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어제 일찍 잠이 든 때문인지, 새벽 2시도 되지 않아 눈이 떠졌고,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그냥 바로 일어났다. 옷을 갈아입고, 이불을 정리하고, 따뜻한 물을 준비하고, 여느 날처럼 책상 앞에 앉아 하루 계획표를 짜고, 감사일기와 자기 확언을 썼다. 이런 날은 마치 많은 것을 다 해낼 것만 같은 마음이 든다. 해야 할 공부도, 읽어야 할 책도, 미루어 두었던 자잘한 일들까지 모두 이 새벽에 다 해낼듯한 기세다. 물론, 새 날이 밝고, 아침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생각만큼 알찬 새벽시간을 보내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덤으로 얻은 듯한 포만감에 행복함이 넘실거린다.
남편의 코고는 소리는 늘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내가 틀어놓은 클래식 음악도 지지 않고 배경음악으로 깔린 이 새벽, 난 멋진 하루를 설계하고, 덤으로 얻은 몇 시간을 만족스럽게 품으며, 이렇게 여유롭게 일기를 쓴다. 난 이런 느낌에서 오는 행복함이 참 좋다. 여유 있는 시간, 여유 있는 마음, 그리고 차 한잔과 음악, 여기에 빗소리까지 더해진다면 나는 왕이 된 느낌일 테다.
지난주, 난 가끔씩 찾아오는 가벼운 배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우울함의 나락에 빠져들고 말았다. 늘 이런 통증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죽으면 모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눈물까지 나오고,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회오리를 고스란히 느끼며 그대로 잠을 청했고, 다음 날 아침, 감사일기의 똑같은 첫 구절을 쓰며 인사이트를 얻었다. '오늘도 복되고 소중한 하루를 제게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죽고 싶다고 느낀 어제도 복되고 소중한 하루였고, 선물이었는데, 나는 그 귀한 선물을 던져버리고, 죽음을 생각했구나. 잠시 찾아오는 통증, 우울감에 지지 말자. 선물 같은 하루를 아끼고 소중히 보내야 하지 않은가!
그러고 난 후, 또다시 하나의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 또는 죽음을 앞두고, 또는 암으로 인한 통증이 찾아오면 나는 그 통증을 견뎌낼 수 있을까? 노후에 느낄지 모를 외로움은 견뎌낼 자신이 있는데, 통증은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두렵기만 했고, 어떤 방법이 있을지조차 상상할 수 없어 막연했다. 그러다 문득, 정확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를 안심시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인생 선배들이 있지 않은가! 내 주변의 인생 선배들을 보고 배우자! 그들이 대처하는 방법, 그들이 겪어가는 과정을 보며 배우자! 언제 찾아올지 모를 통증, 죽음을 미리 걱정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 속에서 주변을 통해 겪게 될 것이고, 배우게 될 것이니, 현명하게 적용하면 되리라.
이렇게 나는 갑자기 찾아온 통증과 죽음이라는 두려운 명제를 '하루라는 선물'과 '인생 선배들에게서 배우게 될 삶의 지혜'라는 두개의 답을 얻으며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지난 일주일은 참 편안했고, 공부도, 운동도 놓치지 않았다. 감정의 기복 없이 일주일을 보냈고, 짜증이 나는 일도 없었다. 학원에서도 기분 좋게 일을 했다.
어쩌면 나는 암환자가 된 이후로 죽음을 받아들이면서도 또 두려워하고 있었나보다.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도 두려웠을 테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도 두려웠을 것이고, 통증 또한 두려웠을 것이다. 고스란히 느껴야 할 그 무엇이라고 생각이 되니, 무겁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나만의 해결책을 찾고 나니, 그것이 죽음을 미뤄주고, 통증을 없애주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이 되었다. 먼 미래일 수도, 가까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을 겪어 낼 용기를 얻었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편안해졌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그토록 두려워하던 죽음과 통증이라는 명제에서 벗어난, 편안한 마음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대학원이라는 숙제이기도 했고, 욕심이기도 했던 나의 욕망까지 내려 놓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처럼... 매일의 루틴대로 살아가며, 가정과 건강과 일이라는 가장 중요한 세마리 토끼를 잘 몰고 가면 된다. 가정과 건강과 일이 나의 메인 테마이다. 여기에 독서와 여행과 글쓰기와 취미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잘 섞어내면 된다. 참 아름답고 풍성하지 않은가! 매일의 삶이 이런 것들로 가득 찰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지금, 나, 여기서, 이렇게 채워가고 있는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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