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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편

당신의 그물 - 정 호승 -

by 짱2 2024. 7. 9.

당신의 그물이 때로는 오월의 바람으로 따스한 햇살로

장미와 모란과 수수꽃다리의 향기로 엮여 있어도

나는 지금까지 당신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당신이 아침 일찍 강가에 나와 나를 투망하는 순간

나는 해를 따라 힘차게 강물을 거슬러 올랐으며

때로는 바위틈과 수초 사이로 죄 많은 인생을 감추고

당신의 그물에 걸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왔다

 

비록 당신의 그물이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엮여 있다 할지라도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감사하다고 그물을 던져도

나는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

당신은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고

다시 나를 찾아와 그물을 던지는가

 

봄은 왔지만 아침은 오지 않고 밤은 깊어간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강가의 안개처럼 평화롭게 죽어갈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당신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되어 다시 살 수 있다면

내 기꺼이 당신의 그물에 걸려 파닥거리며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그동안 당신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고 도망쳐 온 것이 내 삶이라면

결국 당신의 그물에 걸려 파닥거리는 것이 내 죽음이라면

당신은 이제 그물에 걸린 죄 많은 나를 버리지는 말아야 한다

 

 

 

 

 

 

당신이 내게 주시는 그 사랑을 늘 가슴에 품고 살면서도

나 또한 당신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고 숨어드는 한 사람.

 

무엇이 두려울까?

당신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속에 섞이기 싫음,

바빠질 내 삶 속에서 나를 찾을 시간을 빼내지 못할 거 같은 두려움...

 

앞으로 몇 년만 기다려달라는 암묵적인 나만의 속삭임,

내 마음 알아줄 거라는 기이한 믿음.

 

당신이 계시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

그러나 분명 느껴지는 뭔지 모를 내 안의 그 무엇.

그것이 알고 싶어서라도 난 그물에 걸리고 싶은 한 사람.

언젠가는... 당신의 그물에 걸릴 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그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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