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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친정을 내려놓는다

by 짱2 2021. 11. 8.

올해는 김장을 두 번 하게 되었다. 비가 많이 와서 전국적으로 배추가 썩는다고 했는데, 엄마가 심은 몇 개 안 되는 배추도 그러하다고 갑작스럽게 김장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김치만으로는 적어서 이번엔 동생네랑 외숙모(해마다 외숙모에게 김치 두통 정도를 드린다) 댁 김치까지 준비하는 김장을 하게 되었다.

 

 

 

나는 올해 김장을 하며 정말 마음고생을 했고, 친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고요하다. 누구나 그렇겠지? '나'라는 존재는 홀로 고요하겠지.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들 때까지 공부하고, 책 읽고, 운동하고, 독서하는 삶. 그냥 그렇게 평범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고, 쇼핑해야 할 일이 있고, 남편과 여행을 가기도 하고, 친구들과 만나기도 하는 그런 삶을 산다. 대체적으로 평온하다. 

 

친정식구와 만나는 날은 늘 생각이 많아진다. 원인은 '아빠'라고 말하려 하는데, 어쩌면 '나'일수도 있겠다. 어릴 때부터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빠를 보며 자랐다. 엄마에게 폭언을 하고, 폭행을 하고, 무섭고 두려운 존재인 아빠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빠는 자식들을 때리시지는 않았다. 겁이 많은 나는 아빠가 무서웠고, 집이 싫었다. 다행히 엄마의 사랑으로 자살이라던가, 가출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을 수 있었으나 내 잠재의식에 깊이 자리를 잡아 나의 나쁜 성격은 아빠를 닮아 버렸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못된 성질, 불같은 화 등등이 꼭 아빠를 닮았다. 결혼을 하고, 착한 남편을 만나 조금씩 깨달음 얻고, 스스로 공부하며 많은 변화를 거쳐 지금의 내가 형성되었고, 매일 조금씩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한다고 자부하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친정에 가면 아직도 그런 성격을 소유하고 늘 엄마에게 가스라이팅 하고 있는 아빠를 보게 된다. 어릴 적에 생긴 트라우마일까? 엄마가 가엾어서일까? 난 아빠의 그런 행동에 견딜 수가 없다.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김장하는 날, 아빠는 모든 것에 참견을 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려 했다. 김장은 엄마가 하는데, 매사 참견을 한다. 결국은 잔소리다. 김장이 모두 끝나고, 동생집 몫인 네 개의 김치통과 배추 여러 통, 국 등등의 것들을 우리 차로 가져다준다고 하니, 아빠가 걸어서 갖다 주겠다며 억지를 부리셨다. 차로(자가용으로 10분 거리) 한 번에 가면 되는 것을, 노인네가 무겁게 어떻게 옮겨다 준다는 것인지. 참 어이가 없다. 자기 말대로 안 했다고 성질이 머리끝까지 나서 또 엄마를 달달 볶는다. 딸과 한통속이 돼서 자기 말을 무시했다는 거다.

 

아빠의 말도 안 되는 말과 행동을 모두 나열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힘들게 나열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번 일을 겪으며 몇 가지 생각을 했다.

 

내년부터는 절대 김장을 같이 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나는 김치가 없어도 된다. 다만 남편이 배추김치를 정말 좋아하니 우리 것만 조용히 담글 생각이다. 이제 절대 친정식구와 김장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된 것엔 아빠 탓도 있지만 올케의 행동에도 원인이 있다. 그녀의 말없음을 과묵함이라고 애써 예쁘게 보려 했는데, 이젠 애쓰지 않으려 한다.

 

김장뿐이 아니라 이젠 아빠를 볼 일도 자주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부모라는 이유로 나는 정말 많은 사랑을 품었다.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요즘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읽고, 동영상을 보면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사람은 오히려 가족이고, 너무 상처가 되고 아프면 안 볼 수도 있다는 내용을 접하면서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그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동생도 마찬가지다. 그는 점점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로 변하고 있다. 함께 할 때마다 불편하다. 엄마는 정말 사랑하지만, 엄마도 가끔은 나를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어버리니, 너무 자주 만나지 않을 생각이고,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려 한다. 사실 엄마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안쓰럽고, 우리가 모시고 다니지 않으면 멀리 여행 가실 일도 없다는 생각에 시간과 돈 들여 모시고 여행을 다니고, 즐겁게 해 드리려고 맛집, 멋진 곳 찾아다녔는데, 아빠의 마음은 늘 동생에게 가 있고, 늘 불만인 사람이다. 나는 이제 가족을 내려놓으려 한다.  나는 암환자이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봐도 된다. 가족은 무조건 함께 해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나를 망치지 않을 테다. 

 

이미 아빠도 알고 있었고, 엄마도 알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아빠도 여행 가자고 하면 너희끼리 가라 하셨던 거고, 엄마도 아빠한테 그럴 필요 없다고 했던 건데, 왜 나는 이제 알았을까? 가족이라는 환상이, 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나의 고정관념이 나를 참고 사는 사람으로 만들었나 보다. 이젠 부모님을 내려놓고, 동생네도 내려놓고, 내 삶만 붙잡고 살아갈 거다.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할 거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고, 혹여라도 후회된다면 그때 후회하고 말 거다. 죽어서 하느님이 천당과 지옥을 논하며 얘기하신다면, 나도 최선을 다하며 살았고, 쉰네 살에서야 진실을 깨달았고(물론 진실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살아야 했다고 말할 거다. 지금의 내 생각이 잘못이라고 깨닫게 될 날이 온다면, 그때 가서 내 마음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면 된다. 지금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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