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1박 2일로 차박을 다녀오려 예약을 했더랬다. 그런데 차박 예정지였던 곳에 비소식이 있어 취소하고 서해 쪽으로 당일 단풍놀이 가기로 변경했다. 하지만 어제 동창모임에 나간 남편은 밤 12시를 넘겨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만취상태가 되어 집에 들어왔다. 그때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단풍구경 가지 말자!"
절대 술 취해 늦게 들어 온 남편에 대한 미움에서 기인한 반발심이 아니다. 물론 남편은 숙취로 인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도 힘들 테고, 그 상태로 운전하고 멀리 나가기도 힘들 거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긴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많이 나의 여행욕구를 끌어내린 것은 단풍구경에 대한 열망이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올해의 단풍은 예년에 비해 늦어지기도 했거니와 또 예쁘지도 않다. 빨강, 노랑, 갈색의 멋진 단풍을 보고 싶은데, 유튜브를 봐도 그렇고, 모든 매체가 작년의 사진이나 영상을 끌어다 쓰고 있었다. 이런 지경이니 우리의 단풍구경은 의미가 없어진다. 단풍을 핑계로 드라이브를 하자는 목적이 크다면 가능하겠으나 남편과 목포 쪽으로 여행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콧바람 쐬고 싶은 욕구는 그다지 없는 상태다.
또 다른 이유는 계속되는 외출로 지친 몸을 쉬고 싶었다. 병원 정기 검사도 있었고, 약속도 있었고, 공연관람과 영화관람 때문에 격일로 외출해야 했었다. 당연히 내 몸은 '쉼'을 필요로 했는데, 그걸 무시하고 여행까지 다녀오면 몸이 고단할것은 당연했다.
더불어 공부할 시간, 독서할 시간, 사색의 시간이 없었다는 것. 이런 시간의 부재는 내 존재의 이유마저 흐트러뜨린다. 바쁘게 몰아치는 삶일수록 나란 존재는 없어지는 느낌을 갖게된다. 책상 앞에 앉아 내가 원하는 책을 읽고, 하고 싶은 공부하고, 일기를 쓸 때 진정한 나로 존재하는 나를 느끼고 안정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붕~ 뜬 느낌이고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한 곳에서 쩔쩔매고 있는 듯 여겨진다. 때론 이런 느낌도 지속되면 지루함이 몰려오고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 하며 두리번거리곤 하지만 역시 그쪽이 나와 더 어울린다. 쇼펜하우어가 한 말이었던가? 삶은 고통과 권태로 이어진다고. 맞는 말이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이런 이유들로 단풍구경의 매력이 뚝~ 떨어졌다. 남편은 월요일인 내일까지 휴가를 냈으나 여행가지 말자는 나의 의견에 자신의 음주 탓인 줄 알고 조용히 자숙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어쩌면 남편도 속으로는 여행이 취소됐음을 다행스럽게 여길지 나는 알 길이 없지만...
남편이 휴가로 집에 있을 내일도 일부러 오전에 미용실 예약을 했다. 남편이 집에 있으면 공부가 안된다. 그런 날은 공부보다는 밀린 집안일이라도 해서 다른날의 공부시간을 벌어두는 것이 더 낫다. 사실 남편이 집에 있는 날엔 어디서 기인한 의무감인지 모르겠지만 맛있는 뭔가를 만들어 먹으려는 나의 의지가 발동한다. 살찐 남편이 더 살찌는 이유다.
24년도 4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읽어야 할 책들이 꽤 있다. 한강 작가의 책도 다섯 권이나 구입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두 권은 이미 읽었고, 한 권은 시집이고 또 다른 한 권은 산문집 같아서 아침에 매일 조금씩 읽자고 계획했고, 한 권만 읽으면 된다. 밀리의 서재에 담아 둔 책들도 어서 읽어야지. 내가 이렇듯 서두르는 이유는 25년부터는 고전을 읽을 계획 이어서다. 이젠 자기 계발서는 그만 읽을 생각이고, 시류에 따라 인기 있는 책도 그러하다. 그런 류의 책은 결이 다 비슷하다. 특히 올해 유행한 맹자, 공자, 쇼펜하우어 등등의 책들이 그러하다. 나의 시선으로, 나의 철학으로 읽어내고 싶다. 그러다 이해가 되지 않을 때 표시해 두었다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꺼내 읽으면 되리라.
연말이면 지인들과의 약속으로 바빴으나 올해는 많이 줄었다. 남은 40일 동안 내년 맞을 준비를 잘 해두어야지. 그 준비가 책 읽기라는 사실이 오히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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