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일상

엄마는 엄마의 세계가, 나는 나의 세계가

by 짱2 2021. 11. 2.

엄마와 많은 것을 해보려 생각했다. 

 

 

난 사실 많이 부족한 딸이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지금도 쑥스러워서 할 수 없다. 반면, 엄마는 당신의 나에 대한 애정을 무한 표현하신다. 아마도 엄마의 이런 사랑 표현 덕분에, 엄마의 이런 사랑을 충분히 먹고 자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빠의 변덕스럽고,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며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가 이만큼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엄마의 지극정성 덕분이란 걸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그 사랑 덕분에 나도 사랑 가득한 어른이 되어 사랑 표현에 많이 서툴지 않음에도,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아직도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할 자신이 없다.

 

말로 할 수 없는 내 마음은 늘 행동으로, 현금으로 표현되었다. 어쩌면 엄마에겐 이런 표현이 더 현실적이고 좋았을까? 함께 한 여행, 함께 한 식사, 함께 한 대화... 사실 남들보다 적은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엄마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는 터무니없이 적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 많은 것을 엄마와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나이는 76세. 나는 54세. 스물 두살의 터울이다. 다른 모녀 사이의 나이차보다 훨씬 적을 텐데, 엄마와 나의 정신적인 gab은 무척 크다. 엄마는 많이 배우시지 못했고, 시골에서 나고 자란 순박한 처녀로 못된 남자에게 시집와서 고생하며 평생을 사셨다. 똑똑하지 않지만 착하고, 지금도 순수하고 여린 마음이고, 자식이 이 세상 최고인 줄 아시는, 남편에겐 복종해야 하는 줄 알고 계시는, 마치 조선시대의 어느 여인네 같은 분이다.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제 잘난 맛에 사는 차도녀 같은 사람이다. 나름대로 배웠고, 나름대로 책을 읽었다. 나름대로 사색하며 나름대로 가치관이 있다. 이렇다 보니 엄마와는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사춘기 때는 그런 엄마가 싫었고, 무시했었다. 엄마를 좋아하면서도 엄마의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 같은 말과 행동이 싫었었다. 그러나 나도 결혼을 하고,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엄마의 모든 것이 이해가 되고, 그저 고마울 뿐이다.

 

엄마와 대화가 되지 않음을 아쉬워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엄마와 많은 것을 같이 하며, 얼마나 더 살지 모를 삶을 함께 하고 싶었다. 76세라는 나이가 적지않은 나이이기도 하지만, 100세 시대에 많은 나이가 아닐 수도 있겠으나, 평소 약한 엄마의 건강을 생각하면 엄마의 삶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그뿐이랴. 나는 또 어떤가. 암환자다. 내가 엄마보다 먼저 갈 수 있다는 생각도 가끔씩 해본다. 그럼 참 슬프다. 애절하고 울며 슬퍼할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그래서 생각한 유튜브 콘텐츠가 있었고, 그것을 위해 신사임당 강의도 들었고, 엄마와 함께 하는 캘리그라피 수업도 수강 신청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엄마와 함께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엄마는 나를 보러 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지만, 번번이 시간을 못 맞추어 나의 신경을 예민하게 하고, 캘리그래피 수업도 재미있어하지 않았다. 나를 보러 오는 것이 좋아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할 뿐, 나와 함께 하는 강의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 나는 엄마와 시간을 맞추려다 보니 나의 스케줄이 더욱 바빠지고, 엄마에게 신경을 쓰다 보니 스트레스가 늘어만 갔다. 

 

어제, 엄마는 많이 늦은것은 아니지만 나와의 약속 시간을 또 지키지 못했다. 그것이 나의 신경을 크게 곤두세우게 만들거나 화를 돋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엄마의 세계가 있고, 나는 나의 세계가 있구나! 나는 나의 엄마라는 이유로,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의 세계로 끌고 가고 있었구나! 엄마가 나를 사랑하니까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무조건 좋아하리라 착각했구나! 엄마를 놓아주자! 엄마는 엄마의 세계에서 엄마의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재미있는 것을. 딸이 말하니 억지로 끌려왔을 뿐. 

 

엄마와 순대국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우리 집으로 왔다. 캘리그래피 인터넷 강의를 트는 대신,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나하고 하는 캘리그래피는 이제 하러 오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하는 엄마 동네의 다른 수업을 들으러 가시라고. 나는 다른 계획을 했으니 이제 이 수업은 나 혼자 듣겠노라고. 엄마는 잠시 혼란스러워하는 듯하더니 이내 알아들으신 거 같았다. 내 마음의 변화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셨겠지만, 내가 다른 계획을 했다고 생각하신 듯했다. 그리고 어쩌면 속으로 무척 기뻐하셨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돌아가실때까지 엄마와 나의 대화의 gab은 계속될 거다. 그러나 나는 엄마와의 깊은 소통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건 나와 대화가 되는 다른 지인과 또는 글로 풀면 된다. 엄마와 나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 하나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유튜브 콘텐츠로 풀어가 볼 생각이다. 신사임당은 돈이 되는 걸 만들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돈으로 연결해 낼 만큼 숙련가가 아니다. 그런 건 나중에 익숙해진 다음에 하자. 지금은 동영상 하나 만드는 것도 버거운 유린이(유튜브 어린이, 이런 말이 있나 모르겠다)이다. 돈으로 연결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 줄이고, 엄마와 함께 한 시간들을 영상으로 남긴다는 마음으로 하나씩 공부하며 만들어가 볼 생각이다. 욕심은 많았는데, 아직은 공부가 부족하고, 엄마와는 맞지도 않고, 약속시간도 매번 맞추지 못하는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에 스트레스 받고, 예민해지면서, 억지로 만들어진 영상은 누군가에게 불편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거다. 나에게 소중한 영상, 엄마와 함께 한 추억으로 남길 소중한 영상으로 시간 날 때마다 천천히 만들어가 보자. 

'나의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정을 내려놓는다  (0) 2021.11.08
눈물은 자제력을, 나는 체력을...  (0) 2021.11.03
여행, 그런 후 공부  (0) 2021.10.28
넉넉한 삶  (0) 2021.10.27
또다시 좋은 습관 물들이기  (0) 20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