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니 한 해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지인들에게 연말연시 문자를 보낼까... 하다가, 문득 누군가 나에게 먼저 보낸다면 그에 대한 답장이나 보내주어야 하고 말았다.
예전의 나라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이에게 문자를 보냈을 테다. 문자를 받은 이들은 그에 대한 답을 보내오고 그렇게 서로 안부를 나누었더랬다. 그러다 문득 왜 나만 먼저 보내야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었고, 내가 보내지 않으면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기로 했었다. 그랬더니 아주 적은 소수만이 내게 먼저 안부 문자를 보내왔다. 내게 문자를 먼저 보내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적어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다. 누군가 먼저 안부를 전하면 고마운 마음으로 답장을 하면 그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고 있다.
그때부터다. 그때부터 나도 지인들에게 연말 안부문자 보내기를 하지않았다.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연말만 되면 꾸준히 안부문자를 보내오는 분이 계시다. 긴 장문의 글이 도착하는데, 그다지 반갑지 않다. 나만을 향한 그의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일기가 전달된 느낌이다. 딱 보아도 나에게만 보낸 문자가 아닌, 모두에게 공통으로 쓴 문자임을 알게 하는 안부. 이것은 나의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닌,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것임에 불과한 것임을 뻔히 알게 한다. 너무 길어서 대충 읽고, 어떤 때는 답장도 하지 않는다. 이런 문자는 참 헛된 것 같다. 1년간 아무 연락도 없이 남처럼 살다가, 단 한번 오는 자신의 일기 안부. 참 의미 없지 않은가! 그래도 나를 기억하며 보냈다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처음 몇 번에 불과했다. 그 이후로는 그저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임을 더욱 인식시켜 주는 느낌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으로 인식되느니, 차라리 서서히 잊혀 진 존재가 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1년에 한 번도 만나지 않을 사이라면...
물론 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나열하고, 조금은 문장을 달리해서 보내곤 했었다. 그러나 나만의 열렬한 짝사랑 같은 그 느낌이 참 싫었다. 자주 보는이들은 자주 보니 되었고, 어쩌다 보는 이들은 내가 생각날 때 전화 걸어 목소리로 안부를 묻고, 좋은 일은 축하해 주고, 나쁜 일은 같이 아파하며 나누는 것이 더 나았다. 더 이상 연말 안부문자를 굳이 안 보내게 된 사연은 이렇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약 2년에 걸쳐서 친한 동생이 계속 마음에 걸리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참 강한 성격이다. 말투도 강해서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려다가도 툭 내뱉는 그녀의 말에 상처를 입곤 한다. 멀리도 해보았고, 가까이도 해보았다. 그녀의 강한 말이 나를 건드릴때 나도 힘 있게 밀어내도 보았다. 나만큼 그녀가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을 해보았음에도 여전히 그녀로부터 상처를 입는 것은 '나'인 것 같다. 물론 그녀가 상처 입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더 이상 상처받는 게 싫다는 것이다. 예전에 친했었다는 이유로 계속 친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세월 따라 그녀도 변했을 것이고, 나도 변했다. 서로의 삶의 방향이 달랐기에 우리는 평행선을 그렸을 수도 있고, 다른 방향을 보고 있을 수 있다. 나는 평행선이던지, 다른 방향이던지 서로를 이해해 줄 거라 믿었는데, 그녀의 퉁명함은 그 속이 어쩌든지 내게는 전혀 위로가 되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생채기를 내니 더 이상 고운 인연으로 이어가기는 힘들 거라는 걸 자꾸 깨닫게 된다.
그녀와 또 다른 두 명이 함께 있는 모임이 있다. 무슨 이유인지 이 모임도 불편하다. 내가 그 동생에 대한 감정이 이러하니 나머지 다른 두 명이 그녀와 결을 같이하면 마음이 좋지 않은가보다. 두 사람이 그녀를 칭찬하면 듣기 싫고, 그 칭찬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다. 질투일 수도 있다. 질투여도 나를 탓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내년부터 두 달에 한 번 보던 것을 석 달에 한 번 보자고 했다. 덜 보면 덜 아플 거 같아서, 덜 보면 내 마음에 상처를 덜 입힐 거 같아서... 내속이 좁아서 발생된 감정이라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넓어지기를 바랄 것이고, 그녀와 나의 감정의 골이 있다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둘 것이고, 그녀의 삶과 내 삶의 결이 달라서 그런 거라면 더더욱 건드리지 않은 채 놓아둘 생각이다.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도 해보았지만, 우리에게 그런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가끔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안부를 묻는 나에게 느껴지는 거리감을 생각해 보면 굳이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느껴지지도 않는다. 나는 충분히 할 만큼 했다.
사람들과의 인연이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사람에게 내 마음을 온전히 줄줄도 아는 '나'이기도 하기에 사람에게서 상처를 쉽게 입는 것도 잘 안다. 그렇다면 나와 같은 결을 가진 사람을 만나 서로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지 느껴주고, 느낌을 받을 때 행복해진다. 사람과의 인연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방관하며 최선을 다하지만 끝나면 끝나려니 하는 사람과 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겪어보니 다르더라. 자신이 마치 이 세상 달관한 사람처럼 이러면 어떠하리 저러면 어떠하리 하면서 큰 틀에서 보는 듯 말하지만, 더 속이 좁았고, 사람을 먼저 챙기지도 못했다. 네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오니 내가 저렇게 받아준다는 식의 태도까지 보였다. 살가운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을 자신의 성격 탓으로 돌렸지만,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할 사람에게 그녀가 과연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또 그건 아닐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이 다름이 느껴진다. 섬세함이 없다. 따뜻함이 없다. 그게 그녀의 본성이라면 인정한다. 그러나 나와 맞지 않음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그녀를 더 이상 가까이하지 않기로 한 이유다. 내가 아프니까. 적당한 선을 긋기로 했다. 그제 퇴근길,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는 마음이 잠시 들었으나 그 마음을 접은 이유다. 퉁명스러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 예상되었고, 전화를 끊으며 씁쓸해할 내 모습이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의 우정전선에 이상무!'라고 외칠 수 있겠는가! 없다고 본다. 사람은 내 말이 상대방에게 스며드는 느낌을 받을 때 위로를 받고, 따뜻한 말 한마디에 힘을 낸다. 내 말이 겉돌고, 내 말이 걷어 차이는데 어떻게 위로를 받고, 힘이 나겠는가! 오히려 좌절감만 크고, 상실감만 느낄 것이다. 이런 사람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그녀를 생각할때마다 죄책감까지 함께 올라왔다. 이 감정이 참 무거웠다. 오래도록 친구처럼 잘 지내왔는데, 그녀가 나에게 참 잘했었는데... 하면서 나를 자책했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맞을 수도 있다.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가 아프면 안 된다는 것! 내가 상처받으면 안 된다는 것! 좋은 사람들 만나서 좋은 기운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살아도 힘든 세상인데, 만나서 불편한 만남을 이어갈 이유가 없다. 한 해가 저무는 지금, 나의 불편함을 내려놓을 이유를 찾아 쓰고 있는 중이다. 내년을 편하게 보내고 싶어서가 그 이유다.
내년엔 내 목표만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영어공부!! 오직 이것만이 24년의 목표다. 사람들은 토요일에만 만날 생각이고, 남편과의 여행을 제외한(가족모임) 모든 모임은 다 줄일 것이다. 사람들은 잠시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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