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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옛날은 가라

by 짱2 2024. 11. 9.

하루를 보내고 또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지난 하루가 힘들었어도 깊은 숙면의 시간을 거치면 다시 리셋된 컨디션으로 거뜬히 침대를 박차고 일어선다. 정확히 말하면 10여분의 아침요가를 하고, 또 10여 분에 걸쳐 이불을 새로 세팅하고, 안방에 널브러진 것들을 모두 정리하며 아침확언을 한다.

 

약 6년전의 나는 어제의 누적된 피로를 오늘의 귀차니즘과 결탁시켜 철근보다 무거워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죽지 못해 사는 하루를 간신히 열어젖혔었다. 매일 다르지만 또 비슷한 우울한 감정, 지난밤의 숙취로 무거워진 몸, 하고 싶은 것들과 그것들을 해내지 못하는 육체의 고단함... 사는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살아지는 삶이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무지했던 과거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참 안타깝고 불쌍하고 가엽다. 나의 못난 삶을 제대로 인식시켜 줄 어른이 계셨다면 난 달라졌을까? 모르겠다. 그를 외면하면서 지속했을지, 그를 따랐을지... 그때의 내 주변엔 나와 같은 결의 삶을 사는 사람들뿐이었고, 멀리서 보는 내 모습에 진정한 나의 망가짐을 알아채지는 못했으리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6년전 내게 '암'이 찾아왔다. 내가 원했던 나의 잘못된 삶을 따끔하게 혼내줄 어른은 다름 아닌 '암'의 모습으로 내 몸 깊숙이 잠재해 있었던 것이다. 도저히 참지 못한 그 암덩이는 6년 전 그 모습을 드러냈고,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모든 나쁜 삶의 몹쓸 것들을 떨쳐낼 수 있었다. 어쩌면 사람이 할 수 없었을 것들이어서 강력한 그것이 출몰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를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 남편과 엄마는 나에게 변화를 요구했었다. 다만 그들은 나를 사랑하지만 또 나를 믿었고, 동시에 두려워했기에 옅은 한숨과 가벼운 안부로만 희미한 간섭을 할 뿐이었다. 그것은 나의 끈적한 못난 습관을 떼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강력파워, 암은 쓰나미처럼 나의 못난 것들을 모두 쓸고 가버렸다. 난 신생아처럼 다시 태어났다. 수술과 항암의 과정으로 약하디 약한 어린아이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일은 50년 내 삶의 붕괴이면서 또 다른 제2의 생명의 탄생이었다. 의지도 필요 없었다. 그냥 다시 사는 거였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아무 생각 없이 매일을 살아내듯이 내 삶도 그러했다. 그렇게 하나씩 만들어지던 습관들이 모여 6년의 세월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다. 여섯 살의 내가 된 것이다. 요가와 명상으로 새벽의 신선함을 받아들이고, 눈코입을 씻어내며 몸을 정결히 하고, 따뜻한 물을 마시며 내 몸을 덥혀주고, 밤사이의 쌓인 노폐물도 흘려보내고, 감사일기와 자기 확언으로 그날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마음으로 음미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로 하루의 첫 과정을 보낸다. 고단함과 지겨움과 숙취의 시간이 아닌 기쁨과 감사와 희망의 시간이 내가 맞는 아침의 기분, 느낌이다. 확연히 다른 아침을 보낸 나의 나머지 하루는 어떠하겠는가! 매일이 감사한 날일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했던 햄릿의 고차원적인 대사가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라는 현실적인, 완전히 날것의 삶 그대로 나에게 직면한 문제였던 그 6년 전, 그렇게 나는 다시 태어났고, 그 이후의 삶은 또 그렇게 만들어졌다. 

 

오늘, 내가 왜 이렇게 새삼스럽게 6년의 삶을 들먹일까? 부끄럽지만 일주일 전, 지난 일요일에 나는 잠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보았다. 사실 가끔 예전의 못난 내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습관의 부름인건지, 어리석은 실험인 건지 모를 그 무엇이 나를 유혹했다. 아주 가끔씩, 불쑥... '예전처럼 술, 담배 하는 거 어때?', '나이트클럽에 가면 지금도 널 들여보내줄까?', '나이트클럽에 가면 지금도 부킹이 될까?'...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말라비틀어진 내 모습, 이젠 너무 나이 들어버린 내 모습, 아니 난 아직 젊어 보이니 좀 먹히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힘겹게 누군가와 부비부비 춤추는 것도, 낯선 이들과 덧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닥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다만 지금도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온몸에 땀이 흐르도록 춤추고 싶기는 하다. 이건 진심이다. ㅎㅎ 아마 언젠가 외국의 낯선 곳에서, 아니 어쩌면 한국의 어떤 클럽에서 부킹이 아닌 진정한 춤을 위해 흔들고 있는 나를 보게 될 수도... ㅎㅎ 아무튼 지난 일요일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를 암으로 이끌었던 그것들을 구입해서 집으로 왔다. 지난 6년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그것과 아무리 마시려고 했지만 내 몸이 밀어내던 술을 함께 해 보았다. 아! 그런데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 변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똑같이 그 장소, 그 시간에 그 모습으로 내가 있었다. 놀라웠다. 내 감정은 그야말로 '양가감정'이었다. "이걸 할 수 있구나, 이제 내가 건강해진 거구나". "예전으로 돌아가면 안 되는데, 그러면 이젠 정말 죽는 건데...". 희미한 기쁨과 또 옅은 불안함으로 모든 것을 쓰레기통에 처넣고 잠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의 내 모습이 궁금했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연기하는 배우인 '나'와 그걸 지켜보는 감독인 '나'로 나뉘어 있었다. 감독인 나는 배우를 보며 생각했다. '이게 되네, 그런데 다음의 연기는 어떻게 되는 거지?' 감독인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배우인 나를 보았다. 그리곤 안심했다. 다시는 그런 배역을 맡고 싶지 않았다. 지끈거리는 머리, 기분 나쁜 감정, 그리고 눈뜸과 동시에 느껴지던 기쁨과 감사로 희망차게 아침을 시작하는 행복한 내 모습의 오버랩. 지난밤의 내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것과의 완전한 결별을 마무리 짓는 느낌이었다. 헤어진 연인과의 관계에서 2% 아쉬웠던 감정의 완전한 끝냄 같은... 이제 다시 생각나지 않을 거 같았다. 맞다. 같았다. 그런데 남편이 여행 간 그제 밤, 잠시 또 스쳤었다. 그런데 정말 하고 싶지 않았고, 바로 잊어버렸다. 그날의 그것이 오히려 완전한 끝냄으로 이끄는 힘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어젯밤, 침대에 온몸을 누이고 얼굴을 비비며 감사했다. 오늘 새벽에 눈을 뜨며 자연스럽게 요가와 명상을 한 후, 잘 정리된 침대와 안방을 보며 행복했다. 음악을 들으며 감사일기를 쓰고 자기 확언을 썼다. 오늘은 또 어떻게 보낼지 생각만으로도 벅찬 감사와 기쁨을 느낀다. 하루해가 저물 무렵 남편과 이야기 나누며 걷는 산책길을 떠올리고, 또 가끔은 맛있는 외식이 즐거움을 선사한다. 저녁요가로 내 몸을 쓰담쓰담해주고, 하루종일 누적된 고단함을 침대에 늘어놓으며 깊은 잠으로 빠져든다. 이런 일상이 감사이고 행복이다. 매일 행복하고 매일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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