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건조기에서 말리니, 편리하고 좋은 점도 많지만, 어떤 옷들은 줄어들기도 해서 몇몇 옷들은 예전 방식으로 널어 말리곤 한다. 안방에서 청소를 하다 보니, 며칠 전에 베란다 빨랫줄에 널어둔 남편의 상의 세벌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까지도 걷어들이지 못했음을 깨닫고 재빨리 걷어와 잘 개켜서 남편 옷장에 넣어주는데, 그때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내가 죽으면 우리 신랑 옷을 누가 이렇게 챙겨줄까?'
털털한 남편은 옷이 냄새나도록 입고, 세탁기에 돌려 말린후, 대충 개서 장롱에 대충 쑤셔 박아 둘 거다. 다시 꺼내 입을 때, 그 옷들은 제멋대로 구겨져 있을 테고. 내가 있으니 깔끔한 거지, 내가 없으면 가뜩이나 털털한 남편은 더욱 털털해지다못해 꾀죄죄해질 텐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개구쟁이 막내아들을 보는 듯, 가슴이 찌릿하며 아려왔다. 혼자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저 사람.... 우스갯소리로 내가 죽으면 제일 먼저 화장실로 달려가 웃을지도 모를 일. 나의 착각일지는 몰라도 슬픔에 눈물을 닦아내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는 내 남편. 착한 내 사람.
우리 두사람, 오래도록 건강하게 함께 살고 싶은데... 아마도 모든 사람의 소망일 테다. 지금처럼 함께 여행 다니고, 함께 맛난 거 먹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아들 집에도 놀러 가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얼마나 깊은 인연이었기에, 우리 두사람 이렇게 만나 평생을 함께 하며 살아갈까?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만나 동고동락 함께 하며, 이 세상의 유일한 내편이라 믿으며 살아갈까?
아침 식사를 하며 국에 말은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먹는 남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먹고살겠다고, 흩어진 밥알을 숟가락에 담는 모습을 보며 엄마미소가 나왔다. 그러다 문득 어떤 장면과 오버랩되었다. 부부싸움을 한 후에 남편의 밥 먹는 모습, 음식 씹는 소리까지 미워서 미쳐버릴 것 같았던 그때...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남편도 늙었고, 나도 늙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고, 그 사이에 나는 암환자가 되었고, 그런 나를 남편은 말없이 보살펴주었다. 살가운 보살핌은 없었지만, 내가 말만 하면 다 들어주었고, 담배도 끊었고, 술도 줄였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였다. 나를 위해 뭐든 해준다. 소리 없는 사랑에 가슴이 미어졌다. 이렇게 고운 사람임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미운 것만 보며 다른 생각을 했었을까.
함께 나이들어가고,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에도 뭘 원하는지 알게 된 세월. 좋은 사람 만나 좋은 시간 보내며 여기까지 왔구나. 앞으로 얼마나 함께 살까?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30년이 될지 알 수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남들처럼 황혼이혼 같은 건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처럼, 앞으로도 생각하지 않을 거란 거. 늘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갈 거라는 거. 눈 감는 순간까지 마지막으로 떠올리며 행복했노라고 말할 거라는 거.
주님, 저에게 이토록 고운 사람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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