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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밖엔 비가 오고...

by 짱2 2021. 8. 23.

 

밖엔 비가 오고, 선선한 바람이 차가운 기운을 집안으로 몰아세우며 상쾌한 기분을 만들어낸다. 비가 와서 우중충한 느낌이 아니라 8월의 뜨거움을 선뜩한 차가움으로 다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참 좋은 기분이다. 틀어놓은 재즈음악이 마치 카페에 앉아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하니, 커피 한잔과 함께라면 분위기는 이미 완성된 듯. 아침에 커피를 마신 탓에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과자를 먹으면 안된다는 암환자의 음식룰에 의거해, 되도록 먹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짭조름한 스낵류의 유혹을 견딜 수가 없어 작은 것도 아닌 대용량 새우깡을 사다 놓고, 생각날 때마다 한 움큼씩 먹으며 내 몸에 죄를 짓는 마음 한가득 같이 집어넣는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주문처럼 외우며. 자꾸 먹어 버릇하니 이것도 습관이 되는듯하다. 학원의 아이들을 위해 사다 놓은 간식들을 이제 학원에 나가지 않으니 어쩌랴. 자꾸 내입으로 향하는 것을... 오늘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새우깡까지 사다 놓고 어쩌려고. 

 

어제저녁, 수제 빵을 만들었는데, 그동안 내가 했던 것과 약간 다른 레시피였다. 오렌지를 두 개를 갈아서 넣고, 껍질 반개를 잘게 썰어 넣었더니 맛과 향이 끝내준다(그동안은 계란을 넣었는데 나는 계란이 들어간 빵맛이 싫다). 상큼한 오렌지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행복감까지 밀려온다. 커피와도 참 잘 어울린다. 암환우가 먹어야 하는 것은 모두 맛없다는 논리는 그만하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으로 채우자. 이제 이런 것들로 나의 간식을 채워야 하지 않을까? 바구니 한가득 들어있는 간식을 보니 날짜가 지난 것도 있네. 헐~~ 오늘로 굿바이 하자. 

 

학원을 그만둔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백수가 된 지 두 달이 되어간다는 얘기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돈을 벌지 못하는 거 말고는 아쉬운 건 하나도 없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 일에 대한 열정 따위는 이미 내게 없었나 보다. 항암을 끝내자마자 출근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수술도 아니고 위와 대장을 잘라낸 사람이 집이 아닌 장소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변의를 견디며, 10킬로나 빠진 초등생의 몸무게로 출퇴근하고, 아이들 가르쳤다는 거 자체가 대단한 용기이고 인간승리다. 2년간 최선을 다해 살았고, 얼마 안 되는 암진단비와 그 2년간의 벌이로 주식도 시작했다. 주식을 얼마 모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만하면 됐다.

 

이만하면 되어서인지 일을 나가지 않는것에 대한 아쉬움 따위는 없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다. 늘 말하듯이 벌이가 없다는 것만 아쉬울 뿐인데 이것도 잘 생각해보면 미니멀라이프 하나로 해결된다. 환갑쯤 시작하려던 미니멀한 삶을 7년 앞당겼다. 지금 진행중인데 나쁘지 않다. 소비의 습관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지만 꾹꾹 누르는 재미도 있다. 마침 코로나 때문에 남들도 해외여행 길이 막혀 질투로 배 아플 일도 없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오늘 저녁부터 태풍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예상된다고 하니, 집단속 잘하고, 내가 좋아하는 빗소리에 취해 독서하리라. 세상은 참 아름답다. 비가 오는 것도, 독서도, 음악도, 사랑하는 가족도 모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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