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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편

구부러진 길

by 짱2 2024. 9. 25.

구부러진 길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 이 준관 -

 

 

 

 

고속도로의 쫙 뻗은 시원함이 좋기도 하지만

시골의 구불구불한 길은 참 정겹다.

우연히 등 굽은 어르신의 느린 무단횡단조차도 

참을성 있게 기다리게 되는 여유마저 생긴다.

 

그러나 시인의 말처럼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을 소유한 모든 이가 좋지는 않다.

그 구부러진 구석구석 켜켜이 쌓인 분노를 어쩌지 못한다면...

 

반전이 있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었다니...

그렇다면 나도 그런 사람이 좋다.

구부러짐 속에 인내와 여유와 사랑을 품은 사람이라면

나의 뾰족한 바늘조차 녹아내릴테니...

나의 삶이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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