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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하늘이 주신 선물

by 짱2 2025. 4. 24.

문득 지인들의 삶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왜 그랬는지 그 시작점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무엇인가가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지인들의 삶까지 이어졌을 텐데... 

 

 

 

 

 

A는 올해 67세다. 그녀에게는 자폐장애를 가진 아들 한 명이 있다. 친정어머니는 일찌감치 아들을 절에 맡기고 자신의 삶을 살라고 조언했지만 그녀는 아들을 내려놓지 못했고, 그런 그녀의 삶에 결국 남편도 떠나 다른 삶을 선택했다. 오직 그녀만이 자폐장애아인 아들 곁을 지키고 있다. 아들은 40대이지만 아직도 어린아이의 삶을 살고 있고, 그녀의 소원은 아들보다 하루라도 늦게 죽는 것이다. 그녀의 아들을 직접 본 적은 없으나 그녀는 그 아들 때문에 살고 있고, 그 아들 때문에 웃고 있었다. 

 

B는 아들 둘, 딸 하나를 둔 주부다.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제법 뚱뚱한 몸에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고, 옛말로 하자면 '언청이', 즉 '구순열'이었다. 요즘은 의술이 발달해 이제 그녀의 구순열은 약간의 흉만 남긴 채 처음 보는 사람은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은 정말 천사와도 같아서 지인들은 모두 입을 모아 착한 그녀를 칭찬했다. 말도 참 예쁘게 하는 그녀다. 구순열이 없어진 그녀의 미소는 참 밝고 예쁘다. 그런 그녀에게 여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등지며 여동생의 아들과 딸이 왔다. 그녀는 아들 셋에 딸 둘은 둔 엄마가 되었다. 조카임에도 살갑게 대하는 그녀를 보며 천사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했다.

 

A와 B를 생각하다 문득 C가 떠올랐다. 그녀는 평소에도 몸이 쇠약했던 남편이 있다. 그는 결국 암환우가 되었고, 남편을 대신해 자신이 경제를 책임지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싫은 모양이다. 내가 그 남편과 살지 않아 봤으니 그녀의 험한 말과 남편에 대한 막대함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옆에서 보는 입장에서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아빠이고, 아빠로서 애들에게 살뜰하게 대했고, 그래서 아이들도 아빠를 좋아하고, 그동안 살아온 세월도 있는데, 내가 바라보는 입장에서 돈 번다고 유세하는 모양새라 마음이 불편했다. 환자인 남편의 마음이 어떨지, 나는 그녀의 친구인데, 그녀에게 마음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남편에게 마음이 더 간다. 아마 나도 암경험자라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그녀가 A와 B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그녀의 마음이 훨씬 편안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의 의식은 또 흘러가 D에게로 생각이 미쳤다. 그녀는 나보다 언니지만 결혼도 늦었고, 아이도 없었다. 시험관시술까지 하면서 아이를 가지려 했으나 그것마저도 하늘이 허락지 않아 결국 이런저런 경로로 그녀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녀 쌍둥이를 얻게 되었다. 그 아이들도 많이 성장하여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중학생 때부터 엄마 속을 썩이는 아이들이 되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지만 멀리서 보는 나의 관점에서 그녀의 사랑은 집착이다. 아이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세상의 잣대로 휘둘리고, 아이들에게 휘둘리며 스스로 너무 힘든 삶을 인내하며 사느라 참 고되다. 

 

하늘은 그녀에게 없던 아들과 딸을 선물로 주었는데, 그녀는 그 선물을 뜨거운 감자처럼 어쩔 줄 모르고 있다. 그녀에게 버거운 걸까? 방법을 모르는 그녀가 안타깝다. 이미 그런 시간을 지난 내가 조언을 건네지만 그 안에 있는 그녀에게 내 말이 들리지 않음을 안다. 

 

A와 B로 시작된 나의 생각이 C와 D로 이어지며 내게 주어진 것들이 때론 선물이기도 때론 십자가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물일지 십자가일지는 결국 자신의 생각의 결과물이라는 것. 우리는 이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행동으로 이어가기까지 쉽지 않은 것도 잘 안다.

 

A와 B 그리고 C, D와 마찬가지로 나는 어떤가! 나에게 선물은 무엇이고, 십자가는 무엇인가?

 

나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고,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매일 싸우고, 폭력적인 부모님을 혐오하며 살았다. 아마도 이런 환경은 나에게 무거운 십자가였을 테다. 많이 울었고, 많이 힘들었으나 나는 그 십자가에서 선물을 받았다.

 

나의 장애는 나를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했다. 가난과 지겨운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싫어 집을 나가고 싶었으나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유흥업계였을텐데, 나의 장애는 그 길로 갈 수 없는 또 다른 장애가 되어 난 집을 벗어날 수 없었고, 나쁜 길로 들어서지 않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자주 싸우셨으나 폭력적인 아버지는 다행히도 자식에게는 사랑이 있어 애지중지하셨고, 가정을 버리지도 않으셨다. 게다가 나의 엄마는 나를 정말 아끼고 사랑해 주셨다. 그녀의 사랑이 지금 나의 자존감을 높게 세워준 기반이고, 나의 풍성한 사랑의 마음의 토대이다. 지겨운 부모님이었지만 그것만을 바라보지 않았고, 나는 그들에게서 나에 대한 사랑을 보았고, 나는 그 동아줄에 내 힘을 실었다.

 

가난은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속상한 기억이 많고, 그 가난이 지금의 나에게 절제나 절약정신을 키워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돈이 생기면 쓰고 싶은 욕구가 들게 하는 걸 보면 가난만큼은 내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ㅎ

 

이런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지금의 남편을 만난 원인이다. 외모도, 그 무엇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였으나 그저 돈은 조금 있는 것 같아 선택한 남자. 그 남자가 이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배 나오고, 시커먼 피부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 그를 가장 사랑한다. 그는 하늘이 내게 준 선물이다. 어린 나이에, 집에서 벗어나고픈 욕망만 한 가득이었던 나에게 아무라도 다가와 같이 살자고 했으면 나는 그를 따라나섰을 것이다. 그런 시기에 그가 나에게 왔고, 남들이 하는 것처럼 차분히 결혼식도 하고, 온전한 살림을 살기 시작했다. 아이를 갖고, 내가 하고 싶어 하던 공부를 계속하고, 선생님이 되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하며 살고 있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이런 보석 같은 선물을 주셨구나. 아니, 남편이라는 보석뿐만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보석도 주셨다. 그리고 또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 보석을 소중히 하고, 아끼지 않으면 빛을 잃어가리라는 것을. 

 

삶은 녹록지 않다. 내 나이 50이 되던 해, 나는 위암과 대장암 환자가 되었다. 죽음을 생각했다. 위의 2분의 1, 대장의 3분의 1을 잘라내고 항암까지 하며 8년째 살아내고 있고 있다. 나는 이때서야 알았다. 하느님께서 나를 정말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내 삶의 반평생을 내 마음대로 살았으니 이제는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원하신다는 것을. 내가 하느님 품에 안겨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계심을 느낀다. 

 

아! 그러나 나는 아직 숨을 고르고 있다. 3년만 더 기다려달라고. 내 건강을, 내 삶을, 내 욕망을 조금만 더 채워 환갑이 되는 그때에 당신 곁에 가겠노라고. 그리고 지금 그런 삶을 그리고 있다. 내 머릿속에 현실처럼 그려지는 것을 보면 분명 그런 삶을 살 것 같다. 환갑에는...

 

돌이켜보면 내겐 모든 삶이 선물이다. A와 B가 아들과 조카를 선물로 받아들이고 몇 배의 행복을 누리며 살듯이 C와 D도 남편과 쌍둥이가 십자가가 아니라 선물임을 깨닫고 살게 되기를... 그들이 왜 그녀들에게 왔는지 알게 되기를... 나 또한 내게 온 선물을 한시도 잊지 않기를... 감사한 마음을 늘 가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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