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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 읽기

심연 - 사유, 지금 여기 이 시간

by 짱2 2021. 5. 2.

새벽에 눈이 떠지는 대로 일어난다. 잠에서 깨면 우선 생각을 한다. 더 자고 싶은지, 아닌지. 더 자고 싶은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대로 일어나 새벽 루틴대로 움직인다. 이젠 익숙해진, 그야말로 루틴이 되어 로봇처럼 움직인다. 소변보고, 입과 눈을 씻어내고, 몸무게 재고, 이불 정리하고, 물 따뜻하게 데워서 조금씩 마시면서, 책상 앞에 앉아 기도하고, 하루를 설계한다. 감사일기와 자기확언까지 노트에 꾹꾹 눌러 쓰고나면 그날 하루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것처럼 희망이 넘치고, 풍성한 마음이 되어, 그날 해야 할 공부를 시작한다. 

 

오늘은 일요일...

새벽루틴을 모두 마친 후, 영어공부 대신, 꾸준히 책 리뷰를 하려고 마음먹은 배철현 교수의 '심연'을 펼쳐 들었다. 다시 재독 하며 마음에 드는 구절, 내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다시 한번 정리하며 성찰의 시간을 가지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요즘 학교 과제, 디지털 관련 공부를 하느라 잠시 잊고 있던 그 책. 역시, 이 책은 어느 한 구절 놓칠 수가 없다. 늘 마음을 울리는 구절을 만날 수밖에 없고, 나는 그 글 안에서 사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마침 오늘 마주한 글은 '사유'라는 제목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나는 내 생각의 가감없는 표현이다. 나의 얼굴, 몸가짐, 내가 처한 환경은 내 생각을 그대로 반영한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내 생각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 미래는 조각가 앞에 놓여 있는 다듬어지지 않은 커다란 돌덩이다. 머릿속에 그려놓은 생각들을 어떻게 쪼아내고 갈고 다듬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의 조각품이 탄생할 것이다. 

 

사유란 내 손에 주어져 있는 정과 망치를 통해 어제까지 내가 알게 모르게 습득한 구태의연함을 쪼아버리는 작업이다.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나의 생각을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마술이다. 그러면 내가 만들어 낼 조각품의 청사진은 무엇인가. 내 손에 들려 있는 정을 부단히 움직이게 하는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다듬어지지 않은 커다란 돌덩이인 '나'는 내가 처한 환경, 내 생각의 '정'에 의해 그 무엇의 조각품이 된다. 태어날 때 정해진 내가 아니라, 또 온전히 나 혼자만의 영향력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 그리고 사유를 통해, 몰입을 통해 나를 만져내는 과정을 거쳐 미래의 나를 만들어 낸다. 이것이 바로 오늘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다. 오늘의 내가 바쁘게 정을 들고 쪼아대면, 미래의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완성되어갈 것이다.

 

바쁘게 사는 나를 보면서 사람들은 묻곤한다. 편하게 살지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나는 바쁘게, 열심히 사는것이 즐겁고, 행복한데, 그들의 잣대로 힘든 일로 몰아버리면, 누군가의 생각으로 내 삶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행복한 삶을 욕되게 하는 듯 마음이 상해버린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말하는 그들을 설득할 어떤 말을 찾지 못한다. 인생 뭐 별거 있느냐는, 이렇게 살다가 가면 될 것을 뭐 그리 애써 사느냐고 생각하는 그들의 고정된 생각을 몇 마디 말로 바꿀 재간이 있을까? 그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어,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멋진 말을 해줄 수 없다면, 나의 말은 그저 변명처럼 허망한 것이 될 것인데, 입으로 떠들어서 무엇하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말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나에게 계속 그런 말을 하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 있는 10명의 사람이 내 미래의 모습이라고 했다. 나에게 배움을 줄 수 있고,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희망에 넘쳐 달려가는 나의 발을 툭 건드려 넘어뜨리는 사람을 이젠 거부하고 싶다. 

 

최근 본 몇개의 동영상에서 같은 이야기를 한다. 나를 cheer up 시킬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라고. 만약 그런 사람이 없다면, 그런 기회를 만들지 못한다면, 책을 읽으라고. 아무래도 난 후자였고, 당분간도 후자일 것이다. 서정주가 그랬던가. '나를 만든 건 8할이 바람이었다'라고?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를 만든 건 '8할이 책이었다'라고. 

 

사실 이부분이 참 아쉽다. 책은 일방적이다. in-put만 있을 뿐이다. 말이 많은 나는 out-put의 과정도 필요한데, 그 대상이 없다. 남편이나 지인에게 사유의 과정을 통해 느낀 것들을 풀어내다 보면, 숨이 차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주고받으며 더 많은 생각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아니라, 벽에 대고 말하는 답답함이 느껴져 말을 멈추게 된다. 그리곤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게 하려는 것 자체가 내 욕심이라는 생각. 나는 또다시 홀로 있는 시간을 택했다. 글로 풀어내자. 끄집어내고 싶은, 정리하고 싶은 것들을 굳이 힘들게 입으로 내뱉으려 하지 말고, 이렇게 글로 풀어내자고. 그리고 나의 사기를 꺾으려는 사람들은 이제 좀 멀리하자고.

 

나를 더 나은 나로 변화시키는 현장은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며 집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며 책이다. 그 일상은 때로는 지겹고 귀찮고 피하고 싶기도 하지만 퉁퉁 부은 발을 어루만지는 붓다의 왼손 같은 것이다. 

예수는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다'라고 단언한다. 천국은 죽은 다음에 가는 장소가 아니라 바로 여기, 농부가 매일매일 일구는 밭,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잡초를 뽑고 벌레를 잡고 씨를 뿌리고 거두는 그 삶의 터전이다. 다만 감추어져 있어서 그 안에 든 보화를 우리가 모를 뿐이다. 그 보화를 발견하는 훈련이 바로 '생각'이다. 

 

지금 여기, 내가 있는 이곳, 내가 사는 이 시간이 보화다. 그냥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정을 쪼아서 만들어 가는, 밭을 일구어서 기름지게 만드는 지금 여기, 이 시간이 보화다. 그래서 난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고, 희망에 넘치고, 다가올 미래에 가슴 설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