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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제1회 가족모임 준비

by 짱2 2023. 12. 29.

몇 년 전부터 연말이나 연초에 남편과 아들과 함께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계획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 이런 시간을 보냈던 날, 금방 끝날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우리는 꽤 긴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보냈다. 서로에게 뭘 그리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그 시간은 참 좋았더랬다. 그래서 이런 시간을 두 번 가졌을까? 이제 올해 말, 우리 가족은 세 번째 가족 모임을 갖게 되었고, 이젠 세 명이 아닌 네 명이 되었다. 아들이 결혼을 했고, 며느리가 생겼다. 그리고 아들이 작은 결혼식을 한 날, 우리 가족은 시아버님이 계신 현충원에 들러 며느리에게 현충원 구경(?)도 시켜주고, 시아버님 이야기도 들려주는 시간을 가졌었다. 이 시간도 참 좋았었다. 그런 후, 분위기 좋은 카페로 이동해서 23년의 남은 반년을 계획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때가 마침 7월 7일이어서 반년을 계획하기에 적절했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제안에 생각보다 며느리가 더 좋아했고, 우리는 서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다. 그때의 기억이 좋았는지 며느리는 이번에 있을 가족 모임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참 다행이다. 며느리가 좋아해 줘서.

 

 

 

제1회 네 명의 가족모임으로 명명할 생각이다. 그 전의 가족모임은 며느리가 들어오기 전이었고, 예행연습이라 생각하고, 이번 모임부터 이름을 붙여 기록까지 남길 생각이다. 물론 기록은 며느리에게 부탁할 예정이다. 그녀는 아날로그적으로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이 또한 참 다행이다. 나와 코드가 맞는 거 같다.

 

이번 가족모임에서 23년을 돌아보고, 24년의 계획을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당연히 23년은 아들이 결혼한 커다란 이슈가 있었고, 내가 암진단을 받은 지 5년이 되었다. 그리고 학원에서 지지고 볶은 한 해였고, 잘 견뎌낸 내가 대견하고, 나의 발전을 꿈꿨던 것과 달리, 학원은 더 이상 나의 꿈의 실현 대상이 아님을 깨달았고, 그리하여 내 꿈은 학원과는 별도의 나만의 공부방을 만드는 것이 되었다. 지금의 학원은 학교처럼 그룹으로 진행하다 보니 개개인이 꼼꼼하게 지도받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내가 아무리 돌봐주려고 해도 한꺼번에 많은 아이들을 보려면 몸이 모자란다. 개인교습보다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틀을 잡아주지 않으면 스스로 공부할 수 없다. 앞으로 2년, 3년 후에 작은 공부방을 낸다면, 내 나이도 적지 않은데, 할머니 소리를 들을 나이인데, 누가 나에게 아이들을 맡길까? 이젠 아이들 인구수도 줄어들고,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선생님들도 많을 텐데 누가 나에게 아이들을 맡길까?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개개인을 돌봐주는 돌보미케어의 기능과 영어공부를 뼛속까지 심어주는 티칭을 한다면 나만의 캐릭터로 자리매김되어 학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벌써 머릿속에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꿈을 이루기 위한 프로젝트가 벌써 시작되었고 내년도 이 프로젝트를 향해 달려갈 계획이다. 영어공부!! 학교과정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 영어회화까지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앞으로 2년간 내가 해야 할 최고의 목표다. 2026년부터는 동네의 아이들부터 가르칠 계획이고, 최소 정예로 갈 계획이지만, 어느 정도 인원이 되면 오피스텔로 나아갈 거다. 책상이나 컴퓨터, 문구류 등도 예쁜 것들로 만 구성해서 깔끔하고 아늑한 공간 구성을 할 예정이고, 따뜻하고 정성이 들어간 간식도 준비할 공간까지 마련할 것이다.

 

다음은 가장 중요한 내 건강 지키기인데, 하루 한 시간 꼭 걷기를 하거나 실내자전거를 타는 것.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건강식 만들어 먹기다. 나에게 건강은 죽음으로부터의 거리 두기다. 절대적 필수요건이다. 공부를 최고의 목표로 두었지만 운동을 놓치면 마음이 정말 불안하다. 수면과 더불어 운동은 빼놓지 말아야 할 필수조건.

 

서로에게 바라는 점으로 무엇을 이야기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김미경쌤의 강의를 듣게 되었고, 거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가족이 뭘까? 끝없이 품어 안는 것. 내 마음이 쉴 곳.

 

어릴 적, 괴팍한 아버지 때문에 내 감정은 널을 뛰었다. 마음 둘 곳이 없어 친구를 찾고, 글을 쓰고, 내 공간을 찾았다. 그때 나에겐 엄마가 있었다. 많이 배우지 못해 현명한 말로 나를 다독여주지는 못했지만 마음으로 품어 안으며 사랑을 주셨던 엄마 덕분에 나는 잘 성장할 수 있었다. 그 힘으로 나는 먹고 자랐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설상가상으로 하느님은 나에게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천사를 보내주셨다. 그는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주었다. 철이 없고, 술을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가벼운 마음고생은 있었지만 30년이 넘는 결혼생활동안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 준 사람이었다. 나는 그 힘으로 더 크게 성장했고, 많은 것들을 이루며 살아왔다. 이것이 가족이고 사랑이다. 나는 엄마와 남편의 사랑을 먹으며 성장했고, 늘 든든했다. 

 

내가 암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내가 죽는 것은 슬프지 않았으나 홀로 남겨질 남편이 가여워 한없이 울었었다. 항암을 하면서 힘들었지만 남편에게 미안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배우자가 아프면 상대 배우자가 보살펴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입장이 바뀌어도 나는 내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봤을 테니까. 그런데 어느 날 시누이가 내게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을 일깨워주었다. 참 슬펐다. 그 감정은 나를 죽고 싶게 만들었다. 남편이 아무 생각 없이 나에게 해줄 것을 덤덤히 해줄 때는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이 솟아나고 살고 싶었는데, 시누이가 미안해해야 한다는 마음을 인식시켜 준 후, 내가 죽어 없어져야 하는 존재로 느껴지며 참 힘들었다. 하루정도 눈물을 흘리며 사색한 결과 그녀의 말이 참으로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녀와 마음으로 절연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아닌 남편이 아플 수도 있을 그날, 나는 내 남편을 사랑으로 돌볼 사람임을 알기에, 나의 건강치 못함이 전혀 미안하지 않았고, 우리의 사랑으로 무엇이든지 이겨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 믿음은 우리 엄마에게, 그리고 우리 남편에게 절대적인 믿음이다. 

 

나는 이 믿음을 이번 가족 모임에서 이야기할 생각이다. 우리는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 네 식구가 서로의 장점은 칭찬해 주고, 단점은 이미 스스로가 더 잘 알터이니 굳이 드러내지 말고, 나머지 세 사람이 보듬어 안으며 채워주자고. 시간이 흘러 나중에는 그 단점이 오히려 장점일 수도 있다고. 그렇게 서로를 큰 사람으로 키워주며 사랑으로 채워가자고. 그 사랑은 믿음이 되어서 이 가족 안에서는 늘 편안하고 든든한 마음이 들 수 있도록 하자고. 누군가 아파도, 누군가 실수해도 내치지 않고, 사랑으로 그 상처를 안아줄 거라고 믿음이 되는 가족이 되어주자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가 먼저 앞장서서 많이 사랑해 줄 거라고.

 

이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양해를 구하고 내 이야기를 찬찬히 잘해나갈 거다. 이 마음이 남편에게, 아들에게, 며느리에게 잘 전달되어서 앞으로 우리 가족이 서로 믿음으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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