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의 퇴근길은 참 많이 무거웠다. 내게 비전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비전 없는 삶이 기본값인지, 그걸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하는 무거움이 나를 한없이 가라앉히는 퇴근길이었다. 이 느낌, 처음 아니다, 알아차리면서 7주 전의 똑같은 감정이 있었음을 다이어리를 통해 확인했고, 확실하게 기록까지 해놓지는 않았으나 줄곧 내게 찾아왔던 그 느낌을 머리로, 가슴으로, 마음으로, 온몸으로 느꼈다. 이 학원을 다닌 후 자주 찾아왔던 그 쓸쓸함을, 이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내 감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쓸쓸함, 그 허전함은 알코올중독에 빠졌던 그때의 느낌인데, 암환자가 된 이후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있는데, 무엇이 나를 같은 감정으로 몰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나의 유약함, 그저 나의 외로움 타는 근성으로 몰아갔다. 그것은 결국 해결책이 없음을 의미하기도 하니, 나는 더욱 좌절감으로 빠져들었다. 나라는 사람을 탓했다. 어버이로부터 아니 조상 대대로 내리 물림 된 깊은 우울감이라고 뵙지도 못한 조상 탓까지 했더랬다.
수요일 오후부터 시작된 쓸쓸함을 다음날까지 끌고가며 깊은 사색으로 빠져들었다. 운전을 하면서, 밥을 먹으면서, 세수를 하고 양치하면서, 설거지하면서, 나의 육체가 온전히 일에 몰입하는 그 시간까지도 계속 사색했다. 쓸쓸함의 원인은 뭘까? 그리고 왜 주기적으로 찾아와 나를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마는가?
비전!!!
아! 비전이었다. 꿈이었다. 희망이었다. 내 삶의 빛이었다.
5년 전, 암진단을 받은 후 나에겐 죽음이라는 비전이 있었다. 죽음이라는 절망을 넘어 희망이 있었다. 내 삶을 정리하고, 가족을 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시키고, 멀리 떠날 마음을 먹고, 아픔에 굴하지 않을 굳셈을 장착할 비전이 생겼더랬다. 그렇게 5년이 흘렀고, 난 죽음을 잊었다. 죽음이 날 떠난 것인지, 내가 죽음을 떠나보낸 것인지,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죽음은 내게서 멀리 사라졌다. 어느 날 '짜잔~~'하고 다시 나타난다면 나는 또다시 죽음이라는 비전을 다시 앞에 내세우며 그에 맞는 목표를 세우겠지.
그런데 지난 수요일, 나는 비전을 잃었다. 그리고 흔들렸다. 그렇다면 그것이 결과라면 원인은 무엇일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그 일이 내게서 비전을 빼앗았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꿈이 사라졌다. 빛이 사그라 들었다. 왜? 원장이 내게 그런 비전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 일차원적인 것이라면, 나는 다른 것에서 찾으면 되는데, 왜?
나의 시간, 나의 열정을 이 일에 투자하는 것이 재미가 없는 것이 원인이었다. 아까운것이다. 너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너의 열정이 얼마나 크다고 투자니 뭐니 하느냐고? 남들 다 그렇게 산다고?? 나에게 내 시간은 누구의 시간보다 소중하고, 내 열정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 나는 내 시간과 내 열정을 투자해서 그 가치가 어떤 것으로든 결과로써 보여지는 삶을 살고 싶다. 원장처럼 보잘것없는 이의 학원을 잘되게 해 주기 위해서 투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그 학원을 나와서 다른 일을 하면 되지 않는가! 맞다! 그러고 싶다. 그러나 60을 바라보는 나에게 일자리를 내줄 곳이 있을까? 다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합격을 기다리고, 또 적응의 시간을 거치고... 그러나 이것도 보장된 것이라면 해보겠지만,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것임을 알기에 쉽지 않다.
그래서 어쩌라는건데?
우선은 내 쓸쓸함의 원인을 찾았음에 환희의 물개박수를 친다. 어느 날, 이와 같은 감정이 찾아왔을 때, 원인 모를 감정이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원인 찾기에 급급해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 이 감정, 그거잖아. 비전 없다고 생각될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그 느낌이잖아. 그러니 다시 너의 비전을 생각해. 너의 비전은 학원이 아닌 다른 것이었잖아. 이거, 이거, 이거잖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두 번째로는 다시는 학원에서 나의 비전을 찾지 않기로 했다. 1년간 당하고, 느꼈고, 알았으니까, 이젠 다른 곳에서 나의 비전을 찾기로 했다. 물론 '나만의 공부방'을 꿈꾸었었다. 그리고 지금도 100%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영어공부는 기본값으로 가져갈 것이고, 공부방은 '덤'이라고 했지 않은가! 2년 후일수도, 3년 후일수도, 5년 후일수도 있다. 내 나이 60이 되어서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알파영어학원장의 말이 무조건 맞지는 않다. 그녀는 학원을 시작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록 했지만, 나는 실력으로나 경제력으로나 아직 부족하다. 그런 사람이 하루빨리 시작하면 뭘 하겠는가! 느리게 갈 수도 있는 것이고, 젊은 사람들과 다른 것으로 승부를 걸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늘 한결같은 공식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니까.
원장의 직원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할 것이다. 나에겐 월급이 필요하고, 그녀에겐 직원이 필요하니, 우리 두 사람은 필요조건으로 당분간은 같이 갈 것이다. 그러나 이 학원을 오면서 품었던 그녀에 대한 애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이 학원에서 불태우려 했던 나의 열정은 이미 사그라들었고, 이 학원에서 꿈꾸었던 희망은 방향을 달리했다. 그저 사무적으로 내 할 일을 하면 그뿐이라고 원장은 늘 나에게 온몸으로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내가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돋움의 발판으로써 이 학원을 이용하면 되는 것이고, 적당한 시기가 되면 떠나면 될 것이다.
남편에게, 지인에게, 이런 내 마음을 이야기하며 쓸쓸함이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원장과 나를 알고 있는 또 다른 지인이 나에게 힘들지 않으냐며 나의 마음을 풀어주겠다고 설 지나서 우리 동네로 오겠단다. 10개 월여 전, 너무 힘들어 그에게 전화해서 하소연했을 때,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라고 했던 사람이었는데, 나는 23년까지만 하겠다고 했었고, 그 23년이 지나 24년의 1월도 보냈다. 이젠 지랄 맞은 원장이 더 이상 내게 그런 무례함을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나의 업무 능력이 상당히 좋아져 원장은 아마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대신할 사람을 찾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학원 일은 이제 편해졌고, 앞으로 월급이 오르기를 바라지만 않는다면 나는 담담하게 이 일을 해나갈 것이다.
상황이야 언제든 바뀔 수 있으나, 당장의 기준으로는 앞으로 2년은 계속 일할 생각이고,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찾을 것이다. 나의 시간과 열정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일을 찾아서, 그리고 그 일에 내 비전을 갖고, 능동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할 것이다. 나는 도전적인 사람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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