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우가 된 지 5년을 넘어 6년이 다 되어간다. 만 5년을 채우던 때, 위암 담당 선생님은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올 필요 없다며 가정의학과로 넘겼다. 위암과 대장암 센터, 두 곳을 다니다가 가정의학과와 대장암 센터 두 곳으로 변경되었었다. 당연히 대장암도 가정의학과로 넘겨질 줄 알았으나, 상태가 더 심각했던 대장 쪽 담당 선생님은 더 두고 보자 하셨고, 그때의 섭섭함은 잊어버린 채 자연스럽게 두 개의 진료과목을 오갔다. 당연히 무수히 많은 피를 뽑아내고, 당연히 CT검사를 하고, 당연히 한 번 또는 두 번 거른 후 내시경을 했다. 그런데 지난주의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었던 화요일, 대장 담당 선생님도 이젠 더 이상 자신에게 올 필요 없다고 하셨다. 이번에는 정확하게 우리는 '완치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오~ 얼마나 반가운 말인가! 물론 암환자에게 완치란 있을 수 없다. 내 위장의 반이 잘려나갔고, 내 대장의 3분의 1이 잘려 나갔는데, 무엇을 돌이킬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만큼 많이 좋아졌다는 의미이고, 앞으로 조심하며 살아가면 남들 사는 만큼 살 수도 있다는 얘기이지 않을까?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은 없으나 50대에 죽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이 삶이...
암 판정을 받은 후, 연로하신 부모님을 보면서 내가 저 나이까지 살수 있을까 싶었다. 현재 부모님 나이는 80, 86세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세대는 100세를 바라보고 재수 없으면 120세까지 산다고 하는데, 나는 부모님 나이인 80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수술한 후의 상태보다는 정말 많이 좋아져서 밥 먹은 후 아픈 증세는 거의 없다. 늘 느끼지만 인체의 신비다. 많이 먹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먹은 후 아프지 않은 것에 또 감사하고, 먹고 싶은 것이 많은 식탐의 넘쳐남에도 감사한다.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먹을 수 있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선천적인 몸의 이상과 위암과 대장암의 후유증으로 남들보다 빨리 노쇠하지 않을까 싶다. 속상한 일이지만 어쩔수 없다고 받아들인다. 이것으로 죽을 때 통증을 동반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고통이 두렵다.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그것을 미리 상상하며 두려움에 떨고 싶지 않다. 잠시 두려움이 스치고, 걱정이 바람처럼 살짝 머물다 갈 뿐이지 그것으로 미리 내 삶을 비관적으로 비틀어버리진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이기에 오늘을 더 열심히 살 뿐이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 이유가 될 뿐이다.
요즘 내 몸의 상태가 제법 좋아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어지럼증이나 살떨림 현상도 현격히 줄어들었고, 몸무게도 조금 늘었다. 전혀 못마시던 술도 마실 수 있게 되었고, 체력도 좋아진 느낌이 든다.
6년 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때는 암진단을 받지만 않았을 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척 아픈 사람이었다.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그 결과가 암환자가 된 '나'였고, 나는 무너지면서 다시 일어났다. 매일의 삶이 부끄러웠던 지난 과거에서 벗어나 이젠 순수하고 온전한 나로서 살고 있다. 매일의 삶이 값지고 소중하다. 이런 매일을 살아내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암수술이라는 전환점을 돌아 새 삶을 살게 된 지금, 내 몸의 모든 세포는 다시 태어났다. 과학적으로 그렇다. 이 벅찬 삶을 또 잘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또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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