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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 읽기

절대 배신하지 않는 공부의 기술 - 이 상욱 -

by 짱2 2021. 6. 25.

50이 넘는 나이가 된 지금까지 공부를 내려놓은 적이 있었던가? 초등학교(라떼는 국민학교였다) 들어가기 전부터 지금까지 돌아보니, 결혼을 하던 언저리 즈음을 제외하곤 늘 공부하는 삶을 살았다. 뒤늦은 깨달음으로 결혼을 한 후에 좀 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어떤 목표가 있거나, 체계적인 공부가 아니었던지라, 그 공부의 방향이 큰 성공의 길로 나를 이끌지 못했음은, 나를 이끌어줄 멘토가 없었음을 이제야 깨달으며 참 아쉽다는 마음이 생긴다. 언니나 오빠가 있어서, 또는 선배가 있어서 나에게 세상의 변화를 일깨워주고,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하라고 따뜻하게 때로는 따끔하게 조언을 해주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나'로 성장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지금과는 다른 나'라는 표현을 썼다고 지금이 못마땅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성장했을 거라는 확신을 갖는 이유는 공부의 막다른 골목은 성공일 수밖에 없음을 이제는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참으로 다행인 것은, 나에게 멘토는 책이었고, 나의 기본적인 기질은 공부를 좋아했기에 공부를 내려놓지 않았고, 갈피를 잡지 못할지언정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하고 싶은 공부를 꾸준히 했다는 것이다. 국어가 좋아 국문학을 전공했고, 영어가 좋아 영문학을 전공했고, 잠시 근무했던 유치원의 영향으로 아동학을 전공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성장했고, 지금의 직장에서 일도 하게 되었다. 

 

아쉬움은, 다시 말하지만 좀 더 일찍 알고,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했다면 훨씬 더 성큼 앞으로 나아갔을 내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아쉬움을 이제라도 알아서, 아니, 이제야 알았기에, 앞으로도 계속 공부할 것이고, 앞으로의 공부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나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내가 공부에 관련된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공부, 몰입, 집중과 관련된 도서나 글귀만 봐도 귀가 번쩍, 눈이 번쩍 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어쩌다 알게 되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알고리즘을 통해 알게 됐을 거라 예상되는 '긍정 에너지 토리파' 유튜버인 이상욱이 쓴 책을 서점에서 만나고, 바로 찜해두었고, 드디어 얼마 전에 읽었었는데, 무엇이 바쁜지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기록을 해 두지 않으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다 잊혀지고 마는 법. 이제야 내 마음에 남은 몇 구절을 남겨두려 한다.

 

작가는 피부과 의사인데, 의사가 되기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지금도 공부하는 삶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아마도 쉬운 길을 걸어서 의사가 되었다면, 그리고 이제는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안주했다면, 공부와 관련된 유튜브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런 책을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저마다의 고비를 맞이하고 그것을 겪어내면서 성장하고, 자기만의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는가 보다. 

 

지금껏 내가 지키려 노력해온 나 자신과의 약속은 '자투리 시간에 원하는 내가 되자'였다. 레지던트 시절부터 병원을 개원한 이후에도 1~2시간의 자투리 시간을 무조건 확보해서, 그 시간 안에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 작은 성취들을 계속해왔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금껏 지켜오고 있다. 자투리 시간을 모아 보면 매일 최소한 1시간 30분 정도는 만들 수 있다. 그 시간을 활용해 영어 에세이를 통째로 외우고, 금융과 재테크 공부를 하면서 경제관념을 세우는 중이다.

밥벌이(?)를 하며 공부를 한다는 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공부만 하는 학생이 아니기에, 기본적인 일상의 시간과 근무시간을 제외하면 도무지 공부할 시간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 나의 경우는 근무시간이 길지 않고, 출근이 오후인지라, 저녁시간의 활용보다는 새벽과 오전 시간을 잘 보내려 한다. 여느 도서관 부럽지 않은 포근하고 안락한 나만의 공간에서, 편안하게 공부할 시간을 3시간 정도 확보하고, 피곤하면 잠시 낮잠도 자고, 운동하면서 영어공부도 얹어간다. 하지만 내가 하루 중에서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은 해야 할 공부와 읽어야 할 책의 분량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나야말로 자투리 시간의 활용이 필요하다. 

나는 1시간의 운동시간과 영어회화 공부를 묶어버렸다.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며 영어를 듣거나 통문장 암기를 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에는 밀리의 서재로 책을 읽고, 학원에서는 티칭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마찬가지로 밀리의 서재로 책을 읽거나, 인터넷 검색과 같은 자잘한 일들을 이 시간에 하곤 한다. 

저녁시간에 한 시간 정도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디지털 공부를 하려고 했으나, 주부가 해야 할 일들도 만만치 않아, 집중력이 떨어지는 저녁시간은 공부와 관련한 일은 아예 접어버렸다.

 

 

하루에 1퍼센트씩 바꾸면 100퍼센트가 완성되는 데 100일 정도가 걸린다. 습관을 만드는 데 적어도 100일 정도는 필요하다. 그래서 욕심내지 말고 1퍼센트씩 단점을 보완하는 연습을 하길 권한다.
1주일에 기상 시간을 10분씩만 당기면, 100일 후엔 무려 2시간 넘게 기상 시간을 당길 수 있다.

작가는 유튜브에서도 공부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같은 방법을 설명한다. 오전, 오후의 공부시간이 각각 1시간이면, 각각 30분씩 늘려서 공부를 하고, 그것에 적응이 되면 또 30분씩 늘려가라고 한다. 한꺼번에 무리해서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내 몸이 적응해가는 시간이 당연히 필요하다. 

2년 넘는 시간을 일정한 루틴으로 생활하니 이제는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마치 로봇처럼.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고, 나와 싸울 일도 적어져 정신적으로 에너지 소모도 적어지고, 스트레스 받지 않아서 참 좋다.

 

남들과 한 약속은 잘 지키면서 왜 나와의 약속은 이렇게 지키기 어려운 것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 '공부하기로 결심한 어제의 나'와 '실행해야 하는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귀찮은 날, 피곤한 날 누구보다 쉽게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달아 합리화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자기 위안과 자기 합리화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다. 바로 '습관'이다. 여러 번 나 자신을 달래고 귀찮음을 무릅써가며 나 자신과 약속을 지켜냈을 때 갖게 되는 게 바로 습관이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나는 원래 그랬던 사람이야'라고 자신을 평가절하하는 순간 새로운 출발선에서 한참이나 뒤로 후퇴하는 셈이다. '나는 원래 잠이 많은 사람이야'라고 하지만 원래 잠이 많은 사람이란 없다. 그저 잠을 많이 자기로 선택했을 뿐이며, 그런 습관을 가진 과거의 자신과 단절하지 않았을 뿐이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분리하는 것을 잊지 말자.

그저 잠을 많이 자기로 선택했을 뿐이고, 그런 습관을 가진 과거의 자신과 단절하지 않았다는 이 말이 정말 마음에 와닿는다. 원래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내가 만든 것일 뿐이지. 좋은 습관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난 후엔, 다른 습관을 얹어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되었다. 하나가 익숙해지니, 그다음의 동작들은 뜨거운 물에 얼음 한 덩이 넣으면 스르륵 녹아버리듯 내 삶에 스며들어 또 다른 좋은 습관을 형성해 나간다. 처음이 힘들 뿐. 그러니 처음엔 절대 무리하지 않고, 하나씩, 10분씩, 작은 것, 작은 분량부터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순간의 선택들이 모여서 1년 후, 2년 후, 3년 후... 마침내 10년 후가 됐을 때 각자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금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마다 10년 후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건강하고 이로운 선택이 쉬워진다.

김미경쌤이 한 말이 내 가슴에 남아있다. 지금 내가 고생하는 것은 미래의 내가 성공하는 중이라는 말.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필요는 없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를 잘 살아야 할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그것이 꼭 미래를 위한 일만은 아닌 것이 현재를 잘 살아야 그 현재를 살고 있는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고생하며 사느냐고 묻는다면, 너에겐 그게 고생으로 보이는지 몰라도 나에겐 그게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약간의 졸음을 쫓으며 공부하는 것, 친구들과 만나 수다 떠는 대신 독서하는 것이 어떻게 고생하는 것으로 보이는지 그것도 의문이거니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당장 6개월 후의 나를 그리고 있고, 1년 후의 나를 그리고 있다. 그렇게 3년 후의 내 모습이 그려지고, 10년이 아닌 7년 후, 환갑 이후의 내가 그려진다. 나의 인생의 전환점은 만으로 50세가 되는 때였고, 그 전환점의 결과물은 환갑에 멋진 미래로 나에게 보답할 것이라는 걸 확신한다. 나는 오늘도 공부하고, 공부의 기술은 꾸준한 노력임을 이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