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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수련, 정적, 승화

심연 5

by 짱2 2024. 7. 9.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는가 실패

 

 

 

고통과 암흑의 시간 동안 그녀(조앤 로링)는 자신의 삶에서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이 아닌 척하기를 그만둔 것이다. 동시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일을 헤아려 그것에 집중했다. 그녀는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의존적이고 종속적인 인간이기를 그치고, 자신을 깊이 응시하며 새롭고도 놀라운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섰다.

 

심연을 만났다. 오래전이다. 심연에 이어 수련, 정적, 승화까지 모두 읽었다. 한 번 읽은 것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철학적이고 지적이었다. 배철현 교수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글을 다시 읽고, 필사하고, 사색하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은 첫 단계가 나의 심연으로 깊이깊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의 심연으로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의 본질이 아닌 것들을 내려놓고, 중요하고 절실한 것에 집중해야 했다. 

 

암환자가 되면서 나를 좀먹던 건강하지 못한 삶을 내려놓았다. 술, 담배, 남자, 방황, 외로움, 공허, 비교, 질투... 눈앞에 다가온 죽음이 나를 늪에서 이끌어냈다. 노력하지 않고도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내게서 흘러가버렸다. 죽음은 그토록 강한 힘이 있었다. 직장이 물리적인 시간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나의 심연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는 계속하고 있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삼십대에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내가 믿는 이 신앙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4년간 성서 공부를 했던 것이 나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이지 않았을까? 그저 사는 대로 사는 인간이었던 내가, 성경의 한 구절을 묵상하고 나를 돌아보았더랬다. 매주 성당에 나가며 서너 개의 질문을 깊이 사색하고, 내 삶을 반추하고,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귀한 시간을 4년이나 보냈다. 그 무렵,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내가 누구인지 알 거 같았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무엇 때문에 힘든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 거 같았다. 책을 꾸준히 읽었고, 일기를 꾸준히 썼고, 하고 싶은 공부를 계속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길을 걸어가며 내 삶을 만들어왔다. 잘난이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삶이겠지만 스스로 돌아보면 참 애쓰면서 잘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다만 잘못 형성된 못난 마음과 나쁜 습관들이 나를 좀먹고 있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에서 내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데, 죽음이 이것과 저것의 선을 과감하게 갈라주었다. 나는 쉽게 저곳에서 이곳으로 사뿐히 옮겼다. 

 

그러다 만난 심연... 나는 더욱더 내 안으로 깊이 빠져들고 싶다. 아! 그런데 버리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 사람들... 나를 찾아주는 그들이 정말 고맙다. 그들이 나를 사랑해주는 그 마음은 충분히 감사하다. 그러나 많은 그들을 몇 개월에 한 번이라도 만나야 한다는 부담감이 꽤 크다. 안 만나주면 서운해할 사람들, 그 마음까지 내려놓기가 참 어렵다. 서너 번 볼 거 한두 번으로 줄이려 하지만 쉽지 않다. 내가 그들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인지, 또 굳이 사람들을 내려놓을 이유가 있는 것인지 마저도 혼란스럽다. 이 부분은 올 한 해 동안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물론 서서히 내려놓는 중이긴 하다.

 

 

 

 

바닥 모를 심연으로 한없이 추락했었으나 그 심연은 오히려 단단한 바닥이 되어 스스로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내게도 이 시간들이 바닥이 되어 나를 들어올려 주기를... 내 깊은 곳에서 말하는 것들을 알아내고 진정한 내가 될 수 있기를...

 

 

 

인간은 저마다 어두운 숲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장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열정을 발휘하게 하는 나만의 고유 임무다. 누구나 때가 되면 죽는다는 이 불변의 진리를 깨닫는다면 자신에게 진실로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당신은 과연 죽음도 두렵지 않은 당신만의 임무를 가지고 있는가.

 

죽음도 두렵지 않은 나만의 임무가 있다면,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국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위인들을 보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나에게 심한 고문을 가하겠다고 협박한다면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다 말하고 고문을 받지 않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그 모진 고문을 감내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이들이 있다. 얼마나 멋지고 숭고한가! 정말 자신 없다. 이런 거까지는 아닐지라도 죽음도 두렵지 않은 내 삶의 목적과도 같은 임무가 있다면 참 좋겠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도 그걸 모른다. 나의 열정은 나의 배움으로 향한다. 공부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공부만 하고 살라하면 제일 좋겠다. 그런데 지금이 바로 그런 시간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면서 살고 있다. 학원을 그만두면서 이렇게 살고자 마음먹었다. 돈은 못 벌겠지만,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만큼만 쓰는 연습을 하면서 살아보자 했다. 내 형편껏 살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모두 하면서 살자고 마음먹었다. 실컷 책 읽고, 공부하고, 음악 듣고, 공연 보고, 미술관 관람하고, 영화 보고, 새로운 것들 도전하고... 이런 것들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바쁘고 행복하다. 그래서 지인들 만나는 시간도 아까운 것이다. 그들은 나의 아깝다는 표현이 싫겠지. 그런데 정말 아깝다. 그냥 수다 떨며 지나가는 시간들이 아깝다. 그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읽고, 하나라도 더 알아가고 싶다. 차라리 내 건강을 위해 한숨 자는 것이 더 좋다. 물론 사람들에게서 배울 것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책에서 배우는 것들이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 만족도가 높다. 이렇게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면 나의 임무가 보일까? 

 

실패는 이제 크게 두렵지 않다. 나의 노후를 헤칠 정도의 재산적 피해를 끼칠 실패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겠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의 도전으로 인한 실패는 두렵지 않다. 실패하는 삶이 멋진 삶이라는 것을 아니까.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용기, 힘. 나는 이것을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도전하고 또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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