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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행복한 화이팅

by 짱2 2024. 8. 31.

'고명환'이라는 개그맨을 그저 이름만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가 사고로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었다는 사실도 시간이 많이 흐른 후, 그가 책을 낸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사람이 죽음을 코앞에 두고 다시 내 삶의 영역으로 되돌아왔을 때 그야말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자신이 가진 성격대로, 자신의 버릇대로, 습관대로, 하던 대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그러나 나도 죽음을 가까이 접한 후 달라졌고, 고명환도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러고 보니 단순히 죽음이 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닌 죽음으로 인해 책을 읽게 되고, 그 책이 사람을 변화시킨 거네.

 

 

 

어제 고명환 저자의 출판기념회에 당첨이 되어 다녀왔다. 그동안의 책은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었는데, 이번에는 책 세 권을 사면 밥도 주고 강의도 들을 수 있다고 하니,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신청을 했고, 어렵사리 당첨이 되었다.(어렵다는 표현을 쓴 건 한 번에 당첨이 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포기'후 내게 온 기회라... ㅎ) 즐거운 시간이었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역시 개그맨은 개그맨이구나. 그저 수줍어하면서 어렵사리 자신을 보여주는 여느 팬미팅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책을 많이 읽어서 탄탄해진 마인드, 깊은 철학, 유머까지 갖추었으니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컸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연예인이 아니어서 망설였으나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참 항암을 할 때, 많이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이 강한 나는 나의 아픔을 아무도 몰랐으면 했다. 함께 밥을 먹은 후 배가 아파오기 시작해도 아닌 척했다. 내가 환자라는 느낌을 그들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 성격 탓에 사람들이 나에게 '환자가 무슨 공부냐'라고 질책할 때 참을 수 없는 분노(분노까지 치밀었음은 그만큼 싫었다는 것이겠지)가 내 안에서 분출되었다. 나는 나로서 계속 존재했고, 암은 그저 부차적인 것이었다. 내 삶을 쥐고 흔들었지만 내 안의 나는 그저 나로서 존재했다. 꿈을 꾸고, 희망을 품고, 열정으로 살아가는 나! 그런데 아프니 다 내려놓으라고? 그게 맞는 건가? 그들의 말에 잠시 휘둘리다가 막상 내 삶으로 돌아오면 난 다시 꿈을 꾸었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그때 내가 그들에게 한 말은 '난 내일 지구가 무너져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을 거야!'였다. '꿈꾸지 않는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나니까. 

 

어제 고명환 작가도 이 말을 했다.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건 오늘을 기대와 설렘으로 산다는 의미라고. 아하!!! 그렇구나!!! 내가 하고 싶었던 언어가 이것이었구나! 오늘을 사는 나는 내일을 향한 기대와 설렘이 있어야 했었다. 죽음도 그것을 소멸시킬 수는 없었다. 육체적 통증이 나를 덮쳐도 그 통증이 잠시 사라지면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책 읽고 공부했다. 그것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을 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어이없어 했지만 난 그들에게 반문했다. 그러면 계속 침대에 누워 잠만 자야 하느냐고? 그러다 눈뜨면 살기 위한 운동만 하느냐고? 먹고, 자고, 운동하는 것만이 암환자가 해야 하는 일이냐고? 그냥 일상을 살면 안 되는 거냐고? 그들은 말했다. 힘들게 왜 공부하느냐고? 그건 그들의 생각인거지? 그들은 공부가 힘든 일이니까. 나는 아니라고. 나는 공부하는 것이 취미고 일상이었다고.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고 세상을 본다. 난 그런 잣대로 나를 평가하며 그들의 언어로 나를 표현하는 것이 정말 싫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잘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 나는 결코 '잘' 하고 있지 않아 보였으리라. 무모해 보이고, 황당해 보였으리라. 

 

어쩌면 이런 감정도 남들이 나를 인정해 주었으면 하는 나의 깊은 그곳의 '인정욕구'가 작용했으리라. 그런데 이젠 안다. 그런 것들이 부질없음을.... 물론 지금도 불쑥불쑥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 그러다 툭~ 하고 떨궈버린다. 내 진심을, 내 열정을 알아채지 못하고, 알아채고 싶어 하지도 않는 그들에게 인정받아 무엇하리오. 그들이 내 삶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모님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시고, 남편은 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사람이라 아예 참견할 생각도 못한다. 물론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에 말릴 생각도 없거니와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안다. 게다가 늘 바른 방향이었다고 내심 인정하는 눈치다. 알아서 잘 가려니 믿고 내버려 둔다고 할까? 아들은 모르겠다. 그냥 "엄마 삶이니 엄마 맘대로 하세요"라는 걸까? 엄마가 암환자였으니 죽기 전에 특별히 잘못된 거 아니면 하고 싶은 대로 하시라는 마음인지도. 아들도 남편과 마찬가지로 엄마는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듯하다. 아무튼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은 나를 가장 잘 알기에 나에게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다. 그건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부모님도, 동생도, 친구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참 힘들었으나 이젠 그들의 인정을 바라지 않으니 마음은 편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이런 열정을 함께 공감해 주고 오히려 더 큰 이끎으로 인도해 줄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다. 언제쯤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될까? 이젠 응원을 넘어 이끎까지 바라니... 나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

 

고명환 작가는 '녹슬어 사라지지 않고, 닳아서 없어지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열정적으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암으로 죽는 건 인정하지만 빈둥거리다 죽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지금도 체력약화로 가끔씩 힘겨울 때도 있지만 악착같이 버틴다. 누구 못지않게 가정주부로서 집안일 열심히 하고, 직장생활도 열심히 했다(물론 지금은 아니다). 보통사람들보다 열심히 책 읽고, 공부하고, 열심히 산다. 이런 모습에 누군가는 쉽게 '극성스럽다'라고 하겠지. 그러나 그건 그들의 얄팍한 관점이고, 그들의 불편한 언어력이다. 이런 삶은 극성이 아니라 열정이고, 찬란한 희망이다. '배아픔'이 내 열정을, 내 희망을 잠시 내려놓으려 하지만, 아픔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평온이 찾아오면 난 다시 찬란한 희망을 품고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낸다.

 

고명환 작가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새벽기상, 침대정리, 명상, 자기 확언, 감사기도 등을 한다. 이건 누가 꼭 정해준 것도 아닌데, 마치 국룰처럼 거의 비슷한 걸 보면, 분명한 장점이 있고, 그것을 통해 얻은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일 테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5년 동안 거의 빠짐없이 이런 생활을 해왔다. 이젠 이 모든 것을 뭉퉁그려서 'miracle morning'이라고 이름 붙였다. 침대에서 눈뜨자마자 스트레칭과 요가 명상을 합친 간단한 몸풀기를 10분 정도 하고, 침대를 정리하면서 아침확언을 한다.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눈, 코, 입을 물로 씻어내고, 몸무게를 잰 후, 따뜻한 물 한잔을 들고 공부방으로 이동한다. 그날 들어야 할 음악을 검색해서 틀어놓고 하루 일과를 계획한 후, 감사기도와 자기 확언을 한다. 그리고 독서와 음악감상을 하며 아침을 준비한다. 6시가 되면 남편의 식사를 챙겨주고, 내가 오전 내내 먹을 음식을 준비한 후 책상 앞에 앉으면 아침 7시다. 그때부터 나의 빛나는 하루가 시작된다. 독서와 공부, 그리고 낮잠도 빼놓지 않는다. (일찍 일어나는 대신 낮잠을 꼭 잔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돼버렸다.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하루 12시간의 간격으로 잠을 자주어야 한다. 내 체력이 그렇게 된 것 같다.) 매일 같지만, 매일 조금씩 발전하는 나의 삶이 아름답다.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다.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다. 

 

그러다 가끔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고, 공연을 보러 가고, 지인을 만나기도 한다. 남편과 외식도 하고, 혼자서 가보고 싶은 곳을 가보기도 한다. 참 자유롭고 신나는 나날들이다.

 

고명환 작가는 오늘로써 1005일째 아침확언을 하고 있는데, 나는 이것을 애써 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예전에 김미경쌤과 1년을 했었는데, 참 좋은 기억이고, 필요하면 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나만의 스케줄로 가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내가 듣고 싶을 때 그냥 흘려듣듯이 듣는다. 다만 그가 1000일을 앞둔 어느 날, 10000일까지 하겠다고, 그때면 자신이 74세쯤 된다던가? 그렇다면 네 살 많은 나는 78세다. 그러더니 어제는 15000일이면 90세이고, 20000일이면 103세라고 하면서 그때까지 살겠다고 한다. ㅎㅎ 그땐 내 나이가 107세이니 너무 많고, 10000일까지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78세까지 함께 하고, 그리고 몇 년 더 살면서 좋은 일 많이 하다가 가고 싶다. 그의 자기 확언 날짜에 내가 맞출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생각지도 않았는데, 내가 80까지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건강하게 살아야지.

 

또 그는 말한다. 긍정확언 자체가 질문이라고. 이게 가능할까? 가능하게 하려면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이건 '퓨처셀프'와 같은 맥락이다. 미래의 내가 되기 위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이룰 수 있는 꿈을 꾸기 위해 매일 확언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확언은 언제든 변경 가능하다. 나에게 맞게 적절하게 조절해 가는 것이다. 내 꿈에 다가가기 위해서. 

 

활력이 넘치는 사람을 만나서 그 기운을 받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니 나에게도 힘이 솟는다. 내가 잘 살고 있다는 확신도 얻었다. 오늘도 기대와 설렘으로 눈뜨고, 최적화된 루틴으로 하루를 채워나간다. 매일 같은 일상에서 매일 변화한다. 어제보다 나은 나를 발견하고, 더 멋진 꿈을 꾼다. 인생은 고통이 기본값이라고 하지만 나는 행복이 기본값이다. 행복이 뭔지 아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 행복해본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 내가 그러하다. 난 진정한 사랑을 알았고,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가끔 아파서 힘들지만 그건 기본값이 아니다. 그냥 이벤트다. 내가 흐트러지지 않게 가벼운 충격을 주는 것일 뿐. 

 

오늘도 나는 행복한 파이팅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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