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그냥 살아내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의미를 찾고 가치를 높이는 과정이다.
배움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소중한 도구다.
내 삶에서 이루어야 할 소명을 찾는 나침반이다.
내 삶에서 '배움'이란 단어를 빼놓고 말할 수 있을까? 배움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신체에 장애까지 있는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낼 수 있었으리라. 폭력적이고, 무식한 부모님 밑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아이가 55세가 되는 과정에서 배움은 치열함 그 자체였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배움을 강요한 적도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나의 배움을 자극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건 나의 질투심을 자극한 내 친구. 나와 같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을 보냈던 아이. 그녀는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담임선생님을 잘 만났고, 그녀의 높은 아이큐에 비해 성적이 낮은 그녀를 담금질해, 그녀를 전교 1등으로 졸업시켰다. 학비도 없던 그녀는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녔고, 빼어난 미모를 가진 그녀는 대학에서 자신의 삶을 변신시켰다. 그에 비해 나는 가난한 집에서 그렇고 그런 부모 밑에서 평범함 그 이하의 삶을 살다가 도피처로 남편을 만났고, 정말 죽기보다 싫었던 집을 결혼과 함께 떠났다.
학창 시절, 나의 단짝이었던 그녀의 삶의 전환점은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셨다면(물론 그녀는 다른 것을 택할 수 있겠으나 나의 판단으로는 그렇다), 나에게는 결혼이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조차 싫었던 집을 벗어나 19평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불편한 몸 때문에 목욕탕에 가기 싫어 집에서 목욕을 하려면, 누가 볼까 싶어 천막을 치고, 겨울에는 오들오들 떨며 강행을 해야 했었다. 그러나 상계동의 19평 아파트는 나의 가장 힘든 목욕을 해결해 주었고, 지옥과도 같이 느껴졌던 집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내 집, 내 가족이 나에게 주는 진한 만족함, 평안함, 온화함, 안정감 등등의 감정들이 스물셋의 어린 나를 평온함으로 이끌었다. 항상 말하고 다니는 것이지만, 그때 도망치듯 결혼 한 나에게 현재의 남편이 나쁜 사람이었다면 나의 인생은 또 달라졌을 텐데, 하느님은 정말 나를 사랑하셨나 보다. 참 고운 사람을 내게 보내 주셨고, 착한 남편의 사랑으로 안정감을 찾아가던 나는 내 안에 숨어있던 그녀에 대한 부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공부, 대학, 대학 캠퍼스... 내가 누리지 못한 것, 감히 누릴 생각조차 못했던 것, 너무나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던 것...
운명이었을까? 공부를 하라고 무언가 노크를 했고, 질투로 휩싸인 나는 덥썩 그것을 물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내 삶의 공부는 시작되었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것이 30년째이다. 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가치를 높이기 위해, 내 삶의 소명을 찾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지도 않았고,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그냥 '대학'에 미쳐서, 무언지도 모르는 내 안의 어떤 열정 때문에 공부를 시작했고, 그 길에 멈춤은 없었다. 그냥 앞만 보고 달려왔다. 오랜 시간에 걸쳐 공부를 하고, 국문학사 학위를 받은 후에도 내 안의 갈증은 가시지 않았고,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었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중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채워지지 않는 공부의 욕심이 또 용솟음쳤다(물론 공부의 욕심은 내 삶 전체에 번져있지만). 나는 다시 영문학과에 편입을 했고, 이때부터 내 삶은 정말 변화를 맞이했다.
하나씩 이뤄가는 작은 성공들이 내 안의 가능성을 퍼 올렸고, 많은 이들이 나를 추앙했다. 나는 계속 성장했고, 발전했고, 어릴 적의 가난, 무식하고 폭력적인 언어로부터 온전히 벗어날 수 있었고, 나는 멋진 나로 변신해 있었다. 지금의 나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었고, 스스로의 만족감도 상당히 높다. 행복도도 높다고 자부한다. 살아오는 과정에서 술과 또 다른 그 무엇이 나를 '암환자'로 만들어 놓았지만, 이 훈장이야말로 내 삶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난 억울하지도 않고,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 위의 글이 나를 자극했다. 내 삶의 의미, 가치, 소명은 무얼까? 아직도 배움이 부족하다는 증거겠지만, 아직도 나는 헤매고 있는 느낌이다. 내 삶의 미션, 비전 등등을 찾는 연습을 했고, 빈 칸을 채웠지만, 그것이 온전한 답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우선 써놓고 나중에 변경할 마음이 더 크다고 해야 할까? 내 삶의 미션은 꿈꾸는, 도전하는, 설레는 삶이다. 사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너무 포괄적인 느낌이고, 나를 설레게 하는 똑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생각조차 못하고 사는 인생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까지 만들어 놓은 것만도 충족도가 높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나의 소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명이 공부는 아니지 않은가! 과정일 뿐이지.
오늘 아침, 나의 소명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 새로 시작하는 일이 나에게 그것을 알려줄까? 새로 일을 시작하면서도 오전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보내리라 마음먹으며, 독서, 공부시간을 놓칠새라 계획표를 짜고 있으니, 이런 시간이 나에게 소명을 살포시 알려줄까? 언제쯤 나는 공부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살까? 아니면 평생 공부하는 삶을 살까? 후자에 정답이 있음을 알면서도 공부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마음이 한편에 남아있음은 또 무얼 의미할까? 편해지고 싶은 마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