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나는 납치되었다
검은 승용차에서 내린 몇몇 사내들이
걸어가는 내 목덜미를 낚아채고
자동차 트렁크에 종이처럼 구겨 넣었다
야근을 하고 밤늦게 퇴근할 때도 나는 납치되었다
전동차가 승강장 안으로 들어오기도 전에
몇몇 사내들이 나를 끌고 수서역 터널 속으로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납치되는 나를 늘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가 납치되는데도 저항할 수가 없었다
길을 가다가도 지하철 승강장 입구에서도
납치되는 나를 물끄러미 구경만 하고 있었다
나는 왜 내가 매일 납치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디로 납치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튿날 해가 뜨면 오금동 골목 쓰레기 더미나
지하철 종착역 화장실에
손발이 묶인 채 버려져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하루는 그런 나를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경찰에 신고하려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내가 매일 나를 납치한다는 것을
납치되어야만 내가 매일 아버지라는 인간으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매일 아버지라는 인간으로 열심히 살아가려면
매일 납치되어야 한다니,
그에게 아버지로 살아가는 현실이 그토록 고달픈 것일까?
직장에 나가 일하고 돈을 버는 삶의 무게가 버거운 걸까?
유달리 힘겨워하는 시인의 성향인 걸까?
이 사회의 현실이 그런 걸까?
시인의 마음은 순수하고 고독할 거 같은데,
타협하지 못하는 어리석을 만큼 순수한 그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걸까?
이 세상의 모든 가장이(여자이기도 한) 납치되는 느낌으로 살아가는 세상인가?
내 남편을, 내 아들을 생각해 보면, 또 가장은 아니지만 일을 했었던 나를 생각하면
밥 벌어먹기 위해 애쓰는 삶 자체도 아름다운데...
그런데 시인은 퇴근 후의 삶도 납치라고 표현한다.
그에게 가정이라는 것도 자신에게 무거운 짐인 건가?
도대체 그에게 납치되지 않은 순수한 그 자신의 상태는 언제일까?
시인의 모습?
자연인이 되었을 때?
고달픈 직장일에서 빠져나와 편안하고 안락한 집으로 향하는 마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해 애썼던 하루를 위로받고
또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 안는 시간...
삶이 뭐 특별할까?
사랑으로 어우렁더우렁 얽혀가는 것이 삶이지...
너무 고고하게 살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아니 어쩌면 그 시를 쓰던 날의 시인의 삶이
참 힘들었던가 보다
아니 또 어쩌면 본인은 그러하지 않은데
우리네 소시민의 삶을 보듬고 싶은 시인의 마음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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