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배철현 교수의 책 '심연'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 꼭 읽겠다고 생각을 했다. 잊은 듯 잊지 못하고 기억 어딘가에 어렴풋이 남아있던 '심연'에 이어, 작년 9월에 '승화'라는 작품이 나온 것을 알게 되면서, '심연'과 함께 읽을 생각으로 인터넷 서점에 접속했다가, '심연'에 이어 '승화'로 바로 건너온 것이 아니라, 그 중간에 '수련'과 '정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 그러고보니 '수련'도 있었구나! '정적'은 전혀 알지 못했구나... 생각을 하며 이 네 권의 책을 모두 읽고 싶은 욕심이 생겨버렸다. 한 권에 17000원. 10% 할인을 받아도 4권을 사는 것이 만만치 않은 가격인데, 나의 지름신이 강림하셨다. 괜찮다. 옷도 아니고 책인데. 이런 지름신은 가끔씩 오셔도 괜찮아. 주문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고, 도착하는 날, 위의 사진처럼 차례대로 세워두고 사진을 찍었다.
배철현 교수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까? '어디~ 얼마나 잘 썼나 보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연인이 보내온 러브레터를 읽듯이 소중히 읽어 내려갔다. 각각의 책의 색깔에 맞춰 형광펜과 볼펜을 준비해 언더라인을 하고, 여백에 나의 느낌을 적었다. 이렇게 소중하게 읽은 책이 있을까? 내 기억엔 없다. 그리고 이 네 권을 읽는 내내, 신줏단지 모시듯 읽어내는 과정이 행복이었고, 내 안의 많은 것들이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한 권의 책 속에는 여느 책들처럼 많은 활자를 담고 있지 않다. 하지만 책 속의 여백, 절제된 언어속에서 더 많은 사색을 끌어낸다. 한 구절에 깨달음이 오고, 한 구절에 탄식을 자아낸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책이었고, 곁에 두고 곱씹어 읽어 볼 생각이다. 아마도 이 공간 '나만의 책 읽기'에 여러 번 다른 제목으로 자주 글을 올리게 될 듯하다. 책 읽는 동안, 글로 풀어내고 싶었으나, 이 네 권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고 나서야 다른 세부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 같아 많이 자제했다.
오늘은 네 권의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정리 해 볼 생각이다. 이 책을 막 읽고 난 나를 정리하듯 말이다.
2권 수련의 프롤로그에 네 단계에 대한 설명이 있어, 이 부분을 먼저 써 놓은 후 각각의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뒤이어 써 본다.
첫 단계 - 심연
심연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연못이자 진실한 자아를 만나기 위해 들어가야 할 마음의 연못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생기는 고독은 자신을 위한 최고의 사치이며,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다.
두 번째 단계 - 수련
수련은 미래의 나를 그리며 오늘을 나를 전폭적으로 변화시키는 훈련이다. 이 훈련은 무엇을 더하는 게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다. 불필요한 생각과 말, 행동 등 오늘 하루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쌓인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연습이다.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나를 향해 매일 조금씩 나아간다. 나만의 고유한 삶은 이 걷어내는 작업을 통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수련의 완성은 목표점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매일 새로운 지점을 향해 묵묵히 인내하며 걸어 나가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 - 정적
수련하는 자신을 온전한 나로 숙성시키는 조용한 기적이 바로 정적이다. 정적은 고요한 호수와 같은 상태로, 잡념으로 인해 흔들리는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잠하게 만드는 정중동이다.
네 번째 단계 - 승화
승화는 과거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시간이다. 밖에서 볼 때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 그 내부에서는 상상하는 것 이상의 폭발적인 변화가 생긴다. 승화는 고유한 생각과 말이 깊은 성찰로부터 나오는 삶의 방식이다. 승화는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바를 거침없이, 자유롭게 행할 때 자신의 삶에 슬며시 일어날 것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나온 글 정리.
1. 심연
육체의 훈련과 마찬가지로 정신도 꾸준히 훈련하다 보면 점점 더 높은 단계에 이를 수 있고, 얼마든지 자신만의 고유한 임무를 찾을 수 있다. 삶은 자신만의 임무를 발견하고 실천해나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이 여정에는 늘 예상치 않은 괴물이 등장한다. 이 괴물을 극복할 수 있는 생각의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열정이다. 열정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다. 열정은 자신의 약점과 열등감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열정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알게 모르게 자신을 얽매고 있는 수많은 구태의연함과 과거로부터 과감하게 결별하는 용기다. 이 열정은 내면 가장 깊숙한 곳, '심연'으로 가는 지표다.
나는 나를 넘어선 나를 위대한 개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위대한 개인이란 자신을 깊이 관찰할 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또 다른 나'다. 위대한 개인은 항상 자신의 행복을 지향하며 그 과정에서 행복하다.
위대한 개인은 배움을 통해 매일매일 위대하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배움이란 자신이 안주하고 있는 시공간에서 탈출해 자신에게 유일하고 진실한 자아를 발견하고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기꺼이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이 진실한 자아를 발견하는 장소가 바로 심연이다.
위대한 개인은 매순간 자신을 독수리의 눈으로 관찰하고, 자신이 미래에 이루어야 할 임무를 위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혼과 영을 다해 최선의 경주를 하는 사람이다. 심연이 가져다준 자신의 고유한 임무가 그 사람의 호흡이며 몸가짐이다. 그 임무에 지속적으로 몰입되었을 때, 그 사람만의 숭고한 인격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2. 수련
나는 위대한 나 자신을 흠모한다. 위대한 개인은 곧 위대한 공동체, 위대한 국가의 초석이다. 나는 이 위대한 개인을 발견하고 완성시키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네 가지 단계를 찾아냈다. 심연-수련-정적-승화의 단계다. 인간은 이 단계를 통해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도 절실한 인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천재적인 인간은 항상 자신의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에 어린아이처럼 반응한다. 역사는 위대한 자신을 믿고 묵묵히 수련하는 용감한 사람들의 것이다.
이 세상에 내가 흠모하는 감동적인 나보다 거룩한 교리는 없다. 내가 승복한 유일한 대상은 나 자신뿐이다. 당신의 수련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3. 정적
정적은 잠잠한 호수와도 같은 마음의 상태다. 잡념으로 인해 흔들리는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고 고요하며 의연한 나로 성숙하는 시간이다. 정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려면, 그 안에 부단한 움직임을 품고 있어야 한다. 정적은 정중동이다.
정적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움직임은 경청이다. 정적을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을 유혹하는 외부의 소리를 거부하고,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를 듣는다. 자신의 사소한 생각에도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인다. 그는 듣기 위해 침묵을 유지한다.
영어 단어 hearing은 자기 중심적이고, listening은 타인 중심적이다. 히어링은 상대방의 말을 흘려듣는 낮은 수준의 듣기다. 자신에게 익숙한 말만 취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요구를 헤아릴 수 없다. 그들은 이 들음을 통해 자신의 아집을 강화할 뿐이다.
이보다 높은 차원은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하는 리스닝이다. 영어동사인 listen은 자신이 듣고자 하는 대상 앞에 전치가 to가 놓인다. 그러므로 리스닝은 상대방의 말에 나의 귀를 가져다 대는 노력이 필요한 행위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과 귀를 쭉 뻗어 내미는 수고다.
정적은 또 다른 자신, 흠모하는 자신이라는 타인의 섬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다.
4. 승화
승화는 아무런 유혹도 시련도 없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더 놓은 차원의 정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후 얻게 되는 겸허한 마음이다. 마치 동네 야산의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산보다 높은 산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도전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산을 정복한 뒤에도 그보다 더 높은 산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과 같다.
승화는 어제와 달라질 오늘의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이자, 지속적으로 자신을 혁신하려는 용기 있는 도전이다. 오늘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정성스럽게 살려는 마음가짐과 그런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언행이 바로 승화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별이다. 자신을 혁신하려 하지 않고 특정 사상이나 교리에 순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발견한 별을 자신의 별로 착각하며 사는 것과 같다. 위대한 사상은 '이것이 진리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유일하고 감동적인 나만의 길을 찾으라고 촉구하는 훈련 교본일 뿐이다.
그 길은 자기극복에 있다. 내가 발견해야 할 별은 도달할 수 없는 저 먼 하늘에 있지 않다. 그 별은 스스로 두 발을 묶어 좌정하고 눈을 감으면 비로소 보이는 원석이기 때문이다. 그 원석은 지금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4권 승화를 마무리하며 작가는 다시 한번 네 권의 책을 정리해준다.
첫 번째 글인 심연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스스로를 강제로 고립시키는 첫 단계다. 마음속 깊은 곳을 뜻하는 심연은 고독을 연습하는 장소이자 시간이다.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외부와 차단해 나에게 맡겨진 고유한 임무가 무엇인지 숙고하는 시간이다.
두 번째 글인 수련은 그동안 습득한 생각과 언행을 수정하는 단계다. 나답게 살아가는 데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을 재점검하는 시간이다. 숨쉬기, 바로 걷기, 가만히 앉아 있기, 허리 바르게 펴기 등을 다시 배우고 익힌다. 이 시간은 자신을 '없음'으로 되돌리는 분투다.
세 번째 글인 정적은 수련을 통해 마음의 평정심을 얻는 상태다. 정적은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부단한 움직임을 품고 있는 정중동을 뜻한다. 마음에 정적을 품은 사람은 나를 유혹하는 외부의 소리를 거부하고,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를 경청하기 위해 일부러 침묵을 유지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글인 승화는 정적의 단계에서 겸손하게 유유자적할 때 발견되는 정신적이며 영적인 상태다. 승화는 인간을 추락하도록 놓아두지 않고 저 높은 하늘을 향하도록 독려한다.
인간의 몸은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났지만, 인간의 정신은 자기 의지로 얼마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개인은 이 의도적이며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내가 흠모하는 나로 변모할 수 있다. 개인이 정신적으로, 더 나아가 영적으로 깨어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근사한 모습을 하고 타인의 부러움을 산다 해도 한낱 이기심으로 가득한 짐승에 불과하다.
네 권의 책은 각각 28개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총 112개의 글이 있다. 네 권의 제목도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듯이 112개의 글 또한 두 글자로 이루어졌다. (몇 개는 예외이긴 하지만) 또한 성경, 신화, 단어의 어원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대단한 인문학적 능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뿐인가. 읽는 내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영혼을 흔들어댄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 아는 것 같긴 한데, 무어라고 말하지 못했던 내 안의 그 무엇, 답답하지만 끌어내지 못했던 나의 언어를 마구 휘저어 끄집어낸다. 온통 사색할 꺼리로 나를 분주하게 만든다. 단순한 나를 철학의 길로 서서히 이끌어가며, 심연에 빠져들게 하고, 나를 수련시키고, 정적으로 이끌고, 승화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나 혼자서는 가보지 못할 그곳으로 안내하는 철학적인 친구의 끌어당김에 흔쾌히 응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나는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 이 네권의 책을 곁에 두고, 바람이 불거나 파도가 칠 때마다, 심연으로, 정적으로 들어가기 위해 펼쳐 들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을 외우다시피 읽고 또 읽는다면 나는 달변가가 되고, 철학자가 될거라고. 더 나아가 깊은 사색을 통해 나를 알아가고 변화한다면 작가가 말하는 '위대한 나'가 될 거라고.
네 권의 책을 정리해 봤다. 이제 틈 나는대로 다시 읽으며 생각할 꺼리가 있을 때마다 정리를 할 생각이다. 한 번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어떤 멋진 만남이, 어떤 멋진 깨달음이 기다릴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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