구나.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리디아'를 큰 그림으로 그려놓으셨구나. 지금의 나를 봐. 예전의 그 깊은 외로움, 자책 따윈 없잖아. 아침에 침대 위에서 눈을 뜰 때면 죽고 싶었던 내가,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뜨고, 하루를 기대하며 시작하고 있잖아. 커다란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깨닫지 못할 것을 미리 아셨던 거지. 

 

암수술 전과 후로 나뉘는 내 삶은 공교롭게도 내 나이 50과 맞물려 간다. 배철현 작가의 말대로 첫번째 50년은 생물학적인 삶으로, 그리고 방황의 시간으로 살았다면, 두 번째 50년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지난 2년간 나를 혹독하게 몰아세우신 영험한 신의 힘을 느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나를 아는 시간'으로 여기며 행복하게 아껴 쓰는 사람이 되었다. 술, 담배, 타인이 아닌 바로 '나'에게서 해결점을 찾을 줄 알게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위한 습관인 '고독'을 받아들였고, 그 고요함과 온전함을 즐긴다. 지금처럼 이렇게 글을 쓰며 나를 성찰하고, 나를 이해하고,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 참 좋다. 

 

아픔이 단순히 아픔만이 아니기에, 아픔만이 줄 수 있는 값진 미래가 있기에, 아직도 불편한 삶을 살기는 하지만,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설사를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화장하고 내가 좋아하는 예쁜 옷 입고,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고, 다시 일을 하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내 가족과 눈 마주치며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에 정말 감사하다. 두 번째 50년의 삶이 막막하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이 보이고, 꿈이 생기고, 아름다울 거라 상상하게 되었다. 설레기까지 한다. 앞으로 외로움이란 단어가 무엇이었는지 조차도 잊어버릴 거 같다. 두 번째 내 삶은 분명 꽃길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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