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만에 일기를 쓴다. 마지막 일기를 쓴 이후, 6개월에 한 번씩 해야 하는 정기검사를 해야 했고, 그 검사를 위해 거의 3일간 먹는 것을 조절해야 했다(이틀은 굶었다). 먹는 것에 예민한 나에게 굶는 것은 바로 스트레스로 이어졌고, 검사 일주일 후 즉, 그제와 어제의 담당 교수님들과의 면담까지 나의 초조한 마음마저 역시 스트레스를 확장시켰다. 그 시간이 열흘이었다. 검사를 위해 죽을 먹고, 굶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대장내시경을 위한 물약 먹기를 해야 했고, 일반인과는 다르게, 대장내시경을 하는 동안, 수면내시경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통증으로 인해 마취까지 깨는 그 시간을 견디고 견뎠다. 그 고통의 결과는 담당 교수님들에게서 듣는 '결과가 좋다'는 말. 역시 그 말을 들을 수 있었고, 특히 대장 담당 교수님과의 면담은 나를 정말 기분 좋게 했다. 죽을 만큼 싫은 대장내시경을 2년 후에 한다는 말도 좋았고, 검사 결과가 깨끗하다는 말도 좋았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힘이 생겼고, 어떻게 살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도 잡혔다.
3년이 넘는 암경험자로서의 시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알아낸 것들이 있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잠은 얼마나, 어떻게 자야 하는지,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3년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만의 건강한 루틴을 만들었고, 다시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얼마간 가지며 돈도 조금 모았고(아직은 내가 생각한 것의 반정도 부족하다), 몸에 좋지 않은, 그러나 입에서는 먹고 싶은 좋지 않은 음식을 먹고, 그 처참한 결과를 내 몸으로 직접 느꼈고, 그래서 이제는 그다지 먹고 싶지 않아져 다행인 음식 습관, 음식 철학도 생겼다.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내가 우선이 되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깨닫게 되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부와 독서를 하며 인생을 즐겨야겠다는 삶의 전반적인 목표도 생겼다. 아직까지는 잡히지 않는 일과 돈은 억지로 잡으려 하지 않고, 내게로 올 때를 기다리겠다는 여유도 생겼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면 나는 좌절했을 거고, 다시 용기를 내어 살겠다고 욕심을 부렸겠지만, 이미 힘이 많이 빠졌을 것이다. 스트레스로, 긴장으로, 걱정으로 예민해져 있던 나에게 검사결과는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을 선사했고, 삶의 목표와 계획을 더욱 확실히 해 주었다. 살아갈 이유를 건네주었다.
작은 시누이가 전화통화 하던 중 나에게 말했다. 몸이 아픈 것 빼고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남편이 속을 썩이냐, 아들이 속을 썩이냐라고. 맞다. 하지만 남편과 아들이 내 속을 썩이지 않는 것은 1차적 행복에 불과하다. 물론 엄청난 복이고 행복임을 안다. 그러나 두 남자 모두 내가 아닌 남이다. 내가 진정 행복한 사람인 이유는, 나에겐 꿈이 있고, 목표가 있고, 살아갈 이유가 있음이다. 다른 사람 때문에, 또는 다른 사람 덕분에 행복한 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로 인해, 내가 꾸는 꿈 때문에, 내가 살아있음에, 내가 살아가는 이유로 인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로 인해, 그런 후,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행복한 거다.
암환자가 된 이후, 3년이 넘어가고, 다시 반년이 흐르는 시간동안 난 참 잘 살아왔다. 내 건강을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내 꿈을 위해서, 내 삶을 위해서, 내 주변인들과의 관계까지 모두 잘 해냈다고 자부한다. 잘했다. 잘했다. 대견하다. 어제의 면담으로 내가 훨씬 자랑스러워졌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더욱 열심히 살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멋진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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