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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수련, 정적, 승화

심연 2

by 짱2 2023. 12. 18.

순간 - 봄의 약동으로 싹이 트는 찰나의 시간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만물을 삼켜버리는 괴물.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괴물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과 세월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은 그 무엇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가버린 뒤, 결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그 흐름의 시작과 끝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쏜살 같이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시간,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무방비 상태로 미래에 진입한다. 그 결과 우리에게 남는 것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상뿐이며,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것도 바로 시간의 흔적이다. 

 

 

미래는 무방비 상태이기에 설레이고, 그렇게 만난 시간이 나를 거쳐 흘러간 후 나에게 남는 것이 회상이기에 아름다움으로 물들이고 싶어 매 순간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내고 있다. 또한 남에게 보이는 나의 정체성,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에게 스스로 명명할 수 있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독서하고, 공부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다. 

남에게 보여지는 나의 정체성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어쩌면 그것이 좀 더 정확한 나의 정체성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스스로 명명할 수 있는 정체성을 찾고 싶음이 가장 절실한데, 사실 나 자신도 나를 뭐라 이름 지을지 확실한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명확해질 때 나는 좀 더 든든한 뿌리를 가진 큰 나무로 성장할 거 같다. 그리고 내가 명명한 그 정체성이 남에게도 그렇게 느껴진다면 그건 더 큰 기쁨이 될 거다. 여기서 남이란, 내 가족, 내 지인들을 말함이다. 내 가족도, 내 지인들도 내가 인식하는 나로서 받아들여주고 있다면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명확 해질 거 같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어떤 정체성으로 명명하고 싶을까? 아내, 엄마, 딸, 현재는 영어선생님이라는 물리적인 정체성과 더불어 항상 꿈꾸고 공부하는 사람, 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 예쁜것 좋아하고, 예쁘게 꾸미는 사람, 이 정도가 나의 정체성으로 여겨지고 또 그렇게 보여지리라 생각한다. 아! 암환자였고, 암을 극복한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리고 또 뭐? 난 뭘 더 추가하고 싶을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이건 왠지 남들이 하는 말을 주워온 느낌이다. 고운 사람! 그래,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거다. 그리고 스스로 명명하고 싶은 말도 이거다. 예전엔 예쁜 사람, 예쁘게 사는 사람이란 표현이 참 좋았다. 그런데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젠 아름다운 사람이란 말을 듣고 싶은데, 이 말은 왠지 거창하게 느껴진다. 그보다는 한 단계 완화된 듯, 그리고 내가 좀 더 노력하면 가능한 말 같아서 좋네. 그래! 이젠 예쁜 사람, 예쁘게 살자가 아닌, 고운 사람, 곱게 살자로 바꾸자!!

 

그리스도교에서는 흘러가는 양적인 시간ㅇ르 그리스어로 '크로노스'라고 한다. 반대로 영원한 질적인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한다. 카이로는 신이 개입하는 질적인 시간,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시간이다. 

 

플라톤은 과거와 단절해 새로운 시작을 여는 동력을 고대 그리스어로 '엑사이프네스(exaiphnes)'라고 했다. 엑사이프네스는 흔히 '갑자기/한순간에'로 번역된다. 

엑사이프네스의 시간은 우리의 타성과 게으름을 일깨우며 한 곳에 의미 없이 고정되어 있던 시건을 돌리게 한다. 그러고는 그림자의 허상이 아닌 빛이 일깨우는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이런 자기변화는 모멘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포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혹시라도 지금 귀하고 소중한 순간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있다면, 고통이 따르더라도 이 순간에 집중해 자신만의 빛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 결정적인 순간이 삶을 좀 더 진실에 가깝게 해 줄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뭔지 깨닫고 현재의 삶을 잘 살자는 말이구나! 그 과정에서 고통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진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는 것이구나!

나는 늘 그 고통을 겪고있다. 나의 온몸으로, 온 정신으로 진정한 삶을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며 그토록 살아내려 했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5년 전엔 알코올중독으로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삶을 살았고, 지금은 암수술로 인한 체력저하로 또 집중하기 힘들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려 애쓸수록 따라오지 못하는 체력으로 인해 집중할 수 없고, 그 힘듦이 고스란히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루틴으로 자리 잡은 좋은 습관들이 나를 책상 앞으로 끌어당겨 앉히고, 공부하고, 독서하고, 사색하는 삶으로 인도한다. 건전한 정신, 건강한 몸으로 집중해서 멋지게 살아가는 그 누군가와는 시간차가 벌어지겠지만, 목표에 천천히 갈 뿐, 도착하지 못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늘 꿈을 꾸며 공부했던 고운 여인으로 묘비명을 새기리라. 그리고 그 묘비명이 참으로 적절하다고 고개를 끄덕일만큼 지금 잘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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