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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by 짱2 2021. 2. 16.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 이십대 후반부터 새벽 4시, 5시에 일어나 공부를 했다. 남편을 도와 일을 하고 있었고, 어린 아들도 있었지만, 나는 강렬한 공부의 열망을 품고 있었고, 그 열망을 막연하게 꿈으로 남겨두지 않고, 현실로 끌어내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여서, 술과 함께 한 공부라고 해도 될듯하다. 그래서 내가 참 대단하다. 또 그래서 안타깝다. 그때,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나의 삶은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지금 암환자가 되어 있지도 않았을 텐데...

 

이십대 후반에 시작한, 조금은 늦은 공부로, 국문학사, 영문학사, 아동학사라는 세 개의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고, 영문학을 전공한 것은, 4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어학원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갖도록 만들었고, 좋은 원장쌤을 만나, 암환자가 된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난 사람들에게 항상 말하곤 한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찾아온다고. 영어를 전공하려고 마음 먹었을때, 나는 영어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했다. 그저 영어가 좋았고,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 편입을 한 것뿐이다. 시작을 하고 나니,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스터디를 시작했고, 그 스터디는 제법 큰 동아리로 자리를 잡아, 10년째 유지를 하고 있고, 나는 그 동아리에서 회장을 세 번이나 하며 후배들을 가르치는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영어를 정말 못해서 시작한 공부가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도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내고 있다. 즉, 어떤 일이라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 주었고, 또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심어주었다. 단순한 학문에 대한 공부가 아니라 삶의 의미, 가치를 알게 해 준 진정한 공부였던 거다.

 

그래서 또 용기를 냈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했다.

 

암 수술을 하고, 항암을 마치고, 내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가던 작년 봄, 나는 또 꿈꾸기 시작했다. 무언가 더 공부하고 싶다. 문화교양학과? 청소년 교육과? 생활과학부? 고민하고 있던 나는 동아리 후배(나보다 연장자임)에게 지나는 말로이런 것을 이야기했는데, 심리상담을 하던 그분이 내게 사회복지학은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사실, 사회복지는 나의 체력으로는 어림없다고 생각해서 고려의 대상에 전혀 있지도 않았으나, 심리 쪽에는 관심이 있었기에 귀가 쏠깃했다. 사회복지와 심리상담은 결이 다른 분야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길을 가고 있는, 그쪽 분야의 선배에게서 듣는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강력하게 끌어당겼다. 

 

작년 2학기 편입에 도전을 했으나 26:1의 경쟁률을 뚫지 못하고 불합격, 올해 다시 도전해서 합격되었다. 돌이켜보면 작년 2학기 편입보다 올해 1학기 편입이 더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오리엔테이션부터 시작해, 신입생에 대한 많은 배려, 도움이 있을 테니. 또한 내 마음의 준비과정도 더 필요했었다. 건강상의 문제도 그렇고.

 

10년 전, 영문학과 편입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물론 지금보다 10년은 젊었고, 훨씬 건강했었다(암이라는 건 생각도 못할 시기였으니). 그러나 그 무모한 도전은 영어쌤이라는 성공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 나이로 54세인 내가 지금도 일하고 있고, 환갑까지 일 할 거라고 믿는 든든한 직업이 되었으니 말이다.

 

54세의, 암환자인 나는 또다시 무모한 도전을 한다. 그런데 무모한 도전을 한다고 쓰면서 내 머릿속은 전혀 무모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10년 전의 그 도전의 결과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늘 이 일기를 쓰고 싶어서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이유는, 사실 너무나 설레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서이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꼭 심리상담가가 되어야지...'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늘부터 시작할 공부의 길이 두렵거나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슴 설레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게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몹시 궁금하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어제, 학생회 활동도 자원을 했고, 조금씩 방송 강의를 들으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부할지 방향도 잡아가고 있다. 사회 복지 공부와 학생회 활동,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영어쌤이라는 직업, 주부라는 역할, 매일 나를 위해 해야 할 것이 많은 암환자라는 굴레... 이런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지에 의문이 나를 가끔씩 걱정 보따리를 풀을까, 말까 고민하게 만들지만, 내 안에서 벅차게 넘쳐나는 설렘으로 나는 그 보따리를 꽁꽁 묶어버린다. 걱정은 걱정일 뿐. 내가 지금 설렌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것을 해낼 수 있다는 용기로 도전하고, 즐기고, 그 결과는 어떤 모양이던지 받아들이면 된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무척 설렌다. 그리고 행복하다. 잘 시작했다. 후회는 없을 거다. 이 공간도 앞으로는 나의 공부길에 대한 이야기를 채워지겠지. 그래서 또 설레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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