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 시작은 엄마로부터였다.
사회복지 과제를 잘 해내고 있던 월요일, 그리고 화요일...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 엄마는 늘 나에게 어떤 반찬을 준비할 지 이야기하신다. 사실 나는 이것도 짜증이 난다. 알아서 준비하고, 당일날 가서 상차림을 보면 다 알게 될 것을, 뻔한 음식을, 뭐를 어떤 양념을 넣어서 어떻게 할거까지 다 늘어놓으신다. 듣기 싫어도 그냥 흘려들으며 알아서 하시라고 말을 하고, 결국 또 아빠 얘기로 넘어간다. 항상 '기승전아빠'이다. 아빠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평생을 들어온 똑같은 얘기. 나에게 엄마, 아빠의 싸움은 트라우마다. 어릴때부터 상처로 남아있는 아픈 부분이다. 아무렇지 않은듯 살고 있지만, 요즘 '인간행동과 사회환경'이라는 과목을 공부하며 나의 어릴적 상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 무서운 공포속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유약했던 소녀가 겪었을 마음 아픔이 느껴져 내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남편을 만나, 남편의 한결같은 마음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나 스스로의 성장과 발전을 통해 극복하고, 멋진 삶으로 이끌었지만, 내 안에 나도 모르는 깊은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었나 보다. 바로 화요일의 일이 그것이었다.
엄마의 똑같은 아빠에 대한 레퍼토리에 가슴이 답답해지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매일 같은 이야기 지겹다며 전화를 끊고 난 후, 결국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암환자가 된 이후, 정말 울지 않으려 엄청 애쓰고 있었는데, 암 때문에 운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의 싸움 이야기 때문에 울고 만 것이다. 지겹고 지겹다. 미쳐버릴 거 같다. 우울함이, 답답함이 내 속에서 요동을 쳤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냥 집을 뛰쳐나왔다. 항상 긍정적인 나는 '예쁜 옷을 사고, 달달한 간식을 먹으면 괜찮을 거야'라고 주문을 외웠다. 불편한 속을 쇼핑과 간식으로 마무리했고, 조금 가라앉은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그런데 그 우울감은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강도는 약해졌지만, 지금까지도 내 안에 남아 우울한 기분을 불쑥불쑥 내뿜는다. 이건 분명 트라우마다. 어릴 적 깊은 상처로 인한...
그러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회의감, 무력감이 밀려왔다. 해서 뭐하지? 하기 싫어. 하지 말자. 넌 암환자야. 그냥 쉬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운동이나 하고, 건강이나 챙겨. 내 안에서 다 내려놓으라고 아우성을 쳐댄다.
또 다른 나는 이야기한다. 기왕에 시작한 것들, 그냥 끝내. 뭐가 될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 그냥 하면 어떤 결론에 도달해 있겠지. 결정은 그때 가서 하면 되잖아. 아무것도 안 하면서 살 수 없는 사람이잖아. 그냥 앞으로 1년 반, 2023년 1월까지 그냥 가봐. 돈? 지금은 아들이 보내주는 용돈만큼만 주식에 투자하고, 차 할부금 끝나면 그것까지 보태서 주식에 투자하면 나쁘지 않잖아. 어차피 미니멀라이프 살겠다고 다짐했던 거, 지금부터 하면 되는거지 뭐~
승자는? 후자다. 그렇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름없다. 사회복지, 캘리그라피, 타로마스터, 유튜브... 모두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나는 이미 네 개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말았다(구매대행은 이미 내려놓았다. 나하고는 정말 맞지 않는다). 이미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사회복지 1급 시험이 끝나는 2023년 1월까지 아무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달려가 보자. 앞으로 1년 반, 될지 안 될지, 어떻게 될지,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거나 궁금해하지도 말고, 그냥 내가 가야 하는 길인가 보다 하며 무조건 한 번 가보자. 결정은 그때 가서 하자.
어쩌면 신나지 않은가! 달려가야 할 목표가 있다는 것이.
이 목표는 단기 목표다. 1년 반짜리 단기목표다. 몇살까지 살지 모르지만 내 인생 마치는 날까지의 장기목표는 아직 모르겠다. ('건강하게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기'라는 목표가 있지만 어쩌면 이것은 목표라기보다는 내 삶의 과정 전체이다. 내 삶의 가치관이고, 신념이다.) 병원 가까운 곳, 아들과 멀지 않은 곳의 숲세권에서 돈걱정 없이 사는것이 최종 목표일까? 능력이 닿는 만큼(체력 포함) 봉사하면서 사는것이 최종 목표일까? 아무튼 1년반짜리 단기 목표를 끝내고 나면, 누가 알겠는가! 그다음 목표가 저절로 세워지고, 그것이 장기 목표로 이어질지.
지금 내가 선택한 것들, 계획한 것들에 대한 확신은 있다. 잘못된 선택이 아님은 안다. 그 길을 가는 것에 대한 자신 없음이 있을 뿐. 그렇다면 더더욱 망설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
엄마를 핑계로 어쩌면 나는 다 내려놓고 싶었던 마음을 얹어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백번, 천 번 생각을 해 보아도 나는 내려놓지 못할 사람이다. 그건 꿈을 포기하는 것이고, 꿈이 없는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까. 앞으로 1년 반, 흔들림 없이 무조건 가보자. 나의 단기 목표를 향해 달려가 보자. 2023년 1월, 어떤 모습으로 내가 웃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어떤 걸 내 손에 쥐고 당당히 웃고 있을지 기대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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