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축하해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자신의 생각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나만의 유일한 임무를 찾아내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시간이 지나도 가장 알고 싶은 사람은 나 자신이고, 내가 가장 소중하구나. 심연의 첫 부분에 나오는 이 구절에서 나 자신의 심연 깊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악기를 연주하고 싶었고, 그것이 피아노로 이어졌고, 나를 신나게 해주고 싶어 운동과 역동의 느낌을 줄 수 있는 자전거로 이어졌고, 나에게 충만한 감성을 주고 싶어 책을 사고 음악을 듣는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많다.
어제, 서울대병원에 검사결과만 들으러 갔다 와도 되었는데, 굳이 아침 8시도 되기 전, 출근인파와 함께 어울려 북촌으로 향했고, 혼자서 그 유명한 'Onion'이라는 카페에 들러 커피와 빵을 먹으며 책을 읽었고, 또 그 유명한 런던베이글에 들러 유명한 베이글 네 가지 종류를 사가지고 왔다. 또 나에게 옷 선물을 하고 싶어서 제일평화 시장에 들러 옷 몇 벌을 사고, 병원 근처의 맛집에도 굳이 들러서 돈가스카레덮밥을 먹었다. 이 무슨 극성인가 싶지만,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것은 꼭 해내는 나의 이런 집념(?)이 나를 살게 한 것 같다. 이 지독한 욕심이 나를 살린 거 같다. 이 모든 욕심은 나에 대한 사랑이다.
그런데 이런 욕망은 보이는 것이다. 내가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저 깊은 심연의 그 무엇이 알고 싶다. 좀 더 형이상학적이고 좀 더 고차원적인 그 무엇을 찾아내고 싶다. 물론 내 안에 그런 것이 없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것도 좋다. 그런 것이 없음을 알아냈으니 그 깊은 곳을 찾아내어 깊은 성찰의 깨달음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삶의 여정 가운데 잠시 멈춰 서서 지금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정교하게 헤아리는 훈련이다.
'인생 뭐 있냐, 그냥 사는 거지!'라고 말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의 그런 자기만의 삶의 방식도 존중한다. 그러나 방향 없이, 목적 없이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는 삶은 도대체 자신이 어디로 가 닿고 싶은지도 모른 채 파도에 떠밀려 다니는 주인 없는 나룻배와 뭣이 다를까? '저기 보이는 저 무인도에 한번 가볼까? 저기 보이는 저 커다란 섬엔 사람이 많으니 나도 한번 가볼까? 이번엔 아름다워 보이는 저곳에 가보자!' 그래야 자신의 자유의지로 움직이는 즐거움도 맛보고, 성취의 느낌도 가져보고, 실패의 쓴맛도 보고, 설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어디쯤 와있는지 알기 위해선 '멈춤'도 필요하고, 정교한 헤아림도 필요하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 또한 훈련이라고 한다. 나에겐 지금이 바로 그런 훈련의 시간일지다.
'생각'은 인생이라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집을 짓도록 도와주는 설계도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인생이 있고, 그것을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우주는 우리 각자에게 생각이라는 고귀한 선물을 주었다.
심연으로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 '생각'은 절대적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 학원을 그만두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고 싶었다. 나에 대해, 문화에 대해, 예술에 대해, 사랑에 대해, 사람에 대해, 존재에 대해... 깊이깊이 심연 속으로 들어가 내 안의 그것을 끌어내려한다. 올해, 그리고 아마도 내년까지 행복한 여정일 테다. 기대된다.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