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나는 의례적으로 격년으로 하는 건강검진을 받았고,
만 50세가 되면서 대장암 검사(분별잠혈검사)도 함께 받았다.
누구나 그렇듯... 연말이 다가오면서 떠밀리듯이 그렇게...
직업이 학원 강사라... 오전엔 시간이 좀 있어, 그날은 늦잠을 자고 있었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ㅇㅇ 병원인데요, 과장님이 검사에 이상이 있다고 오늘 병원으로 나오시라고 하네요'
잠결에 이건 뭔가 싶었다.
이상이 있다니...? 내가? 올것이 온건가? 그렇다면 어디에?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 올것이 왔다고...
나는 평소 맥주를 정말 좋아하고, 애주가답게 일주일에 서너번은 맥주를 마셨다.
채소와 과일보다는 고기류를 좋아했다.
게다가 학원이라는 곳도 제때에 식사를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아침은 대체로 굶고, 점심은 일을 해야하니 꾸역꾸역 먹고,
학원에서는 준비해 간 간식을 시도때도 없이 아무때나 조금씩 아무렇게나 먹었다.
간식을 한 입 베어물었는데, 학생이 들어오면 오물오물 씹어 삼키며 수업을 했다.
저녁은 또 어떠랴.
집에 도착하면 9시.
허겁지겁 밥을 먹거나, 치맥이나 간단한 안주에 맥주를 마시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나도 모르게, 살며시 분명 내 몸에 이상이 있을거라고 짐작했던듯하다.
건강프로그램이나,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말하는 식생활과는 먼 나의 식사습관과 식단.
바꿔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처럼 굳어버린 식습관.
더구나 남편도 애주가라, 늦은 저녁 함께 하는 음주는 우리의 즐거움이었다.
재미있는 TV프로그램을 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기울이는 소주와 맥주의 향연.
우리는 행복했고 즐거웠다.
몸이 망가지는줄도 모르고.
그렇게 막연하게 올것이 온거라고 생각하며,
동네 병원의 과장님을 만나고, 위암 초기이며, 오진일 확률은 없고, 어차피 수술을 해야한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는 단호한 말을 뒤로한채 병원을 나섰다.
덤덤함.
그건 어찌할 줄 모르는 나의 액션이었다.
그렇게 나는 위암 환자가 되었고,
서울대 병원을 예약하고, 온갖 검사를 다했고,
위암보다 더 큰 대장암이라는 병을 더 얹었다.
그뿐이랴. 식도에도 이상이 보인다며 식도까지 진행이 됐다면 대장암 4기란다.
나의 덤덤함은 거기까지였다.
난 오열을 했다.
죽는거구나. 이제 50년 살았는데... 아직 죽기엔 할일이 있는거 같은데...
아들 결혼식도 가을에 있는데... 그저 착하기만 한 내 남편은 혼자 남으면 어떻게 살지?
우스운건... 옷 욕심이 많은 나의 옷들이었다.
장롱에 가득찬 사계절 옷들은 어떡하지?
식도 검사는 대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그날 바로 진행되었다.
오전에 대장암 진단을 받고 5시까지 많은 시간이 있었다.
뭘할까?
친구를 불렀다.
'나 암이고 심각해. 이런상태라면 수술보다는 자연치유를 선택하는것이 나을거 같아'
친구는 극구 말렸다.
현대의학의 발전을 열변을 토하며 피력하면서, 꼭 수술을 해야한다고. 의사를 믿어야 한다고.
오후 늦은 시간.. 식도 검사를 하는데,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나를 안정시켜주었다.
사실 나는 대장암 진단을 받은 그 시간부터 식도검사를 할때까지 계속 오열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제외하곤...
'걱정하실까봐 말씀드리는데, 정확한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제가 지금 눈으로 보기엔 별 이상이 없는거 같아요'
아~ 얼마나 고마운 말씀인가. 그렇다면 난 대장암 말기가 아니라 3기가 된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희망적인가!
그날 집으로 와서 퇴근한 남편과 몇마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바다를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없이 어질러진 집을 뒤로한채 바로 강원도로 향했다.
달리는 차안에서, 횟집에서 회를 시켜 먹으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했다.
같이 울기도 하고,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후회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게 나는 위암, 대장암 환자가 되었고,
수술을 했고, 지금 항암중이다.
항암중인 나는 10킬로그램이나 빠진 말라깽이가 되었다.
그러나 빠진 몸무게도, 암환자라는 사실도 나의 희망을 꺾지는 못한다.
난 지금도 책을 읽고, 영어공부를 하면서 다시 돌아갈 일상을 멋지게 꿈꾼다.