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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 읽기

잘되는 집들의 비밀 - 정 희숙 -

by 짱2 2024. 5. 17.

나이가 들수록 나의 미니멀한 삶의 반대인 맥시멀한 삶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취직을 한 후 분가해 나갔고, 남편과 둘만 사는 스물세 평의 아파트 공간이 충분히 넓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만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한 살림살이의 양은 대가족의 그것과 다름없다. 풍성한 먹을거리로 가득한 냉장고와 냉동고, 사계절 옷들로 넘쳐나는 두 개의 장롱, 베란다 수납창고를 비롯한 곳곳의 수납장안을 가득 메운 온갖 살림살이, 싱크대와 뒷베란다의 온갖 주방도구들... 굉장한 맥시멀리즘이다. 나름대로 정리한다고 하지만 결국 '버림'이 아닌 '옮김'으로 끝나는 정리 기술!!! 

 

급기야 나는 내 나름의 방법을 고안해냈다. 내가 환갑이 될 때까지 미니멀한 삶을 연습하자. 그리고 '버림'이나 '줄임'이 아닌 '가진 것 충분히 활용'과 '안 사기'를 실천하자고. 그렇다. 나는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면서 갑작스러운 버리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차차 습관을 만들어가면 될 것이고, 나이가 들수록 욕심도 버려질 거라 믿는다. 그래서 익히 알고 있던 정희숙 님의 책을 선뜻 읽게 되었는데, 참 좋은 내용이기는 하지만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라는 느낌이 들어 조금 지루하기는 했다. 다만 내가 노년으로 접어들어가니, 노년의 이야기는 마음에 와닿았다.

 

 

 

 

 

 

노년의 정리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가 된다.

 

어떤 계기가 있지 않으면 정리는 쉽지 않다. 이사라던지, 가족 중의 누군가가 더 이상 함께 살지 않게 된다던지와 같은 기회가 생기지 않으면 굳이 정리를 하기는 어렵다. 내 나이가 어느 시점에 중년에서 노년으로 확~ 바뀌는 것도 아니니 노년을 위한 준비시기가 정해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부터 노년을 위한 정리를 조금씩 해보려고 마음먹었다. 하루에 한 군데씩, 생각날 때마다 정리를 해나가려고 한다. 큰 덩어리가 아닌, 서랍 하나, 냉장고 위칸 이런 식으로. 평생을 정리하며 살아야겠지만 우선 당장 생각한 기간은 환갑 때까지이다. 그러니 무척이나 긴 여정의 정리가 될 것이다. 이렇게 길게 잡은 이유는 내가 생각보다 물건에 대한 애정이 많고 미련도 많기 때문이다. 끊고 맺음이 어려운 성격이라 이것이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도 영향을 미칠 줄이야....  

 

아무튼 나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 노년을 위한 준비는 지금부터다.

 

 

 

서재를 정리하며 모두 하나씩만 남겼다. 책상 하나, 책장 하나, 의자 하나, 오래 써온 물건이라 윤기가 났다. 간결하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제 이곳은 미숙 님의 서재였다. 그녀는 이곳에서 좋아하는 책을 필사하고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생일 축하 엽서를 쓰고, 줌으로 온라인 독서 모임을 할 터였다. 미숙 님은 천천히 책을 하나하나 꺼내어 정돈하고는 다시 아름다운 햇살을 받으며 책장 위에 올려놓았다.

 

남편의 서재를 정리하며 모두 하나씩 남기고 버리는 미숙님의 이야기는 참 아름다웠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감명을 받은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오래 써서 반짝이는 윤기를 내는 물건 중 하나씩만 남기는 그녀. 얼마나 정이 들었을까. 남편에 대한 그리움의 부분은 또 얼마나 클까. 하지만 그녀는 이런 모든 감정도 예쁘게 접어서 정리했다. 그리고 그 공간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깔끔하게 탄생시켰다. 아름다운 햇살을 받는 서재의 모습이 영화처럼 그려졌다. 고운 모습의 미숙님도 그려졌다. 그리고 그 미숙님의 모습에 내 모습을 오버랩시켰다. 남편과 나, 둘 중의 누군가는 먼저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홀로 남은 이가 바로 '나' 일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눈물로 보낼 수는 없다. 남편을 너무나 사랑하고 남편이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는 맞이할 50%의 높은 확률의 미래다. 그때 나는 더욱더 미니멀한 삶을 살아야 할 테고, 더 아름답고 단단한 모습으로 살아야 할 테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부터 야무지게 준비해야 한다. 

 

'지금 죽어도 괜찮을 정도로 집을 정리하며 살고 있나요?' 

이 질문에 흔쾌히 '네. 그럼요!'라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나도 그렇다고 흔쾌히 대답할 수 없다. 아니 절대 대답할 수 없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끼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환갑까지는 미니멀한 삶을 연습한다고 했지만 그때가 되어서도 죽어도 괜찮을 정도는 아닐 거다. 아마도 내 나이 칠십쯤? 그때쯤엔 정말 최소한의 것들만 소유하고 싶다. 

 

우리가 소유한 물건이 빛날 때는 적절한 순간 제대로 쓰임을 해낼 때이다.

 

내 나이 칠십이 되었을 때, 내가 소유한 물건들이 제 쓰임을 제대로 해내는 그래서 그 물건들이 빛나고 나도 빛나는 그런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