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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의자, 자전거, 전자 피아노

by 짱2 2024. 4. 9.

지난주 월요일, 원장의 히스테리가 또 발발(?)했다. 작년의 강도에 비하면 약해졌다지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던 다짐이 있은 후에 나온 히스테리이니 나도 만만치 않게 짜증이 일고 화가 났다. 더이상의 참을성은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니 나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고, 대응을 했다. 그녀는 조금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고유의 그 성질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니 계속되는 잔소리와 한숨에 나의 한계는 극에 달했고,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확실히 했고, 단 1%의 가능성마저도 접었다. 다만 퇴직금을 받은 이후에 그만두겠다는 말을 해야 한다고 이성적인 판단을 했을 뿐이다.

 

 

 

생각보다 빨리 월급과 함께 퇴직금이 나왔다. 지난 목요일, 원래의 월급날보다 6일 빨리, 보통때보다 이틀정도 빨리 퇴직금이 이체되었다. 그날 원장이 왜 그리 기운이 없었는지는 다음날에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돈이 없었다. 나에게 월급과 퇴직금을 보낸 후 텅 비어버린 통장이 그녀를 슬프게 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녀의 통장에서 내 월급만 나갔을 리는 없겠지만, 텅 비어버린 통장의 허전함이 그녀를 기운 빠지게 한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또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만둔다는 말을 어떻게 하지?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퇴직금을 받은 다음날인 금요일,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의 퇴사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정말 힘들이지 않고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고 인수인계가 끝나야 하겠지만, 너무도 쉽게 퇴사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덩실덩실 춤을 출 지경이었다. 다만 나의 퇴사는 나만의 희망이 아니라 그녀의 희망일 수도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매달 나가는 나의 월급이 그녀에게 부담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땐 그보다 적은 월급을 주겠다는 그녀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그만두기를 나보다도 더 간절히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금요일의 퇴사 확정 이후, 학원에서의 나의 일은 너무 편해졌다. 그만둘 직원을 괴롭힐 이유도 없고, 나도 이제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스트레스가 훨씬 적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퇴사 이후 무엇을 할지 벌써부터 계획을 짜고 꿈에 부풀었다. 빨리 그만두면 빨리 그만둘수록 나의 계획을 실천에 옮길 수 있어서 기쁘고, 또 직원 구하는 것이 더뎌져 학원에 좀 더 머물게 된다면 한 달 치 월급이라도 더 받게 될 테니, 그 돈으로 남편과 여행 한 번 더 갈 수 있어 또 좋다. 

 

퇴사를 확정한 후, 구입할 물건이 생겼다. 첫째는 의자이고, 둘째는 자전거, 셋째는 전자피아노이다. 이 세가지 것이 필요한 이유는 이러하다.

 

학원을 그만두면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할 것이고, 책도 더 많이 읽을 생각이다. 캘리그래피도 강의를 들으러 갈 생각을 했었는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유튜브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미 배웠던 것들이니 나의 연습만이 필요할 뿐이다. 물론 선생님의 지도편달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다시 다니면 된다. 공부하고 책 읽으려면 의자가 중요한데, 지금 쓰고 있는 의자는 너무 오래되어서 한쪽으로 기울었고, 목받침이 없어서 잠시 눈 붙이기 힘들어 새 의자를 구입하려고 한다. 

 

학원으로 출퇴근 하기 위해 구입한 차를 팔 생각이다. 할부금과 차량유지비로 한 달에 50만 원의 비용이 드는 이 차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전철도 공짜로 타는 나인데, 걷는 것이 운동이라 생각하며 뚜벅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세월이 50면이 넘는데 일하지 않는 나에게 차는 사치품 그 이상이다. 불필요한 물건일 뿐이다. 다만 뚜벅이로 다녀야 할 곳이 있고, 좀 멀리 있는 도서관에 수시로 드나들며 책을 읽고, 매일 재래시장에 들러 건강한 재료를 사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면 자전거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 멀리 한강까지 달려보는 것도 좋을 거 같고, 걷기보다 훨씬 신날 거 같다.

 

무슨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50이 넘으면 피아노를 배우리라 생각했었는데, 50이 되던 그해에 암환자가 되었고, 항암이 끝나자마자 다시 학원으로 복귀하면서 피아노를 잊어버렸더랬다. 그런데 우연히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라는 책과 동영상을 보게 되었고, 집에서 얼마든지 피아노를 배울 수 있을 거 같았다. 물론 이 부분도 때가 되면 레슨을 받을 생각이지만, 우선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토록 바라던 피아노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집도 좁은데 무슨 피아노냐 싶었으나 전자피아노가 딱~ 좋았다. 

 

이렇게 의자와 자전거와 피아노를 나의 퇴사 기념으로 구입할 생각이고, 나의 노후는 이것들을 즐기며 살것이다. 또 다른 일거리는 애써 찾지 않을 생각이고, 정말 자연스럽게 내게 일이 주어진다면 그리고 그 일이 정말 마음에 든다면 그때 심사숙고해서 할 생각이다. 그만큼 지금의 나는 내 남은 삶을 즐기며 살고 싶고, 문화 예술을 누리고 싶다. 지인의 말대로 배 터지게 책 읽고, 음악에 흠뻑 빠져서, 제대로 된 예술을 만끽하며 살고 싶다. 여유롭게 사람들 만나고, 깊은 사색의 시간도 충분히 갖고 싶다. 햇살의 따사로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의 느낌도, 꽃과 풀의 향기로움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살고 싶다. 이 좋은 세상을 원장의 좋지 않은 기운에 휩싸여 보내고 싶지 않다. 아름답게 살고 싶다. 평화롭게 살고 싶다. 그리고 그건 지금부터 시작이다. 아니 오늘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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