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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 읽기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강 용수 -

by 짱2 2024. 1. 6.

집에 2001년 발행된 '쇼펜하우어의 지혜'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정확하게는 '번뇌와 고독에 빠진 이를 위한 쇼펜하우어의 지혜'이다. 지혜 모음집의 책들이 그러하듯이 참 많은 지혜들이 어록으로 남겨져 있으니, 너무 많으면 고르지 못하는 것처럼 크게 와닿은 부분 없이 대충 읽었었지 싶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이 책이 필요 없을 듯해서 책 정리하는 날 사라질 뻔했었다. 그런데 왠지 나를 주춤하게 만들었던 것은 내가 이 책을 정독하지 않았던 느낌이 들었고, 다시 한번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더랬다. 그렇게 버리지도 못하고, 읽지도 않은 채 책꽂이에 꽂혀 있었는데,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라는 책이 유튜브에서 계속 알고리즘을 타고 올라왔다. 뿐만 아니라 쇼펜하우어의 지혜를 다룬 여러 종류의 영상도 올라왔다. 이것이 나를 자극시켰고, 결국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 덕분에 아마도 집에 있는 '쇼펜하우어의 지혜'를 하루에 한 두 페이지씩 읽게 될 것 같다. 다행일까? 쇼펜하우어의 지혜를 놓치지 않게 된 것은...

 

 

 

타고난 성격을 교육이나 자기 성찰을 통해 바꾸려고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타고난 기질에 의해서만 행복과 불행이 정해진다면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인생은 바뀔 수 없다는 슬픈 결론에 이른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오랜 성찰을 통해 자신의 성격을 개선할 수 있다.

 

서정주 시인이 그랬던가?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바꾸어 말했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독서였다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부모님에게서 태어났고, 언니나 오빠가 있어서 나를 이끌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누구도 나에게 공부하라고 하지 않았고, 누구도 나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지 않았다. 나의 사고를 바꿔줄 그 누구도 만나지 못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가 사 온 한 질의 계몽사 위인전집을 미친 듯이 읽어제끼며 나의 독서욕을 자극했다.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었고, 내 안의 무엇이 나를 일깨웠는지 일기도 썼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성장을 했던 것 같다. 부모님의 가난과 무지함은 여전하지만, 나는 계속 공부했고, 나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나는 누구인가'는 앞으로도 계속 오래도록 성찰의 대상일듯하다. 아마도 개선해야 할 것들이 많은 탓이리라.

 

인생은 어떻게든 끝마쳐야 하는 과제와 같다.

그러므로 견뎌 내는 것은 그 자체로 멋지다.

 

돌아보면 삶은 '견딤'의 연속인 것 같다. 암수술 후, 그 많은 통증도 견뎌냈고, 대체로 원만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결혼생활도 견디지 않았다면 결코 원만했다고 말할 수 없을 테다. 작년 한 해 동안 원장의 대단한 성질도 다 견뎌내어 지금에 이르렀으니 견디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는 게 삶인 것 같다. 

수능영어를 가르치는 강사의 오리엔테이션에서 그냥 해보자고 하는 말을 듣고 참 가슴에 와닿았다. 힘든 것 다 아는데, '해야 한다, 해내야 한다' 하는 말보다 그냥 해보자라고 하는 말이 더 현실적이고 맞는 말 같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이리라. 꼭 견뎌내겠다는 의욕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다 보면 견뎌낸 것이다. 독한 마음보다는 그냥 해내는 것. 그것이 적절한 삶의 태도일듯하다. 

 

정신력이 압도적으로 발달한 사람은 따분함을 모르며 늘 새로운 관심과 풍부한 생각에 활기차고 의미 있는 생활을 즐긴다. 더 배우고 연구하고 생각하려는 욕구가 강할수록 여가 시간에 혼자서도 맘껏 자유를 즐길 수 있다.

인간이 인생을 향유하는 방식, 즐기는 것은 각자의 취향과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은 여가에 있다'라고 말하고, 소크라테스가 '여가를 인간의 소유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칭송'했는데, 행복한 시간은 노동하지 않는 자유 시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행복한 삶이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유능함을 펼칠 수 있는 삶'의 의미는 세 가지 향유 방식 가운데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의 탁월함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행복의 조건이다. 

가장 행복한 삶은 철학자의 삶이다. 즉 지적인 능력이 풍부하여 스스로 사색하면서 판단하는 군주같이 '유아독존' 같은 삶을 살아가면서 이 세상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최고의 행복을 주는 철학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데 매우 중요하다. 

* 인생을 향유하는 방식: 1. 재생적 즐거움(먹고 마시는 일, 수면)  2. 육체적 즐거움(산책, 운동, 전쟁) 3. 정신적 즐거움(사유, 독서, 예술, 명상, 철학)

 

이렇게 책 리뷰를 하고, 일기를 쓰는 시간은 나에게 사색의 시간이다. 이 시간이 주는 즐거움은 정말 크다. 바쁜 삶에 쫓겨서 이런 시간을 갖지 못하면 충만한 느낌이 들지 않아 서성이게 된다. 사람들은 빠르게 글을 쓸 수 있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시간, 나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이 시간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인데 빨리 써 내려가는 것은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예전에는 술 마시는 시간으로, 이 책에서 말하는 재생적 즐거움에 빠져서 정신적 즐거움을 많이 놓쳤더랬다. 정신적 즐거움을 가질 때 행복감을 느끼는 내가 이런 시간을 갖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일에 빠져있었으니 얼마나 우울한 삶이었겠는가! 결국은 '암'이라는 '벌'을 받고서야 돌아왔으니, 돌아보면 40년이라는 세월을 돌아온 셈이다. 허망한 세월이 될 수도 있었는데, 성장을 갈망하는 내 안의 것들이 그저 먹고 마시는 일에만 빠져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아서 꾸준히 공부하고 독서하는 시간도 취했음을 다행이라 여긴다. 

 

무게 중심이 바깥에 있는 사람은 출세, 승진, 명예, 부 등을 추구하며 각족 모임 등에 빠져서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무게 중심이 안에 있는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예술, 시와 문학, 철학 등을 가까이하게 된다. 이런 정신적인 즐거움은 속물이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줄이고 늘 책을 가까이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를 권한다. 기회가 되면 미술전시회나 연주회를 찾아서 최고의 예술가가 만들어 낸 작품을 감상하며 인생의 고뇌에서 벗어나는 시간도 가지면 좋다. 혼자서 산행을 하며 자신을 만나는 훈련도 해야 된다. 고독은 나의 진정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벗이다. 마흔부터 어느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잔잔함을 스스로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잔잔함... 참 멋지다. 잔잔함 마음으로 살아야지. 

어릴 때부터 예쁘게 살자고 다짐했었다. 마음도 모습도 삶도 모두 예쁘게 사는 것이 목표였다. 내가 보아도, 남이 보아도 예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마음은 여전하다. 다만 이제는 나이가 들었으니 단어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곱게 살자'로 바꾸었다. '예쁘게'가 '곱게'로 바뀌었다. 고운 삶을 살고 싶다. 고운 사람이 되고 싶다. 

예전에는 값비싼 뮤지컬을 많이 봤다. 후회는 없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젠 감흥이 없다. 화려하긴 한데, 마음을 울리는 무엇이 없다. 그러면서 차츰 오페라가 좋아졌고, 예전부터 좋아했던 발레공연도 보게 되었고,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국악이나 한국무용은 여전히 좋아하고 기회가 되면 보러 가려한다. 음악과 공연은 많이 가까워졌지만 미술은 아직도 어렵다. 가까워지려 노력 중이다. 많은 것들을 다 섭렵할 수는 없겠지만 가까이 접해보며 나에게 다가오는 그 느낌들을 느끼는 것도 행복하다. 

 

중요한 책은 무엇이든 즉시 두 번 읽는 것이 좋다. 그래야 사물의 맥락을 보다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끝을 알고 있으면 처음 부분을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작품이란 어떤 정신의 진수'인데 몇 천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정신의 위대함을 경험함으로써 정신적인 교양이 높아져야 독서를 통해서 큰 즐거움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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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생각을 영글게 하는 건 다독이 아니라 숙독이며, 독서를 통해 받아들인 타인의 사상을 자신의 사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오랜 사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으로 그 사람이 걸어간 길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길을 걸으며 무엇을 봤는지 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눈으로 봐야 한다.

 

좋은 책은 여러 번 읽게 마련인데, 예전의 나는 더 많은 책을 읽기 위해 그렇게 하지 못했었다. 나중에 봐야지 하면서도 시간이 도무지 생기지 않기도 했었다. 그런데 즉시 두 번 읽으라니, 참 멋지다. 맞는 말이다. 한참 후에 읽으면 또다시 새로운 책처럼 읽히기도 하니 말이다. 많이 읽는 것보다 정독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고 내 삶에 반영하는 것이 더 현명하리라.

 

마음이 춥다고 느껴 타인의 온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내면의 공허, 의식의 빈약, 정신의 빈곤' 때문에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한다. 유유상종하며 여흥과 오락을 추구하는데, 처음에는 관능적 향락과 각종 즐거움을 맛보려고 하다가 결국 방탕한 생활을 좇게 된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사교의 욕망이 생기는 것은 자신이 불행하다는 반증이다. 타인을 통해 얻는 가치는 행복의 본질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생긴다.

 

마음이 허했더랬다. 그 마음을 달래려고 술을 마셨고, 사람들과 어울렸더랬다. 그리곤 병을 얻었다. 왜 그랬을까? 작가가 말하는 대로 내면의 공허 때문이었고, 의식의 박약 때문이었고, 정신의 빈곤 때문이었다. 인정한다. 남편도 있었고, 아이도 있었다. 부모님도 계셨고, 공부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허전했고 외로웠다. 

암수술 후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 마시는 행동은 끝나버렸다. 나의 삶은 다른 삶으로 변화되었고, 그렇게 힘들었던 외로움, 허전함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내면의 공허가 채워진 건가? 빈약한 의식이 채워지고 있는 중인가 보다.

 

쇼펜하우어는 고독과 사교성을 대립하는 것으로 본다. 지적인 능력이 클수록 혼자 지내려는 경향이 강하고 지적 능력이 떨어질수록 어울리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독은 위대한 사람의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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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며, 나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가장 행복할 수 있다. 그럴수록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에게 기대할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드물다.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굳이 다른 사람과 만나 희생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이유는 고독을 견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독한 시간을 생산적으로 잘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력, 내면의 공허, 권태감 때문이다. 이럴 때 남과 어울리는 것은 자신의 고독을 혼자 대면하기 두려워 비겁하게 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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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생각과 지혜 등을 풍부하게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고독은 '솔로'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행복을 바깥에서 찾지 않고 자신의 안에서 얻기 위한 중요한 덕목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그 자신일 수 있다. 

그러므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장을 쓰면서, 출퇴근 시 느껴지는 외로움, 심심함에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 떠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수다 후의 허전함과 후회로 쓰린 마음이 되곤 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반복하고 있는중었는데, 문득 그에 대한 답도 떠올랐다. 외로움이 느껴지면 외우려고 틀어놓은 영어문장이 들리지도 않는다. 그럴 때는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큰소리로 틀어놓고 차라리 그 외로움을 온전히 느끼면 되겠다. 와~ 멋지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이젠 사람들에게 전화해 더욱 외로워지는 그 마음에서 헤어 나올 수 있겠다.

 

미래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으로 급히 쫓아가는 반면에 현재는 거들떠보지도 즐기지도 않고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만이 진실하고 현실적이고 확실한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음을 참 다행으로 여기며 살았으나, 미래가 나의 현재를 망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네. 퓨처셀프만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았는지. 물론 현재의 삶에 충실하게 살고 있지만,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공부를 하다가 문득 이것만 내려놓으면 편하게 취미생활하면서 운동이나 하면서 살 텐데..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미래의 내 꿈을 위해 되지도 않는 체력으로 열공하는 내 모습이 처절하고 안타깝다. 아마도 지인들이 이런 나를 말리고 싶어 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마음을 죽도록 싫어했다. 왜냐하면 내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했으니. 물론 그들의 마음에 시기나 질투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 때문에 건강보다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난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도 올 1월 한 달의 내 화두가 될 것이다. 미래의 나를 끌어와 지금의 내가 해야 할 것들에 휘둘리는 현재가 과연 옳은 것인지. 퓨처셀프 때문에 현재의 내가 희생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남의 시선에 갇혀 살면 행복해질 수 없다. 타인의 평가에는 시샘, 질투 등 부정적인 내용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타인의 평가의 틀을 과감히 깰 필요가 있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릴 때 떠올려 보라.

'너라고 나보다 낫을 게 없다?'

 

나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는 타인의 마음은 피상적이며, 천박하고, 왜곡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대 이상의 좋은 평가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타인은 정작 나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타인을 평가하는 방식을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제삼자의 판단은 객관적이지 않다. 특히 칭찬이 아니라 비난인 경우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보면 무식하고, 편견이 있고 좁고 빈약한 경우도 있다. 그런 평가는 아예 무시하는 것이 더 낫다. 

 

너라고 나보다 낫을 게 없다! 이 말이 다했다. 

 

 

 

우리 인생의 첫 40년은 본문이고, 그다음 30년은 그 본문에 대한 주석이다.

 

인격이 관점을 결정하고 관점이 세계를 결정한다.

 

관점이 빈약하면 세계는 진부하거나 하찮은 것이 되기도 하고, 관점이 풍부하면 세계는 재미있거나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행복은 지위와 부의 차이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날 수 있지만, 행복한 감정이 일어나는 곳은 내면의 의식이다. 우리의 행복이 우리를 이루는 것, 즉 우리의 인격에 얼마나 좌우되는지 분명해진다.

 

내가 깨달은 것만큼이 나의 세계다.

 

현명하게 품격을 쌓고 교양 있게 나이가 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독서와 사색, 그리고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통찰이 필요하다.

 

짧은 글들이 임팩트 있게 다가온다.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휴식과 독서, 사색이 아닐지... 무거운 삶의 무게가 나를 압박하도록 내버려 두는 죗값을 받게 되지는 않을는지. 모두가 나에게 평온함을 주는데, 스스로 무거움을 주는 나라는 사람은 뭘까? 현재의 내가 힘들면 미래의 내가 성공하는 것이라고 외치며 오늘을 힘들게 사는 것이 과연 현명한 걸까? 나의 관점을 넓히고 풍부하게 만들어야 하리라.

 

깨달음의 시간이 오면 지금의 고민이 해결될까? 

 

그런데,

그런데,

공부가 취미인 것을, 공부해서 영어를 잘하고 싶고, 영어로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고 싶고, 아이들 가르치는데도 막힘이 없이 하고 싶은 것을 어쩌랴! 공부하는 시간이 재미있는 것을 말이다. 

 

어제 출근하면서 지금의 내 공부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실력보다 난이도가 높은 것이 문제이지는 않을는지. 재미있게 공부하면서 나의 만족도도 높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지. 

 

쇼펜하우어의 지혜와 작가의 글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오늘이다. 각각의 글마다 나의 생각이 떠올라 많은 글들이 쓰여졌네. 시간도 꽤 걸렸구나.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되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영어공부와 내 삶의 조화는 잘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