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을 한참 하고 있을 2019년 초여름부터 '지혜와 성실'이라는 이름의 유튜버가 활동하는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암에 관련된 동영상을 보다 보니, 아마도 알고리즘을 타고 내 눈에 띄게 된 것으로 추측해본다. 그분이 동영상을 찍기 시작한 지 6개월여 되었을 때였고, 말기 유방암 환자로서 자연치유를 하고 있었기에 나의 필요조건과 딱 맞아떨어져 첫 영상부터 꼼꼼히 들어가며, 마치 나의 선생님인 듯, 그분이 하는 모든 것을 따라 하는 '따라쟁이'가 되었다.
가끔은 그분을 욕하는 구독자들도 있고, 내가 한참 지혜와 성실의 동영상을 볼 때, 나의 남편은 그 사람도 역시 돈 벌려고 하는 것이라며 대놓고 싫어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분의 진심이 느껴졌고, 또 그 당시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주변에 아무런 정보가 없던 나에겐 썩은 동아줄이 아닌 든든한 동아줄이었고, 돈을 밝히는 사람이어서 물건을 파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건 내가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믿음으로 내 체력이 가장 밑바닥이었던 2019년 여름에 혼자 전철을 타고 지혜와 성실을 만나러 갔었고, 지금까지 나는 지혜와 성실에게 실망을 느낀 적은 없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커피관장'에 대한 나의 생각의 변화를 말하고 싶음이다. 지혜와 성실님이 커피관장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동영상을 보며 관심이 생겼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 장단점을 공부했다. 내가 대장암이기에 대장을 깨끗하게 비워내는 것이 참 좋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커피와 관장에 필요한 도구들을 사서, 커피물을 끓이고, 화장실에 누워, 가는 노즐을 항문에 끼우는 과정부터 혼자 배워가며, 화장실 전체를 그야말로 '똥칠'을 하는 등,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온갖가지 해프닝을 겪으며 1년 반 동안 꾸준히 해왔다. 지금은 선수가 되어, 커피물 끓이기 시작하는 과정부터, 모든 것을 끝낸 후, 사용한 도구들을 깨끗이 씻어 제자리에 잘 걸어 말리는 것까지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1년 반의 커피관장 실천은 내게 분명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고 믿는다. 물론 그것을 하지 않았어도 지금의 결과가 있었을 거라고 누군가 내게 우겨댄다면, 나도 딱히 그건 아니라고 반박할 근거는 없다.
커피관장을 시작한지 1년이 되는 작년 여름 즈음, 매일 커피관장과 체조를 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하루 두 시간을 매일 한다는 것, 그것도 직장생활을 하며 그만큼의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고, 체력이 약한 사람이 그만큼의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 원장쌤이 내게 건넨 한마디가 나에게 인사이트를 주었다. '지금까지 해온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거라는 믿음을 버려라. 그동안 좋았던 것은 거기까지. 변화가 필요하다면 바꿀 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자신에게 벅차다면 바꿔라.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 온 것이다'. 물론 이렇게 정확하게 또박또박 얘기한 것은 아니다. 나의 각색이 들어간 표현이다. ㅎㅎ 어쨌거나 그 당시 내게 시기적절한 조언이었고, 나는 즉각적으로 그 말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동안 꾸준히 해온 루틴이었고, 그걸 하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에, 내게 조언을 줄 수 있는 분에게 물어보았다. '매일 하는 커피관장과 체조를, 하루는 커피관장, 하루는 체조, 이렇게 나누어하면 어떨지..' 다행히 그분은 좋은 생각일 수도 있다고 해주었고, 나는 편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고 있었다.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고 했던가? 작년 한 해 동안 내 목표 중 하나가 40킬로그램을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2021년이 되고도 40일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39킬로그램 후반이었던 몸무게가 39.1킬로그램, 어떤 날은 38킬로그램까지 떨어진다. 자꾸 예민해지면서 어디 아픈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혹시 커피관장이 나의 살이 오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것은, 작년 말, 우연히 결성된 암환우 모임에서 나만큼 마른 유방암 환우가 자신은 너무 말라서 커피관장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들은 이후부터다.
그래도 잘하고 있던 것이라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는데, 어제 지인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커피관장 이야기가 나왔고, 대화를 하면서 내 머릿속에서 혼자 결론을 내렸다. '당분간 커피관장을 쉬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했고, 한 학기가 시작된다. 아마 바쁜 학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만이라도 커피관장을 하지 않아 볼 생각이다. 앞으로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 우선 한 학기를 쉬어보고, 내 몸의 상태를 파악하고, 그 후에 결론을 내릴 생각이다.
운동은 근력을 위해서라도 해야 하니, 지금 하고 있는 체조와 산책을 병행할 생각이다. 날씨가 춥거나, 비가 오거나, 미세먼지가 많다거나 하는 야외활동이 부적절한 날은 집에서 체조를 하고, 날씨가 좋으면 산책을 나가서 가볍게 달려보기도 하면서 힐링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쩌면, 커피물을 끓이고, 변을 보기 위해 에너지를 쓰고, 널브러진 도구들을 닦는 수고로움이 참 싫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반 동안 참 잘 견디고, 성실하게 해 왔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지금쯤, 변화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적절한 시간, 적절하게 선택을 한건지도 모른다. 이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내 생각, 내 결정을 믿고 편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한 학기를 시작하자. 봄이 오고 있고, 설레는 대학 생활이 기다리고 있고, 커피관장 대신, 산책로를 걸으며 얼굴과 온몸을 감싸줄 봄바람이 다가오고 있고,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는 일터가 있고, 말없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잘 알고,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의 뜨거운 열정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또 시작할 수 있는 나의 주변 여건에 감사하다. 언제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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