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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수련, 정적, 승화

심연 4

by 짱2 2024. 7. 3.

진화를 위해 거쳐야 하는 장소 현관

 

우리나라 말 '문지방'이나 '현관'을 의미하는 라틴어 리멘(limen)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하고 막막한 기다림의 시간 또는 장소를 가리킨다고 한다. '여기'에서 '저기'로 가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어떤 장소가 필수적이다. 넘어서야 할, 머물러야 할 장소. 그곳에서 우리는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첫 번째 '분리' 단계

과거로 상징되는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버리는 단계다.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세계와 단절하는 것을 '혁신'이라고 하며, 이때의 '혁'자는 갑골문에서 소의 가죽을 벗겨낸 모양이다.

두 번째는 '전이' 단계

오래된 자아를 소멸시키는 기나긴 투쟁의 시간이다. 전이란 과거에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점점 소멸되어 새로운 자신으로 채워지는 과정이다. 

세 번째는 '통합'단계

조용히 다가오는 단계. 전이 단계에 충분히 거한 자가 자신도 모르게 들어서는 단계. 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려면 점차 오래된 자아를 소멸시키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야 한다. 

 

갑각류가 제 몸의 작아진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껍데기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비슷하겠다. 맞춤옷처럼 편안했던 껍데기가 불편해진다. 커져버린 내 안의 그 무엇에 맞는 새로운 가치, 철학이 필요하다. 성숙하기 위한 나만의 처절한 몸부림, 알듯 말듯 어려운 삶의 해답들이 흩어져 혼란스럽고, 욕심만큼 자라지 않는 지혜로움의 끝은 보이지도 않는다. 제자리인 듯, 그러나 또 한걸음 나아간 듯 가물가물한 지금 이 자리. 성장하고 싶다. 내 안을 지식과 지혜로 채워가고 싶다. 음악도 미술도 수학도 영어도 문학도 모두 품고 살고 싶다. 욕심은 넘치고, 체력은 따라주지 않고, 아직 수준도 모자르다. 

 

 

 

오늘 아침, '쇼펜하우어의 지혜'를 읽다가 '고독을 사랑하라'는 글에 밑줄을 긋고 잠시 사색했다.

 

고독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자유를 사랑할 수도 없다. 우리들은 자유를 즐길 수 있는 것도 혼자 있을 때이므로... 고독을 느낄 때 졸부는 자신의 무능함과 무가치를 느끼고, 위대한 성격의 소유자는 자기의 위대성을 느끼게 되어, 결국 누구나 거기서 참된 자신을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고독을 선택했다. 올 여름, 그리고 올 해는 철저하게 고독해지자고 마음먹었다. 나의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부질없는 인연들로 나의 귀한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쁨을 찾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겠지만, 나는 혼자만의 시간, 독서, 사색, 명상, 글쓰기로 기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찾는다. 쇼펜하우어는 정신적 고독과 육체적 고독이 함께해야 가장 부드러운 은총에 충만한 것이라고 한다. 육체적 고독이 없다면 적에게 침입당하는 것이고 자신의 자유와 안정을 빼앗길 뿐 얻는 것은 없다고 한다. 나를 내버려 두길, 내가 온전히 고독해지도록 내버려 두길 바라는데 나를 찾는 이들이 부담스럽다. 

 

그러다 문득 내가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기에 그들이 나를 찾는 것이리라 싶어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찾는이가 없다면 또 많이 서글프겠다 싶기도 하다. 양가감정이다. 

 

 

 

배철현 작가님도 '현관' 파트에서 '고독'을 이야기한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만든 시간과 공간이야말로 우리의 스승이다. 그리고 이 분리된 시간과 공간을 '고독'이라고 한다. 고독은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불안해하는 외로움의 상태가 아니다. 의도적인 분리의 상태이자 자신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다. 자신에게 온전히 헌신하고 묵상하는 고독의 시간을 통해 보통사람들도 위대한 성인이나 위인으로 변화할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가. 자신의 삶이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현관에 서라, 지금 곧.

 

학원을 그만두면서 현관에 들어설 준비를 했다. 지인들과 모두 만났고, 엄마에게 최선을 다했고, 부모님 모시고 여행도 다녀왔다. 6월로 마무리 짓고 7월부터 들어서려 했던 현관 앞에서 아빠의 허리부상으로 주춤했다. 다행스럽게도 큰 부상이 아니어서 7월의 첫 이틀은 지나갔고, 오늘 3일째서야 계획한 대로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현관에서 쭈뼛쭈뼛한다. 졸음과 싸워보기도 하고, 시간표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서성이기도 하고, 무거운 몸을 일으키기 힘들어 잔꾀를 내보기도 한다. 그래! 그렇게 조금씩 현관에 익숙해지자.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기 위해 고독한 시간을 갖자. 나를 분리시키고, 전이시키고, 통합하자.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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